지난 주에는 오랜만에 한국영화 [이장과 군수]가 [300]을 누르고 1위를 탈환했습니다. 하지만 전체 관객수는 주말 사흘동안 50만 조금 넘는 수치로 저조했습니다. 주말에 극장을 찾아도 원하는 시간에 표를 구할 수 있을 만큼 한가해서 관객들은 좋아하는데 극장 측과 영화사 측은 울상입니다. 이런 가운데 전국 14개 관에서 개봉한 재일 조선인 학교를 다룬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가 개봉1주일만에 1만명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번 주에도 기대되는 한국영화가 있으니 바로바로바로바로 송강호 주연의 우아한 세계입니다.
우아한 세계
[우아한 세계]는 발칙하고 노골적인 연애담을 그린 [연애의 목적]으로 데뷔하며 신인답지 않은 꼼꼼하고 독창적인 연출솜씨를 선보였던 한재림 감독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 송강호와 만나 제작 단계부터 큰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송강호가 조폭으로 나오는데 그저 그런 평범한 조폭영화가 아니라 ‘생활 느와르’라는 독특한 카피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두 사람의 화학작용이 훌륭합니다. 한마디로 줄이면 ‘송강호에 의한, 송강호를 위한, 송강호의 영화’입니다.
뒷골목에서 맨손으로 시작해 중간보스로까지 성장한 인구는 아들을 캐나다로 조기유학 보내고 수압이 낮아 수돗물이 때때로 끊기는 낡은 아파트에서 바가지를 긁어대는 아내와 아빠의 직업을 더러워하는 딸과 함께 삽니다. 아내와 딸은 이구동성 얼른 더러운 손을 씻고 평범한 직업을 가지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쉽습니까? 일단 자전거에 물통 싣고 올라탔는데 페달을 잠시라도 멈추면 넘어지고 물이 쏟아지듯 배운 일이 도둑질인데...
큰 건설공사를 적절한 강압과 무력으로 따낸 인구는 이번 일만 끝내면 적당히 은퇴할 계획을 세우고 꿈에 그리던 잔디밭 있는 전원주택을 계약합니다. 인구는 하늘같이 섬기고 자신을 친동생처럼 아껴주는 회장님의 총애를 받고 있지만 회장 친동생이라는 사실만 빼면 아무 능력도 없는 노상무가 호시탐탐 인구의 자리와 지위를 위협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의 계획은 뜻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조폭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조폭이라는 직업세계는 현재 한국사회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입니다. 하기 싫은 일도 먹고 살기 위해서 억지로 해야하고 항상 피곤에 쩔어있고 크나 작으나 경쟁과 음모, 배신이 횡횡하는 사회에서 당하지 않으려면 항상 잔머리 경보기를 켜놓고 항상 사주경계해야 하는 점에서 조폭세계나 사회 생활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한재림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할 때 조폭 세계를 많이 취재했는데 그 대상이 되는 실제 중간보스급들이 의외로 너무나 평범하다는데서 놀랐다고 합니다. 또 30대 초반의 나이에 40대 가장의 구질구질한 가정 이야기를 어떻게 그렇게 꼼꼼하게 묘사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제가 나이는 어리지만 저희 또래에 영화를 하시는 분들은 거의 다 힘들게 살아오셨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가장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었다.”고 답변했습니다. 박지영은 오랜 공백을 깨고 첫 출연 영화에서 현실적인 마누라 연기를 매끄럽게 선보이고 영화 후반부 교차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묘사가 충격적일 정도로 리얼해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끝날듯 끝날듯 하면서 관습적인 예상을 깨고 계속 이어지는 후일담을 통해 조폭 영화라는 장르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철저하게 우리 사회 40대 가장에 대한 슬픈 색조의 자화상이자 풍경화인 이 영화는 송강호라는 배우의 맹활약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고향친구이자 경쟁 조직의 중간보스인 오달수와 허름한 선술집에서 칼맞고 어려웠던 시절 고생했던 얘기를 하며 눈물을 잠깐 비추는 장면은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복합적인 표정의 클로즈업에 비견될 만한 명장면으로 꼽고 싶습니다.
기계만큼 융통성 없는 주차요금 징수원이나 ‘당뇨를 감기처럼 취급하는’ 심장없는 의사, 아무리 전문경영인이 대세라고 하지만 경영 능력이나 업적, 더 나아가 충실한 개같은 충성심보다 자식이나 동생이면 무조건 OK하는 한국 기업의 고질적 풍토에 대한 비판적 묘사가 인상적인 [우아한 세계]는 겉으로는 평온하고 활기차 보이는 이 사회가 냉혹한 정글이라는 사실과 그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살아가는 메마른 영혼을 보여주는 회색빛 보고서입니다.
마하2.6:풀 스피드
할리우드 방식을 차용한 프랑스판 블록버스터 격인 [뤽 베송의 택시]를 만들었던 제라르 피레스 감독이 이번엔 전투기들이 노니는 하늘을 무대로 택했습니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신개발 전투기 미라지2000을 둘러싼 국제 범죄조직의 음모와 이에 맞서 싸우는 조종사들의 이야기인데 스토리는 기대할 것이 없고 CG 없이 실사로만 촬영한 전투기들의 박진감 넘치는 아찔하고 다양한 비행장면만 볼만한 영화입니다. 공군 당국의 대폭적 지원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데 한마디로 프랑스판 [배달의 기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일럿을 꿈꾸는 사람이나 비행기에 관심있는 분들, 항공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나 추천할 영화입니다. 여자 조종사가 전투기 위에 올라가 스트립 쇼를 벌이고 동료 남자 조종사들이 열광하는 프랑스 공군의 나사풀린 행태를 보니 옛날 옛적 스파르타의 300명 전사들이 가졌던 하늘을 찌를 듯한 군기의 100분의 1만 배워보라고 하고싶습니다.
이밖에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완소남’의 경지에 오를만큼 칭송을 받았던 킬리언 머피가 여장 남자로 등장하고 조국 아일랜드의 현실을 다뤄온 닐 조던 감독의 [플루토에서 아침을]과 다이안 키튼의 로맨틱 코미디 [철없는 그녀의 아찔한 연애코치] 등이 개봉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