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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과장 혹은 거짓말

지나친 양 극단 주장으로 국민 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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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됐습니다. '역사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전혀 무리가 없는, 정말 큰 일입니다. 우리 언론의 태도를 잠깐 돌아볼까요? 1999년의 WTO 뉴라운드 협상을 취재했던 저로서는 약 8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별로 나아진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약간 우울했습니다.

당시에도 기자들은 통상 관료들의 말에 휘둘렸습니다. 사실 협상 내용도 따라가기 어렵고, 미국의 통상전문지인 Inside US Trade에도 버젓이 실리는 내용조차 우리 정부를 통해서는 확인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일부 통상 전문가들, 그리고 일부 통상 관료들이 '일방적인 개방이라도 국익에 더 도움이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안 것도 그 당시였습니다. 리카르도식의 비교우위론,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 원리에 대해 이 분들이 갖고 있는 신념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분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시장주의적인 국가인 미국의 통상 정책 담당자들보다도 더 시장주의자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예 '통상 정책' 내지는 '산업 정책'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더군요. 개방만 하면, 국제적 기준 (Global Standard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American Standard인)에 맞추기만 하면 경쟁력이 높아지고 경제적으로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분들의 반대쪽에는 개방하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는 아주 극단적인 논리가 존재합니다. 개방하면 다 죽는다. 이번에도 많이 들어본 말 아닙니까? 한쪽은 개방만이 살길이요 우리의 미래라고 말하고, 한쪽에서는 개방하면 다 죽는다고 하니, 어떻게 한 나라에 살면서 이렇게 다른 확신을 갖게 되었을까요.

문제는 우리 언론도 이런 식의 극단적인 논리 대결에 휘둘리면서 협상 자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큰 이유는 협상을 꼼꼼이 들여다보고 연구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겁니다. 상당수의 FTA 담당 기자들은 협상이 시작될 무렵부터 이 일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고 마치 스포츠 경기 취재하듯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통상 관료들의 말에 의존하기가 쉽습니다. 특히 통상 협상의 결과에 대한 전망에 있어서는 직접 협상을 하는 통상 관료들과 이들을 돕고 있는 국책 연구기관, 이들과 함께 연구 용역을 수행하는 통상 전문가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부 반대론을 펼치는 분들의 논리를 무조건 믿기에는 뭔가 찜찜하고, 그렇다고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 언론인은 거의 없고. 사실 정말 어려운 일이죠. 그러니 통상 관료들과 관련 전문가들의 말에 의존하는 것을 무작정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언론 보도를 보면 개방 예찬론 아니면 반대론 일색입니다. 정말 지금까지 진행된 협상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문제점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보도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물량으로는 엄청난 보도가 쏟아졌지만 어느 것 하나 듣거나 읽는 사람의 시야를 툭 틔워주는 기사는 없습니다. 솔직히 이건 언론 선진국에서도 기대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통상 전문지가 아닌 일반 대중 언론이 통상과 같은 이슈를 정말 깊이있게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어쨌든.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겁니다. 어떻게 자유무역 협정을 위한 협상을 하는데, 한 쪽에서는 그렇게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고 다른 쪽은 그래야만 나라가 산다고 하니, 국민들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산다는 쪽이나 그렇게 하면 다 죽는다는 쪽이나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과장이 아닐까 하고요.

여기서는 FTA야말로 우리의 살 길이라던 정부가, 비록 작은 부분이지만 어떻게 국민들을 교묘하게 속였는지를 하나만 소개하겠습니다.

어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협상이 타결됐다고 발표하면서 "교육, 의료 등 공공성이 강한 분야는 개방에서 제외하였다"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어젯밤 대국민 담화에서 "우리 협상팀이 너무 방어를 잘 했다", "국회 비준을 염려해서 그런 것 같다"며 칭찬 아닌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 등의 서비스 부문에서는 미국측에서 개방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정부 내부 자료에서도 확인이 되는 내용입니다. 특히 정부는 미국이 개방 요구를 하지 않아서 개방을 통한 효율성 증대라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며 미국이 개방을 요구하지 않는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결국 "우리 협상팀이 너무 방어를 잘 한 것"이 아니라, 우리 협상팀이 "협상을 통해서 공공성이 강한 분야를 개방에서 제외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개방하고 싶었는데 미국이 개방을 요구하지 않아서 개방을 못한 것"이라는 겁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부분을 보면 정부가, 통상 관료들이 지금까지 한 말들 가운데 어느 만큼을 믿을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협상이 제대로 되었는지 등을 평가하려면 방대한 협정문과 부속 문서, 주고받은 공적인 문건들 (특히 side letter라고 부르는 당국자들 사이의 문서로 된 약속도 중요한 부분입니다)을 봐야 하는데 그건 오랫 동안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외국과의 교역 없이 살 수는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자유무역협정도 해야 되겠지요.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영향이 어떤 것인지,우리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습니다.

반대론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친 과장은 거짓말이 될 수 있습니다. 현실 운동에서 너무 이상적인 사고를 하는 것도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대신에 굳이 어느 쪽 책임 더 크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연히 정부와 통상 관료, 그리고 이들을 돕고 있는 전문가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보를 갖고 있고, 또 국민들에게 1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반대쪽에 있는 시민 운동가, 순수 민간 전문가들에게는 과장이라고 볼 수 있는 주장들도 이런 분들이 할 경우에는 거짓말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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