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일원으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등 저항가요를 작곡해 부르던 안치환(42)이 2004년 '내가 만일' 등 서정적인 노래가 담긴 4집 앨범을 발표하자 운동권 일각에서는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저항' 대신 '현실'과 타협을 택했다고 섣부른 판단을 한 것.
하지만 안치환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일부 노래에서 음악적으로 서정적인 목소리를 냈을 뿐 다른 노래에서는 여전히 저항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았다. 2004년 8집에서는 '피 묻은 운동화' '개새끼들' 등에 사회와 미국에 대한 강하고 직설적인 메시지를 실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번에 발표한 9집은 4집 이후 안치환의 또 다른 '음악적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음반이다. 직접적인 사회 비판보다는 '은유적인 표현' 위에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더했다.
서울 연희동에 자리잡은 참꽃 스튜디오에서 만난 안치환은 "가사 내용에 투쟁이 들어가야 반드시 강한 것은 아니다"라며 "전달력이 강한 것이 강한 것"이라고 '새로운 시도'에 대해 설명했다.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외피의 음악을 4집에서 시도해 결실을 봤죠. 이번에도 또 한번 한 단계를 넘어가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앨범에는 세상에 대한 시각도 포함됐지만 특히 제 자신에 대한 내적 고민과 이야기를 많이 담았습니다."
그는 또 대중적인 면이 많이 부각된 점과 관련, "날을 그대로 세워 표현한 것이 아니라 노래답고 부드럽게 전했다"며 "노래가 노래답다는 것은 대중의 눈높이에 어느 정도 맞춰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저항적인 의미의 전형적이고 계몽적인 것들이 '노래적'이지는 않으며, 대중적인 내용과 멜로디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글에 곡을 붙인 타이틀곡 '처음처럼'은 안치환 특유의 호소력 넘치는 보컬에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담은 가사가 이어진다. 역동적인 기타와 드럼 선율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이번 음반에서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어느 앨범에서보다 짙게 느껴진다. 어느 잡지에 실린 글에 안치환이 글을 덧붙인 '아내에게'와 자장가 '굿나잇' 등 두 곡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내 안에는 가족의 크기가 크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남자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날고 긴다고 해도 가족이 안정되지 않으면 불안한 법이죠. 특히 '굿나잇'은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커서 어려운 일이 닥쳐도 부모에 대한 기억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회 비판과 정치적 메시지를 외면한 것은 아니다. '혼자서 가는 길 아니라네' 등에서는 통일의 염원을 담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수행한 고은 시인께 남북통일과 관련해 거창한 담론 대신 편안한 시를 써 주실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동행'이라는 시를 받아 곡을 붙인 후 이번 앨범에 '혼자서 가는 길 아니라네'로 수록하게 됐죠. 특히 이 노래에서는 북한 대중가요의 어법을 이해해 보고 싶어서 북한 가요 음색도 조금씩 넣었어요. 정치적인 부분이 하나되기보다 정서적인 면에서 하나되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달라졌다'에서는 사회 현실에 대한 '일침'을 놓았다. "저항은 원래 피압박자의 전유물인데 노무현 정권에서는 가진 자가 '저항'을 하는 세상이 됐다"면서 "아울러 예전에 '저항'하던 이가 이제는 '한낮에 뼈다귀를 물고 쉬는 개'처럼 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세상의 변화는 대학가에서도 감지된다. 저항가요를 교과서처럼 불렀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입학하면서부터 '취업 전쟁'에 가세한다. 안치환의 노래도 이제는 캠퍼스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제 대학에서 노래 부르기가 무서워요. 세대 차이가 날까 두려운 것이죠. 예전에는 대중문화와 대학문화가 나란히 존재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대학문화와 대중문화는 동의어가 돼 버렸죠. 또 젊은이들의 보수화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됐습니다. 대학 시절은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가슴이 끓는 때인데 요즘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네요."
8집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그는 한미 FTA에 대해 "반미 친미를 떠나 미국에 대한 시각을 바로 가졌으면 한다"면서 "한미 FTA는 불평등하고 불합리하며 예속적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교역 합의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민족경제와 민중 다수의 나은 삶을 보장해주면 찬성하겠지만 실질적으로 그렇게 될 것 같지도 않고, 다른 일에서도 우리는 민족적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일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으로부터 끊임없이 영입 제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정치적인 메시지의 노래는 부르고 있지만 내가 직접 캠프 등에서 정치활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것은 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때부터 갖고 있는 신조"라고 못박았다.
이제 마흔을 훌쩍 넘긴 그는 "내 앨범이 사랑 받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음반 발표는 내 일상이 됐다"며 "나이를 먹으면서 음반을 통해 대중에게 즐겁고 따뜻한 희망의 느낌을 줬으면 하는 여유가 생긴다. 내가 음악을 하는 것이 스스로 지겹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