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고 배울 권리는 천부인권(天賦人權)으로 법률로 이를 제한할 수 없다"
지난 2000년4월17일 헌법재판소는 과외교습을 제한한 학원설립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위의 말은 헌재의 위헌 결정문 내용의 일부입니다. 헌재는 과외교습을 제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근거로 자연법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교육 받을 권리가 규정돼 있고 국민의 행복추구권도 있습니다. 이런 조항을 근거로 해도 과외교습 제한의 위헌성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헌재는 헌법 보다도 상위 개념인 자연법론의 이른바 '천부인권'을 적용했습니다. 헌재의 논리를 따르자면 가르치고 배울 권리는 하늘이 내린 인간의 기본권으로 법률은 물론 설사 헌법으로도 제한할 수 없다는 취지가 됩니다.
당시 헌법재판소를 취재하고 있던 저는 이런 결정을 보고 가슴이 뻥뚤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허망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3척동자도 다 알만한 이런 진리를 그동안 왜 우리는 외면하고 있었던 것일까? 특히 우리나라는 '君師父一體'라는 정신으로 스승을 임금과 부모의 반열에 올려 놓았던 나라이고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배움의 욕망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던 나라였다는 점에서 더욱 의아했습니다.
과외금지 조치는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강제적으로 시행했습니다. 너무나도 부작용이 많았지만 군사정권의 강압으로 일단 과외는 물밑으로 잠복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비밀과외'니 '차량과외'니 '몰래바이트'니 하는 말도 이때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더이상 힘으로 과외를 막을 수 없게된 정부는 마침내 과외와 정면승부를 택하게 됩니다. 방과후 학습, 보충 교육제도가 도입됐고, 공중파 방송까지 동원한 EBS 수능 방송이 시작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과외가 줄었을까요? 오히려 이런 정책은 과외의 대중화를 초래했고, 마침내 공교육은 초토화 되면서 졸업장을 따기 위한 과정으로 전락했습니다.
정부는 이번에는 '3不정책'이라는 극약처방을 들고 나왔습니다. 본고사,고교등급제,기부금 입학을 금지 시킨 3不정책은 오늘날 우리 교육부의 금과옥조가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과외를 줄이지는 못하고 오히려 하향평준화라는 문제점만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지난주 학원법 시행령이 개정됐습니다. 이제는 야간 학원교습을 제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서울의 경우 밤10시 이후 학원교습은 불법화됐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부작용을 우려해 밤11시로 학원수강 시간을 조금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답답한 행정입니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밤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야자'라고 줄여 부릅니다)을 합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학원은 어떻게 갑니까? 결국 학원을 가지 말라는 뜻이지요. 야간 자율학습이면 충분하다고요? 애들을 교실에 가둬두고 전교에 선생님 한명이 지키고 있기만 하면 공부가 되나요? 전부 게임하고 잡담하면서 밤10시까지 시간을 때우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율학습이니까 안하면 된다고요? 학교에 자율이 어디에 있습니까? 교육청은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거의 모든 학교에서 강제로 실시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학원 수강만 못할뿐 개인 과외 교습은 자유롭습니다. 결국 값싼 학원은 못다니게 하고 값비싼 개인교습은 허용하는 이중적인 형태가 됩니다.
교육부 당국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합니다. 제발 그냥 두세요. 차라리 그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가르치고 배울 권리는 하늘이 주신 인권이고, 따라서 인간의 본성입니다. 과외와의 전쟁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