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LIVE

미 항모 로널드 레이건 호를 가다 (2)


Google 즐겨찾기에 SBS뉴스 추가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호에는 핵무기가 탑재돼 있습니까?"

한 외신 취재진의 질문에 크래프트(Kraft) 함장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공보담당 장교가 재빨리 나선다.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일문일답중 나온 뜻밖의 질문에 기자도 순간 당황스러웠다. 항공모함에 핵무기가 탑재돼 있다면 어떻게 부산에 갈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중국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열려 북한 핵 시설 '불능화'를 위해 씨름하고 있는 이때에 말이다. 한반도 비핵화 정책과 합의에 중대한 위반이자 도발이 될 것이었다.

로널드 레이건호는 핵 추진 항모다. CVN-76이라고도 불린다. (좀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C는 cruiser, V는 프랑스어의 volare, N은 nuclear의 머릿글자로 '핵추진 항모'란 의미란다.)

광고
광고 영역

원자력 에너지로 운항한다는 뜻이지, 핵무기 탑재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원자로 2개로 추진력을 얻는데, 연료 재충전 없이 20년 동안 가동할 수 있다고 했다. 수년 전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이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일본에서는 핵 추진 항모의 기항이 민감한 문제여서 벌써 쟁점화 돼 있었다.

재래식 디젤 추진 항모인 키티 호크(Kitty Hawk)가 내년에 퇴역하고 그 자리를 또 다른 핵 항모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호가 채운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문제가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정식 투표에 부치자는 청원을 3만 7천명이 넘는 주민들이 함께 냈다고 한다. 한 달 전인 2월 26일 로널드 레이건호가 일본 규슈(九州) 나가사키(長崎)현의 사세보(佐世保) 항에 기항하자 다시 문제가 불거진 것이었다.

갑판 위에 착륙해 처음 접한 항모의 모습은 그렇게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크다, 높다, 길다라는 보도를 워낙 많이 접했으니 그랬을 것이다. 승무원이 5천 6백명에 달하고, 항모 끝에서 끝까지 길이만도 미식축구장 3배인 330미터에 이르며, 건조하는 데 47,000톤의 철강과 백만 파운드의 알루미늄이 들어갔다고 한다.

속을 들여다보니 그제서야 실감이 난다. 비좁은 계단과 복도를 날줄 씨줄 삼아 짜여진 미로같은 구조물 속에 없는 게 없었다. 수천 명을 급식하는 식당은 물론 온갖 공작소에서 심지어 의치를 만드는 치기공 센터에 이르기까지... 승무원들이 로널드 레이건 호를 '바다위의 도시'라고 자랑하는 이유다. 그렇기만 할까?

냉정히 본다면 '바다 위의 군사도시', 아니 바다 위의 전투기 발진기지다. 갑판과 격납고를 빼곡히 채운 F-18 [수퍼]호넷 전투기와 E2C Hawkeye 공중조기경보기, 레이다 교란기인 EA6B Prowler, 대 잠수함 작전 헬기인 SH-60 Seahawk까지 막강한 전력을 자랑한다. 여기에 각종 구축함과 순양함 등 예하 전력을 더하면 항모전단(Carrier Strike Group)이 된다.

지휘통제소에서 내려다 본 항모의 위용에 혼잣말이 저절로 나왔다.

"동해에 하나, 서해에 하나, 이런 것 2척만 있으면 북한의 공군력은 상대조차 안 되겠군!"

광고
광고 영역

로널드 레이건호는 앞서 이라크 인근 해역에 배치돼 실전에 참가한바 있다. F-18 전투기들이 출격해 미사일을 쏘아댔을 것이다.

항모가 이름을 딴 미국의 전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전시실로 들어서자 생전 그의육성이 생생히 울려 퍼진다. 스타워즈 (Star Wars) - 전략방위구상(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 - 로 소련을 붕괴시키고 냉전을 승리로 이끈 그의 뜻을 받들어 '힘에 의한 평화 (peace through strength)'를 슬로건으로 삼고 있다. 

숙소에서 몇 시간 잠을 청하고 눈을 뜨자 정확히 약속된 기상 시간인 오전 6시 30분이었다. 예비역 육군 병장이 제법 '군기'가 든 모양이었다.

미군의 항모가 한미 합동 연합 전시 증원연습인 RSOI (Reception, Staging, Onward Movement, Integration)에 참가하기 위해 왔다니, 1990년대 초 팀 스피리트(Team Spirit) 훈련을 '뛰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당시 후방에 있던 소속 부대의 임무 역시 전시 증원이었다.

자욱한 안개 속에 실루엣을 드러낸 부산항의 모습이 군악대의 연주 소리와 함께 점점 선명해진다. 아름다운 섬과 오밀조밀한 도시의 풍경이 더없이 반갑다. 그런데, 거대한 항모를 압도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해군기지에 정박한 한국 군함을 마치 해안 요새처럼 내려다보는 바닷가 고층아파트 공사현장이었다.

굿바이, 로널드 레이건! 진정 평화를 위해 힘을 쓰기를~.

오산의 미 공군기지에서 시작된 미 항모 취재는 만 24시간의 기억을 뒤로 남긴 채 그렇게 부산항에서 끝을 맺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오늘의 숏뉴스
숏뉴스를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