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이라는 이름과 얼굴을 정치에 조금 관심있는 분들은 웬만큼 아실 것 같습니다.
선장도 떠나고 험한 파도와 맞서 싸우고 있는 열린우리당, 탈당파, 민주당 호에서 애타게 승선을 기다리는 이름입니다.
때로는 조심스럽게,때로는 격정적으로 정운찬을 향해 외칩니다.
"이제는 같이 갈 때가 되지 않았느냐? 결단을 내려달라."고요.
하지만 그의 대답은 "아직"입니다.
아직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조금 진전된 게 있기는 있습니다. 고민은 하고 있다고 인정했으니까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향한 이 정파들의 구애는 사실 어떤 면에서는 염치가 없는 측면이 강합니다.
이른바 한창 잘 나갈 때는 그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다가, 인생지사, 아니 정당지사 새옹지마라고 이제 아무고 거들떠 보는 이 없는 신세가 되자 "당신이 우리를 구원해줄 사람"이라며 손을 내미는 격이니까요.
정운찬의 그 무엇이 이들에게 와서 꽂혔을까요?
대한민국 최고 대학이라는 국립 서울대학교의 총장을 지냈으니까, 어느정도 검증은 됐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제학자라는 점은 불타는 경제 활황을 원하는 민심에 부응할 것이고요,
고향이 충청도라는 점은 영호남 대치구도에서 충청표를 갖고 올 수 있는 전략적 강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이 정파에서 지난 4년동안 이번 대선을 향해 질주해온 정치인들의 인기가 형편없다는 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여전히 열심히 뛰고 있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지만 국민들의 시선이 싸늘하다 보니 이 정파안에서 이들의 주가도 많이 내려갔습니다.
지지부진한 통합도 결국은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고요,
정운찬 전 총장이 결심만 하면 바로 통합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그럴 듯한 전망들도 많습니다.
정운찬 전 총장이 유일하게 믿음을 보내는 정치인인 김종인 민주당 의원은 오늘 기자들에게 정운찬 전 총장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제는 정 전 총장 본인의 결심만 남았다. 압박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더라. 처음엔 내가 마음에 준비하라고 말했지만 이젠 아무 말도 안한다. 정치를 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정 전 총장은 그런 자질이 있다. 그는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할 줄 안다. 내가 겪어 본 바로 이야기 하는 거다, 지난 86년에 국립대 교수로 직선제 개헌안 서명 받으러 다닌 사람이다. 내가 보기에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욕심이 없어야 하고 주변이 너저분 하지 않아야 하며 특정 집단과 밀착해서는 안되는데, 정운찬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 그렇다면 이제 관건은 정운찬 전 총장이 의지가 있느냐 하는 부분이 될 겁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정 전 총장 스스로 정치참여를 고민하고 있으니까 아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해 보입니다.
제가 한두 달 전쯤 직접 만났을 때 정 전 총장 역시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느냐?"는 물음으로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기억으로는 1학기가 끝나는 6월까지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정치권이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저울질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기자 입장에서야 정운찬씨 입에서 "나 참여하기로 했다."는 말을 가장 먼저 듣고 기사를 쓰고 싶은 욕심이 큽니다.그 말 한마디가 정국에 미칠 파장이 엄청날 테니까요.
하지만 정운찬씨가 어느 기자에게 언제쯤 그런 말을 할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습니다.
동네도 가까우니까 가끔은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정운찬씨가 과연 이 험한 정치판에서 살아남는 차원을 넘어 의미있는 승리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이 남습니다.
사실 가장 유의해서 지켜봐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총장 자리도 큰 자리이긴 합니다만, 시시콜콜한 것 까지 엄청난 것으로 포장해 내곤 하는 정치판의 가혹한 검증과정을 견뎌내야 합니다.
대쪽같은 법조인으로 신망이 높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두번이나 대선에서 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여러분 모두 기억하시지 않습니까?
벌써부터 "논문 표절이나 대필은 없었을까? 사생활은,군대는,,,,,? "하는 궁금증들이 제기되는데 출사표를 던진 다음에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정치판에서 10년 이상을 견뎌온 사람들도 쉽게 가질 수 없는 정치력을 정운찬씨가 빠른 시간안에 습득해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저는 정운찬 전 총장에게 강의를 들은 적도 없고 몇차례의 전화통화와 한 차례의 식사자리가 전부기에 나름의 대답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정 전 총장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정말 그렇거나 아니거나 입니다.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측면이 강해 보입니다.
결심한 뒤에 정 전 총장이 보여야 할 과제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제 한 신문에 눈에 띄는 칼럼이 있었습니다.
같은 서울대학교의 송호근 교수가 쓴 글입니다.
송교수는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회의 저녁 토론시간에 참여해서 "왜 열린우리당이 실패했는지?"에 대해 강의를 했던 적이 있기에, 그리고 정 전 총장을 알기에 정치현안중의 하나인 정운찬씨의 정치참여에 대해서 좀 더 과감하게 글을 쓴 듯 했습니다.
그 중 일부를 옮겨 봅니다.
데마고그(선동가)이기엔 너무 온화한 그대,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정운찬 전 총장은 우리에게 고도가 될 것인가,아니면 흥행을 달구다가 끝내 버려져 '라디오스타'처럼 누추한 주인공이 되고 말 것인가?
정운찬에게는 속된 말로 '포스'가 있는 게 사실이다.
뭔가 갈등을 수습할 것 같은 막연한 호감, 성난 사람들과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할 것 같은 설득력과 온화한 이미지가 그렇고, 정부정책에 일침을 가하는 지혜와 강단이 그러하다.
여기에 서울대 총장이라는 아우라를 갖췄으니 대박에의 예감이 들기도 한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별난 자질을 요한다.
웬만큼 데마고그여야 하고 나아가 책임윤리에 투철한 데마고그여야 한단는 점이다.
정치가는 국가의 정당한 폭력을 수단으로 뭔가 대중에게 바람직한 '천사적 대의'를 성취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탈자(정적)를 끌어안고, 중립지대로 끊임없이 피신하는 관료집단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선동가적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면 정운찬은 선의의 학교 정치에서 악마적 현실정치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을까?
그는 화합형 인물이다. 그래서 사소한 쟁점들을 침소봉대해 정치대결을 일삼는 정당들에 환멸을 느낄 것이다.
그가 배양한 선의의 열정을 비창조적 흥분으로 몰아갈 현 정치풍토에서 받을 상처와 환멸이 그의 지혜와 소신을 접게 만든다면 베버가 둘째 요건으로 든 책임윤리에 투철할 기회도 사라진다.
급조돤 어떤 정당이 그를 추대했을 때, 악마적 현실??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는 언제든지 버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데마고그이기에 너무나 온화한 그대를 부르는 유혹의 손짓에 화답하려거든 무엇보다 그를 추대한 정당이 책임윤리에 투철할 기회를 줄 것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다급해진 정당은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그 것을 열린우리당에서 목격했다."
정운찬 전 총장도 고민해야겠지만, 이 정파에 속해 있는 정치인들도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책임제라는 헌법틀안에서,정당정치가 근간을 이루는 정치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사실 처음이 아닙니다.
정운찬 전 총장 영입에 회의적인 한 정치인은 격한 어조로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잘못해서 지지를 얻었다면 패배를 통해 책임을 지고 야당이 돼서 다시 국민의 지지를 얻는 노력을 가일층 해나가야 한다는 게 기본 아닌가?
물론 권력을 놓고 싶지 않다.그렇다고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을 데려다 또 다시 상처만 주고 선거도 지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이지요.
여전히 대선주자로서 각인되기를 바라는 한 정치인은 "아무리 봐도 내가 제일 잘 할 것 같다. 시저는 시저의 이익과 로마의 이익을 항상 함께 고민했다고 한다. 자기를 위한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로마의 이익에 배치되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나 역시 그 것이 신조다."고 말이지요.
정운찬 전 총장이 언제 결정할 지, 결정한 뒤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모두가 물음표로 남아 있는 상황속에서 광야에 홀연히 나타나는 초인을 기다리는 듯 애타게 바라보는 이 정파에 그는 과연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