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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수, 장구 인생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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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둥둥....

세상이 둥둥 울리며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습니다.

'일고화락'이라는 제목의 '북'으로만 이뤄진 작품인데, 대북과 오고무,장구 등 모두 28개의 '북'이 내는 웅장하고 깊은 그 소리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사물놀이와는 또 다른 느낌이더군요.

취재하러 왔다는 걸, 잠시 잊을 정도였습니다.

예인인생에 접어든지 50년, 우리에게 '사물놀이'의 대명사처럼 된 김덕수씨는 요즘 사물놀이를 하며 입으로는 노래(창)을 하는가 하면, 사물놀이의 네 악기에서 금속으로 된 꽹과리와 징을 빼고, 나무와 가죽으로만 된 악기로 새로 작품을 만드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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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고화락'도 그런 시도 중 하나라고 합니다.

김덕수씨는 용띠로, 올해 나이 쉰 여섯입니다.

남사당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다섯살 때 남사당에 들어간 김덕수 씨.

굳이 데뷔무대를 따지자면, '1957년 조치원 장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 어린나이에 유랑 생활을 시작한 게 힘들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따옴표 안은 김덕수씨의 인터뷰를 그대로 옮긴 내용입니다.)

"제가 좋아했기 때문에 한 것 같아요. 아버님이 제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지명을 했고, 제가 그나이 되니까 남사당에 입문을 시킨거죠. 저는 요즘처럼 (음악)공부한 게 아니라, 입문하자마자 어른들과 똑같이 한몫받고 공연을 시작한 거예요.

다섯살짜리만 할 수 있는 놀이가 있었던거죠. 굉장한 환호였고요. 또 1957년이 얼마나 어려운 시절이에요, 그때 최고의 대우를 받으니까 그것도 좋았고, 아무튼 좋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좋아서 했기 때문일까요?

김덕수씨는 7살때 '전국농악 경연대회'에 충남대표로 참가해, 대통령을상을 타며 '장구신동'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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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김덕수=사물놀이'처럼 생각하는 '사물놀이'는 농악 장단을 바탕으로 김덕수씨와 친구 '이광수', '김용배', '최종실'씨가 함께 만든 겁니다. (네 친구는 이후 서로 다른 길을 택했지만요.

김덕수씨는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의 '신명'을 일깨웠다는 점이 사물놀이의 가장 큰 의미로 본다고 합니다.

외국인에게 '그들과는 다른 종류의 에너지, 큰 포용력의 새로운 신명'을 알린 것은 또다른 소득이고요. (한류 공연상품으로 자리굳힌 '난타'도 사물놀이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요.)

앞에서 말씀드렸듯,

김덕수씨는 요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우리식 뮤지컬이라 할 수 있는 '전통 연희극'(연극+마당극+춤+연주)을 본격적으로 다듬어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음악시간에 서양악기를 배우듯, 전세계 음악교실에 꽹과리, 징, 장구, 북이 있기를 바란다는군요.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데, 제일 기본적인 게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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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장구를 선택했을까.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제일 멋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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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수씨의 50년 기념 공연 '길'은 오늘(1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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