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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보다 부자인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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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3시 편집회의가 끝나고, 갑자기 리포트 아이템이 떨어졌다. 제목은 '자수성가 억만장자 차용규'.어라? 차용규가 누구지? 국제부 기자들중에도 아무도 모르는 낯선 이름이었다. 美 '포브스誌' 선정 올해의 억만장자 한국인 10명중 한명이라고 한다. 재산 15억달러?이건희나 정몽구 회장도 아닌데 이렇게 돈이 많아?  '카자흐스탄의 국제적 구리 채광.제련업체 카작무스社의 대표이사'. 유료 인물정보를 검색하면 나오는 차대표의 공식 이력은, 익숙치 않은 국가와 회사들의 조합이었다.

  잘 알지 못하니 마음이 급했다. 나에게 주어진 원재료는 차대표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영국 런던의 직통 핸드폰 번호와, 몇년이 지난 증명사진 한장 뿐. 먼저 관련 기사검색을 했다. 다행히 지난해 차대표의 성공스토리에 대한 쓸만한 기사들이 있었다. "음~이 정도면 그럭저럭 쓸 수 있겠군"

 그러나 방송이 기사만으로 될 수는 없는 법,화면 확보가 문제였다. 관련 영상을 검색했다. 먼저 이름으로 검색,예상대로 전혀 없었다. 그럼 카작무스 회사는? 역시...그럼 카자흐스탄은? 변변한 시내 스케치 조차 없었다.예상은 했지만, 최악이었다. 갈수록 내 얼굴이 굳어졌다.아무리 자료화면을 깔고,차대표 얼굴을 구석에 조그맣게 스퀴즘해서 영상을 만든다고 해도,엉뚱한 자료화면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인터넷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우선 '포브스誌' 홈페이지. 리스트 754위에 국적 'South Korea'와 함께 'Yong keu Cha'의 이름이 선명하다. 좋군. 다음은 '카작무스사' 홈페이지 서핑. 그러나 영자 스펠링을 알 수 없어 검색이 잘 안 된다.런던 증권거래소 FTSE100지수에 포함된 우량기업이라는 기사문구가 떠올랐다. 검색끝에 가까스로 홈페이지 주소를 찾을 수가 있었다. 다행이 홈페이지는 회사 홍보 이미지컷이 여러컷 있어서 나름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리포트의 키를 쥐고 있는 차대표와의 통화가 계속 안 됐다. 신호는 가는데,계속 응답이 없었다. 리포트 시간은 다가오는데,입이 말랐다.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 쯤,차대표로부터 리콜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내 소개를 시작으로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정중하게 인터뷰 부탁을 했다. 차대표는 자신이 포브스지에 '억만장자'로 소개된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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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대표의 대답은 그러나 '노'.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지난해 한두 차례 신문에 자신의 스토리가 소개된 뒤,'곤혹'을 치뤘다고 한다. 한국에 아예 안 들어갈까 마음을 먹을 정도로 심한 마음고생을 했다고 한다. 대충 짐작은 됐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를 소개하는 좋은 의도라며 설득을 했다.차대표와 친하다는 선배 기자들 이름도 팔았다. 하지만 차대표의 의지는 단호했다. 결국 데스크에 이 내용을 보고했고, 내 아이템은 빠졌다.

 아쉬웠다. 빈약한 화면에도 불구하고,차대표의 '성공스토리'는 충분히 소개할만 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것이었다. 우리 사회의 60,70년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그리고 지금은 사실상 불가능한 '자수성가 기업인'의 신화였기 때문이다. 재벌총수나 일가가 아닌 평범한 샐러리맨이 억만장자가 됐다는 차대표의 이야기는 직장인들에게는 여전히 흥미진진한 '팬타지'다.10년전 평범한 30대 후반의 과장이,재벌총수 부럽지 않은 부자로 변신한 기업판 '신데렐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국자본과 삼성물산의 대결, 눈물 머금은 전면후퇴라는 '음모론'까지 첨가를 하면, 흥미만점의 기업 드라마다.

 올해 50살인 차용규 대표는 경기고 출신이다. 그리고 삼수를 해서 서강대에 들어갔다고 한다. 당시 경기고가 이른바 'SK'로 불릴 정도로 잘 나갔던 것을 감안하면, 모범생이나 우등생은 아니었다는 소리다. 또 나이가 차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군에 끌려갔다고 한다. 그러나 차대표는 졸업후 삼성물산에 입사해서 무섭게 집중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특히 카자흐스탄 지사 발령은 차대표에게 인생 일대의 큰 전환점이 된다. 차대표에게 엄청남 부를 안겨 준 '카작무스社'와의 인연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차대표는 1995년부터 카작무스의 일을 맡게 된다.카자흐스탄 정부가 삼성물산에게  위탁경영을 맡기면서,알마타 지점에 근무하던 차대표를 포함해 16명의 '삼성맨'이 특공대로 투입된 것이다. 구리 생산 회사인 카작무스는 카스피해의 텡기스 유전과 더불어 카자흐스탄의 보물로 꼽히지만,당시 소련연방 붕괴이후 경제시스템 마비로 체불임금과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천덕꾸러기 기업이었다. 그러나 삼성물산이 위탁경영을 맡은 이후 카작무스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3년동안 2억 5천만달러를 투자해 노후시설의 전면 교체, 생산판매 완전 전산화, 발전소와 광산 추가인수 등으로 2년만에 경영정상화에 성공했다. 2천년에는 자산가치 30억달러의 세계 9위 구리채광 업체가 됐다. '카자흐스탄의 포스코'가 된 것이다.

 차대표는 이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남다른 역량을 발휘했다고 한다. 뛰어난 회사 마케팅과 판매 전략의 수립과 집행으로 부장에서 1년만에 이사보로, 다시 상무로 고속승진을 거듭했다고 한다. 이후 지난 2000년 삼성이 위탁경영을 마치고 카작무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선 뒤에는 아예 회사의 공동대표로 취임했다. 이후, 카작무스 매출의 50%를 차지하는 중국시장 공략을 선두지휘했고,지난 2천5년에는 깐깐한 재무감사를 통과해 런런증시에 상장을 시켜 카작무스는 FTSE100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현재 카작무스는 2천6년상반기 수익만 1년전 보다 170% 증가한 10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우량기업이다.이 회사 시가총액은 현재 100억달러가 넘는다.

 이제 차용규 대표의 재산으로 들어가 보자. 멀리도 돌아왔다.차대표가 공식적으로 보유한 회사주식 시가총액은 15억달러다. 1조 3천억원이 넘는다. 또 이미 지난 2005년 상장당시 상당한 지분을 매각해 거액을 손에 쥐었다고 하니 그 이상일 것이다. 그래서 일부 호사가들은 사실상 차대표가 한국의 최고부자라는 평가를 한다. 재벌그룹 회장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회사주식을 현금화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차대표는 이번 포브스지 억만장자 선정에 앞서,지난 2005년 선데이 타임즈 영국 부자순위에서도 68위를 기록했다. 영국여왕은 192위였다. 그래서 차대표 앞에는 '영국 여왕보다 부자인 한국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고 한다. 또 FTSE100 기업중 유일한 동양계 대표이사라고 한다. 말그대로 재벌 회장도 울고갈 만 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차대표의 '대박'에는 삼성물산의 눈물겨운(?) 후퇴가 있었다는 '음모론'도 있다.즉 삼성물산이 카작무스에서 바꿈시켜 투자 수익을 회수하려고 할 때,영국계 자본이 삼성물산의 경영권을 위협해 어쩔 수 없이 철수하게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생긴 과실의 상당부분을 차대표가 차지했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물산은 지난 2003년과 2천4년 범영국계 자본의 지분인수 매입으로 경영권 위협을 느낀 적이 있다. 그룹 지주회사 가운데 하나인 삼성물산에 대한 적대적 M&A는 그룹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 결국 삼성물산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카작무스를 서둘러 매각했다. 삼성물산이 카작무스에서 손을 턴 지 몇달도 안 돼,영국계 자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분을 전부 매각했다. 또 몇달 뒤 카작무스는 런던증시에 상장돼,대박을 터트렸다.끝없이 치솟는 구리가격 덕분이었다.

 이 음모론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구성조건을 제대로 잘 갖춘 음모론이다. 결과적으로 거대 영국자본에 국내 기업이 '당했다'는 것이 분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차대표의 성과를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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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작무스라는 '노다지'를 명확히 꿰뚫어 본 차대표의 혜안과 이후 10여년 이상 쏟은 열정과 노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여전히 다른 이야기보다 이 '음모론'이 더 흥미롭다. 그래서 만일 차대표를 개인적으로 만나 친해질 기회가 있다면,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싶다. 물론 기자가 아닌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말이다. 그 억만장자가 된 것은 아닐 테니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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