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노후생활 보장을 위한 국가의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 공적연금, 즉 국민연금입니다.
지구촌 170여개 나라에서 연금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것만 봐도 연금제도의 보편타당한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동시에 이들 국가 가운데 연금문제로 고심하지 않은 나라가 한 곳도 없을 정도로 참, 어려운 문젭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1988년에 처음 도입된 연금은 11년만에 자영업자에게까지 전면 확대돼 '전국민 연금시대'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불균형을 양산하는 구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보험료는 적게 내고 급여혜택은 이에 비해 많이 받도록 설계됐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당시만해도 경제개발 세대에 대한 보상차원의 논의가 있었고, 여타 소득보장체계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그 이윱니다.
그런데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저출산은 더 심각해지면서 생각보다 빨리 연금 구조의 불균형은 심각성을 드러냅니다.
돈을 받아가는 사람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돈을 납부할 계층은 더디게 증가하게 되면.....? 자연히 기금엔 압박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부담·고급여’의 현행 구도대로라면(보험료 9%, 급여(소득대체율) 60%) 2036년이면 기금이 적자로 돌아서고, 지금으로부터 40년후면 아예 기금이 소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40년후의 일, 미리 걱정할 필요 있냐고 물으실수도 있겠습니다.
제가보기엔 있습니다. 아니 해야 합니다.
국민연금은 전형적으로 후세대가 부담해 먼저 나이드신 어르신께 소득을 보전해주는 구돕니다. 지금은 그럭저럭 꾸려가겠지만 이대로 그냥 간다면 2070년이면 현재 9%대인 보험료율을 40%까지 올려야 겨우 수지를 맞출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연금 개혁을 강하게 주장하는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이걸 두고 '40년후면 터지는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가고 있는 걸 느낀다'라고 표현합니다. 저출산 시대에 늦게 태어난 죄밖에 없는 후세대에게 이런 부담까지 지우는 구조는 고칠수 있을때 고쳐야 합니다.
그럼, 그렇게 심각하면 빨리 고치면 되는거 아니냐. 당연한 지적이죠.
정부도 각계의 의견을 반영해 지난 2003년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좀 더 내고, 좀 덜 받는 해법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4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물밑 논의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진척과 성과는 도출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연금 문제가 정치적인 이슈로 좌지우지되기 때문입니다.
정부안대로 노후에 덜 받게 되면 노후생활이 곤란에 빠질 것이라는 야당의 문제제기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저소득층 노인에게 노령연금을 일괄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법'을 함께 보완책으로 내놨습니다. 야당 주장 일부를 받아들여 협의를 모색한 셈이지요.
결국 우여곡절끝에 지난해 말 국회 보건복지위 상임위를 통과했고, 연금개혁에도 시동이 걸리는 듯 했습니다. 법적 하자가 없다면 법사위를 통과할 것이고 그렇다면 본회의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현재 여전히 국민연금 개정안은 법사위 통과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시국회가 하루 남은 오늘, 국회에선 사학법이다 주택법이다 다른 이슈로 싸우느라 국민연금은 주요 논의 대상조차 못되는 모양샙니다.
한나라당과 정부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개혁안이 완전치 못하다는 것을 이유로 듭니다.
하지만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연금과 같은 문제엔 정답이란게 없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맞춰가려고 노력할 뿐이죠.
저성장, 고령화, 저출산을 함께 겪고 있는 선진국들도 기존 연금제도를 고칠 때 급여수준은 낮추고 부담은 인상하는 것을 재정안정의 기본 틀로 삼고 있습니다.
때문에 상임위를 통과한 수정안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추가적으로 개선기회는 있습니다. 개선안이 맘에 들지 않아 통과시키지 않음으로써 치러야할 사회적 비용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높습니다.
연금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개혁은 힘들게 마련입니다. 이미 수급자 200만명을 넘어섰고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돈을 받기 시작하는 수급자는 기득권자가 되고 기득권자의 비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개혁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특히 올해는 대선과 같은 굵직한 일정으로 정치적 논리에 따라 제도개혁이 표류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역시 시간이 흐를수록 개혁 성공은 멀어지게 됩니다.
지금 국민연금 개혁은 국민은 뒷전으로 하고 정치적 고려만 남은채 진행되고 있습니다.
연금개혁에 대해 강건너 불구경식으로 소극적인 한나라당 내부에선 연금을 건드리는 것 자체를 꺼린다는 얘기도 흘러나옵니다. '연금 건드리고 집권 성공한 적 없다'는게 그것이죠.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가 연금재정 안정을 위해 노후연금액을 깎자고 한 게 주요 패인이었다는 의견이 아직도 한나라당 내부엔 있다고 합니다.
너무 오래 논쟁을 거듭해왔기 때문에 해묵은 의제처럼 돼버린 국민연금.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습니다.
일단 이번 임시국회에서 연금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내년부터 시작될 예정인 기초노령연금(65세 이상 노인 50%에 월 8만9천원지급)은 준비기간 부족으로 시행되지 못합니다.
더 늦기전에,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정치적인 결단이 필요한 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