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거리를 지나다니다 눈에 띄는 광고 두 개를 발견했다. 하나는 시내버스 옆 면에 붙은 100% 유기농 녹차 선전인데, 카피가 강렬하다.'녹차는 불평등하다' 또 하나는 경복궁 근처 주상복합 아파트 공사 현장을 지나다 본 대형 현수막 문구다. '근본이 다른 터에 근본이 다른 당신을 모십니다'
'품격이 다른', '고품격의' 같은 표현은 광고에서 흔히 듣고 봐왔지만, '근본이 다른'이란 표현은 다시 한번 현수막을 쳐다보게 한다.
'품격이 다른'과는 그야말로 근본이 다른 표현이다. 근본이 다르다는 건 너와 나의 신분이 다르다, 너와 나는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는 것을 강력히 암시한다. (당시 갑자기 소설 하나가 생각났는데, 그게 왜 홍길동전이었는지는 다들 짐작하실진저)
"All men are created equal"
2백 몇십년 전 미합중국은 바로 이 말에서 출발했다. 18세기 후반 미국은 독립선언문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선언함으로써 인생에서 '운명'의 범위를 대폭 축소시켰다. 곧이어 프랑스가 인권 선언을 통해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확인한 이래 인류는 평등이라는 가치를 존중해왔다.
그러나 사실 인류 역사에서 평등의 역사는 짧고 차별의 역사는 길다. 그동안 인류의 삶을 지배해온 건 신분제로, 불평등· 차별이야말로 인류의 오랜 키워드였다.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조차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는 날 때부터 자유롭고 어떤 이는 날 때부터 노예인데, 노예로 태어난 사람에게는 노예제도가 편리하고 정당하다' (politica, BC 350)
신분제 사회에서는 평등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평등이라는 기치를 내건 근대 정신은 이를 완전히 바꿔놓았고 그것이 급속한 현대 문명 발달의 계기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세습 사회였다면 이룰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이 능력 위주 사회에서 실현된 것이다.
그런데 그 능력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현대는 다시 신분제 사회를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양극화 현상은 더이상 특정 국가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능력있음'은 '능력없음'을 전제로 한다. 능력있는 사람들은 더이상 능력없는 사람들과 평등하게 지내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불평등 마케팅은 계속되고, 심화될 것이다. 2백여년 숨어지내던 불평등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