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13일부터 24일 사이 중국 관영 중앙TV (CCTV)가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방영하자 중국 사회에 큰 소동이 벌어졌다... 12회 시리즈가 끝나자 방송사에는 "재방송하라"는 시청자의 전화가 쇄도했다. 결국 CCTV 측은 지난 11월 27일 이 프로그램을 재방송했다. 게다가 프로그램을 담은 6개짜리 DVD는 12월 20일 베이징 등 대도시 서점에 깔리자마자 2~3일 만에 동이 났다. 8권으로 된 '대국굴기' 책 역시 1만질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한국의 EBS에서 2주 동안 밤 11시마다 방영했던 '대국굴기'(따구어쥐에치:大國굴起)가 지난 주 막을 내렸다. 한 일간지에 실렸던 위 기사가 영향을 줬을까. EBS는 중국 CCTV가 방송한 지 겨우 한 달 남짓된 이 프로그램을 급히 수입해 틀었다. 도대체 어떤 프로그램이길래 중국인들이 저 야단일까, 드라마도 아닌 다큐멘터리에.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CCTV 다큐의 수준이 궁금해서 졸린 눈을 치켜떠가며 12편 중 5편을 봤다.(물론 일부만 본 편이 더 많다)
'대국굴기'는 '대국' 즉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일본 등 9개국이 15세기 이후 어떻게 세계의 강대국으로 부상('굴기')할 수 있었는지를 3년에 걸친 현지 취재와 세계 석학들의 인터뷰를 통해 엮어낸 정통 다큐멘터리다.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촬영, 음악, 편집 등은 NHK 다큐를 보는 것 같았다고 할까.-특히 CG의 수준은 상당했다- 내용은 기대에 못미쳤다. 그냥 교육용 세계사 다큐를 보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눈길을 끌었던 한가지. 도대체 사회주의 중국의 국영방송이 만든 다큐멘터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관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홍콩의 유력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의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대국굴기'는 마르크스주의로 역사를 해석하는 전통적 시각에서 탈피, 식민지 지배와 경제적 수탈을 자본주의 국가의 경쟁력으로 재해석하는 시각을 선보이고 있다"
주목할 만한 또 한가지, 이 다큐에는 중국편이 없다. 왜? 다음 편인 13편은 그들, 즉 중국인들이 써내려갈 것임을 중국인들은 확신하고 있으므로. 이것이 중국 정부가 이 다큐를 기획한 배경이며 중국인들이 이 다큐에 주목한 이유일 것이다.
요즘 중국에선 또 한 권의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에 초판 60만부를 발행한 이후 해적판까지 지금까지 약 4백만부가 팔리며 중국 출판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이 책은 바로 '논어심득'(룬위신더:論語心得)다. 위단이란 베이징 사범대학 교수가 CCTV 과학교육채널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쓴 이 책은 논어를 현대생활에 접목시켜 대중이 읽기 쉽기 서술한 책이다. 들리는 말로는 이 책 때문에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른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라는 논어의 한 구절이 유행어가 됐다고 한다.
물론 중국인들이 '대국굴기'나 '논어심득'에 열광한다고 해서 모두 좋아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고 한다. 유구한 중국 역사 속에서 채 100년도 안되긴 하지만 그들은 사회주의를 나라를 운용하고 삶을 영위하는 이데올로기로 삼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은 하나의 거대한 선박이 천천히, 그러나 엔진 룸에선 굉음과 뜨거운 열기를 일으키며 저 멀리 대양을 향해 뱃머리를 돌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비단 경제 얘기. 이념 얘기가 아니다. 다큐가 화제가 되고 책이 화제가 되는 사회. 거기서 중국사회의 어떤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무엇이 화제가 되는가. 누군가가 누군가를 화끈하게 물어뜯어야만 관심이 되고 먹고 사는 것 빼면 나머지는 관심 밖이다. 지도자의 말이 화두가 되기는 커녕 품위가 있니 없니의 대상이 되는게 우리의 현주소다. 긍정적인 에너지는 오로지 해외로 진출한 스프츠 스타에서만 찾을 수 있다. -가끔 미국에서 성공(?)하고 금의환향(??)한 한국인의 핏줄이 섞인 미국인(???)에서도 찾는다- 그것도 말초적 쾌락의 언저리를 맴돌다 사라져버리는 일종의 대증요법일 뿐이지만. 정부는 TV와 라디오, 신문에 광고를 내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호소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중국에선 논어에 나오는 구절들이 유행어라는데 요즘 우리 사회 최고의 유행어 가운데 하나는 개그프로의 한 코너 '같기道'에 나오는 바로 이거다. '이건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안되는 것도 아니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