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집에 들어가기가 멋쩍어 선물세트를 하나 주문해놨습니다"
설연휴를 하루 앞둔 16일 8천300여개 중소기업체가 밀집해있는 경기도 안산시 반월·시화공단. 민족 최대의 명절이 다가왔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썩 밝지는 않았다.
경기 침체, 원자재값 상승, 납품가격 하락 등 최근 수년간 중소기업들에 악재가 겹치면서 이제는 업주나 직원들 모두 명절이 두려울 정도다.
반월공단에서 섬유를 가공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김모(51)씨는 "맘 같아서는 현금을 융통해서라도 직원들에게 '떡값'을 나눠주고 싶지만 중소기업은 신용등급까지 낮아져 자금융통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열심히 일해서 매출총액이 늘어도 수익은 점점 떨어져가니 직원들 볼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기업 협력업체들의 사정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전기전자 회로연결 부품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납품하는 경기도 화성의 모 업체는 지난해 매출이 20% 이상 신장해 300억원을 돌파했지만 순익은 오히려 30% 가량 줄었다.
환율 하락 등으로 원자재값 등 비용이 크게 증가했으나 대기업에 납품하는 가격은 오히려 소폭 하락했기 때문이다.
"수출에 주력하는 대기업의 경우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늘어난 비용을 1차협력 업체의 납품가격 인하로 상쇄하려고 하기 때문에 협력업체의 부담은 배로 늘어난다" 고 이 업체 대표 황모(47)씨는 전했다. "어렵지만 가격을 올려달라고도 못해요. 그러다 거래 중단이라도 되면 바로 부도로 갑니다"
어려운 사정은 직접 수출을 하는 중견업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안산에서 40여 년간 동판, 동관 등 동 제품을 수출해온 한 중견업체 역시 지난해 매출이 110억원이나 신장, 460억을 달성했음에도 순익은 10억원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
이 업체 역시 국제원자재가격 상승으로 비용이 늘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값싼 중국제품들과의 경쟁으로 인해 수출가격을 점점 낮춰가고 있다.
이 업체 대표 이모(68)씨는 "지난 2005년까지만 해도 동판 1㎏당 1천500원 정도의 가공비를 수익으로 남겨 수출했지만 최근엔 저가의 중국제품들로 인해 1천원도 채 남기지 못한다"며 "인건비 상승, 원자재값 상승 등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동물의약품전문업체 A사는 매출감소가 이어지면서 직원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7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이 업체는 10년차 이상의 간부급들이 많고 5~10년차 의 중견급들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항아리구조를 갖게 되면서 영업노하우 전수나 회사내외 인맥 형성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회사 중견간부 김모(39)씨는 "열심히 일하고 생산성이 높아져도 외부적인 요인으로 수익 감소가 몇년째 이어지니 직원들의 이직을 막을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설 상여금이나 선물 등 '명절 분위기'는 이들에게 요원하기만 하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서부지역본부의 표본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500여개 업체 중 200여개만이 설 상여금을 지급하고 이 중 100% 이상 지급하는 업체는 90여개 에 불과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다 지난해 성남 분당의 중소기업으로 이직한 김모(29)씨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명절분위기는 천양지차"라며 "빈손으로 들어가면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인터넷쇼핑몰에서 선물세트를 주문해놨다"고 푸념했다.
(안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