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을 돌아 여행을 왔는데, 이 곳에서 먹고 살아야 한답니다.
여기 사람들 생긴 것도 나랑 비슷하고 말도 비슷한데, 정작 말은 안 통하고...
돈은 누가 조금 쥐어 줬는데 어떻게 써야 할 지도 잘 모르겠군요."
기자일을 하다 보면 좋은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남들이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네요.
공부를 많이 하신, 똑똑한 법조인들이나 공직자들, 선후배에 치이는 월급쟁이 회사원...
사나흘에 한 번씩 밤을 새며 출동하는 경찰, 그 경찰에 붙잡혀 오는 연쇄 성폭행범, 그 옆에서 울고 있는 아이와 부모, 또 그 옆에 달라붙어 한 마디라도 들으려는 기자들...
한겨울에도 신문지와 박스만 있으면 잘도 자는 노숙인, 성적 소수자, 탈북 청소년...
이번에 몇몇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어릴 적 중국으로 간 어머니를 찾아 아버지와 함께 한겨울 두만강을 건너다 아버지는 보위부에 끌려가 돌아가시고, 소위 '꽃제비'가 된 친구도 있었고..
누나 넷과 함께 탈북했다가 누나 둘을 인신매매범에게 잃고 생사도 알 수 없게 된 친구..
어머니와 함께 탈출했지만, 한국에 와서 조선족 새아버지에게 어머니가 살해당한 뒤 오갈 데가 없게 된 친구..
하나하나 구구절절하지 않은 사연이 없습니다. 목숨걸고 온 건데 어찌보면 당연하겠죠.
좌우지간 이 친구들은 이제 이 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생각만큼 편하지 않다는군요.
일단 건강이 문젭니다. 한 친구는 이 곳에 와서 가장 맛있었던 게 쌀밥이었대요.(지금은 햄버거, 피자...^^)
처음에는 소화도 안 되고 입에도 안 맞아서 고기는 아예 못 먹었답니다.
이달 초 서울대의 한 교수가 발표한 적이 있지만, 탈북 청소년들의 발달 상태가 한국 청소년들에 비해 아주 부진하답니다. 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한 선생님은 위장병 없는 아이들이 없다며 안타까워하더군요.
무료로 진료를 해 주시는 한의사 선생님은 아이들을 처음 보고 왜 이렇게 심하게 단식을 했냐며...
한국에서 매우 보기 드문 케이스라 하셨습니다.
어릴 적 굶주림, 탈북과정에서 잃은 가족들, 공안을 피해 구걸을 하던 꽃제비 시절의 기억은 이 친구들이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산입니다. 밤에 식은 땀을 흘리고, 잠에서 깨고...불면증에 외로움에...
수학능력 차이가 있다 보니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과 같은 학년에서 공부를 해야하는 스트레스...
자, 그럼 우리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어릴 적 도덕 시간에 북한에 대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역사 시간에도 잠깐 있었던 것 같군요.
일제 말기부터 어떻게 분단이 됐고, 어떻게 전쟁이 났고, 언제 누가 넘어 왔고, 몇 호 땅굴이 발견됐고...
신문과 방송에서는 북한이 핵실험을 했네, 6자회담 전망이 어떻네, 누가 마카오에 나왔네...
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처음 학교에 갔는데, 아이들이 떠드는 거 보고 되게 놀랐어요."
북쪽에는 떠드는 아이들이 없답니다. 착한 학생들이죠?^^
우리는 북한에 대해 나름대로 많이 배우고 있지만, 북한을 떠나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배우고 있지 못합니다.
이들에 대한 지원 문제는 좀 복잡한데..나중에 쓰겠습니다.
이달 말쯤이면 국내로 입국하는 탈북자 수가 처음으로 1만 명을 넘게 됩니다.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아닐까 싶네요.
이번에 만난 한 활동가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혼자 먹고 살고 적응하는 문제가 아니다. 너희들이 다음에 넘어오게 될 청소년과 탈북자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고, 어떤 존재가 될 지 생각해 봐라."
하면 아이들이 정말 책임감 있고,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해 보려고 노력한답니다.
이제는 우리도 책임감 있고 열정적으로, 이들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