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만에 전면 개정한다는 의료법을 둘러싼 갈등이 점입가경입니다.
정부는 환자들도 좋고, 의료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의료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정작 의사들은 엄청난 개악이라며 의료법 개정을 전면 백지화할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정부는 개정 강행 의지를 밝히고 있고, 의사들은 지난번 서울 집회에 이어 계속해서 단체행동을 하겠다고 밝혀, 양측은 한치의 양보도 없습니다.
근데 갈등은 여기서만 있는게 아닙니다.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은 합동으로 '정부도 의사도 다 문제다'라며 또 들고 일어섰습니다.
즉 의사들이 반대하는 것은 말도 안되며 오히려 그 쟁점 외에 의료산업 수익성을 보장한 조항들이 결국 환자들에겐 피해로 돌아올 것이라며 다른 쟁점을 제기합니다.
여기서 끝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의사, 간호사, 약사, 간호조무사 등 보건의료 직종내부에서도 첨예한 대립양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간호진단'이라는 문구를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의사와 간호사가 충돌하고 있고, '투약'이라는 문구를 처방으로 해석하느냐 조제로 봐야 하느냐에 대해 의사와 약사가 의견이 다릅니다. 또 간호사의 영역을 조금 더 늘리는 것에 대해 간호조무사들은 반발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적(敵)의 적(敵)은 동지'라고 의사랑 갈등하는 간호사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간호조무사들은 어느새 의사들과 한편이 돼버렸습니다. 두 직종간에 사실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이쯤되면 글을 읽는 분들도 참... 머리가 아프시리라 믿습니다.
그 점잖다는 의사들이 심지어 집회 중에 할복해 혈서를 쓰는 자해소동까지 벌이는 걸 보면 의사들에게는 정말 생존권이 달린 문제인가보다 싶다가도 의사들이 주로 문제삼는 부분을 보면 집단 휴진까지 해야 할 문제인가, 다소 명분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의료계에서는 의사들이 이번 일에 강경투쟁의지를 불사르는 것이 이 나라에서 의사로 살아가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 현실과 억울함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80-90년대만 해도 의사 사위에 열쇠 3개는 기본이라며 의사가 우리 사회의 '최고 기득권층'으로서의 위상을 충분히 가졌습니다(지금도 물론 일부 그렇지만). 하지만 의대도 많아지고 경쟁은 치열해지고, 점점 의사들 사회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의사들은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인해 한마디로 '당했다'고 생각하는 뼈저린 회한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병원에서 약을 조제해주던 것을 약사집단에게 '빼앗겼다'라고 보는 의사들은 그 이후 계속해서 의사들에 대한 권한은 빼앗고 의무와 처벌은 강화하는 현실이 너무나 못마땅하다는 입장인 것이지요.
그래서 이번 투쟁을 두고 한마디로 '의사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라고 보는 시선이 대세입니다.
그럼 누구 주장이 맞느냐? 과연 답은 있는가? 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시민단체가 의료산업 규제를 지나치게 풀 경우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풍토 속에 환자 건강은 뒷전이 될 것이라 예상하는 것에 대해서는 현실 상황을 좀더 직시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합니다. 지금은 전세계가 의료산업을 경쟁력으로 삼고 다른 나라 환자들도 유치하려고 노력합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 우리나라만 '의료'가 산업이 아닌 복지 개념으로만 묶여 있다면 그건 이상적인 답은 아닐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의사들의 자기 밥그릇 지키기 주장은 일부 이해하지만 그것이 대화를 거부하고 집단행동부터 나서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이 생깁니다. 집단 휴진으로 인해 입게 될 여론의 뭇매를 예상하면서도 굳이 그 부담을 안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칫 초강수를 둘 경우 원하는 것도 얻지 못하고 의사들의 자존심 회복 대신 상처가 남게 될 수도 있습니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많이 배운 점잖은 분들이 덜 과격하게 행동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우회적으로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비판했습니다. 유 장관 역시 이번 의료법 개정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는 것에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실력행사부터 하고 보는 관행은 어떤 명분으로도 이해되기 어렵습니다. 좀더 성숙한 대응방식을 기대해보는데, 과연 그렇게 될 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남길 수 밖에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