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9일 법관 테러를 계기로 내놓은 대책은 재판 속성상 결과에 불만을 가진 당사자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당연한 현실을 전국 법원장들이 새삼 깨닫고 해결책으로 '의사소통'을 강조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법정 난동이나 소란은 법조계의 고질병인 전관예우에도 원인이 있지만 판사가 법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않는다는 소송 당사자들의 의심과 불만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대법원은 이날 일선 판사들에게 당사자들이 재판에서 지더라도 할 이야기는 충분히 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정 의사소통을 강화하도록 당부했다.
◇ 소통 이뤄져야 사법부 판단 존중 = 전국법원장회의 참석자들은 법원 앞에서 계속되는 1인 시위나 법정 난동, 판사 테러 등이 사법부의 판단을 국민이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대법원은 민사 재판에서 구술주의, 형사 재판에서는 공판중심주의를 내실화해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재판 절차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사법적으로 소송 당사자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억울함을 푸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대국민 홍보를 통해 알리고, 법정에서는 재판장이 이를 직접 설명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법률 요건에 맞지 않는 소송이더라도 현행처럼 재판장이 당사자의 말을 자르지 말고, 사안에 따라 첫 기일이나 조정기일, 준비기일 등 적당한 시점에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준 뒤 처리하도록 권고했다.
◇ 사법질서 훼손에는 엄격 대응 = 대법원은 사법부 구성원들의 자성과 노력을 당부하면서도 사법 질서 보호 관련 법률을 제정해 법정 난동과 테러 등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행위에 엄격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현행 법률은 법원조직법 61조(감치 등)와 형법 138조(법정 또는 국회회의장 모욕),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5조의 9(보복범죄의 가중처벌 등)에서 사법 질서 훼손 행위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처벌 규정이 분산돼있어 적용 대상이 애매하고, 법정 소란 행위는 감치 또는 과태료 등 가벼운 처벌만 하도록 돼있는 데다 장소가 법정 안팎이나 그 부근으로 제한돼 있어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고소·고발인, 증인 등에 대한 범죄에 대해서만 가중처벌하는 규정이 있을 뿐 법관이나 법원 직원, 감정인, 소송 대리인의 재판 업무와 관련된 보복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조항이 없는 것도 허점이다.
석궁 테러를 저지른 김명호 전 교수가 공직자 재산등록 내역에서 박홍우 부장판사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고 밝힌 데서 보듯, 사법업무 종사자의 신상정보가 노출돼 있다는 점도 보완해야 할 점으로 논의됐다.
대법원은 외국의 입법 사례를 검토해 문제점을 보완한 뒤 흩어져 있는 조항을 통합해 단일 법령으로 사법질서 보호 관련 법률을 제정할 계획이다.
◇ 법정 난동·법관 신변 안전 대책 = 대법원은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은 별도 시간대로 기일을 지정해 관리하고, 방청객 수가 많으면 특별 기일을 운영하거나 방청권 할당 방식으로 재판 운영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대법원은 또 일선 법원에서 사실상 활용하지 않고 있는 감치, 과태료 재판도 적극 활용하고 면담을 통한 설득이 통하지 않는 악성 민원인은 고소·고발 등 사법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올해 예산으로 본원급 법원까지 자동출입통제 시스템을 설치하고 취약 지역에 감시카메라, 경보기를 설치하는 등 공항급 보안을 갖춘 외국 법원의 시스템에 맞먹는 보안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도 적극 추진된다.
대법원은 일선 법원에서 법관이 요청하면 법관실 앞에 법원경비관리대원 1명을 상주 배치하고, 해를 끼칠 수 있는 당사자 사진은 미리 배부해 출입자 검문을 강화하는 방침도 마련했다.
대법원은 출·퇴근 시간대를 노린 테러, 보복 범죄에 대비해 법관이 요구하면 경비대장이 경찰서에 24시간 숙소 경호를 요청하도록 했고, 공휴일 등 취약 시간의 경호 대책도 별도 마련할 예정이다.
소송 관계인의 신변 안전을 위해 검찰이 신변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수사 기록에 명시해 소환 전부터 공판 검사와 재판부가 함께 보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했다.
대법원은 또 증인 신변 보호가 필요한 사건은 비공개 신문이나 영상신문실 등을 적극 활용하도록 하고, 중장기적으로 엑스레이 검색대 설치, 가방 소지품 검사 등도 실시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