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편지 띄웁니다. 그러고 보니 새해 들어 처음입니다. 2007년 새해, 복 많이 받는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11월말에 다녀온 '태양의 서커스' 취재기도 아직 마무리하지 못했고, 연말에 본 공연들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데, 새해 들어 또 공연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문화부 기자로 있으면서 겪은 몇 해만 되돌아봐도, 확실히 공연이 늘고, 공연 관객이 늘어난 것 같기는 합니다. 경기가 안 좋은데도, 주변에서 공연 봤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지난 연말에도 공연이 정말 많았는데, 흥행 성적도 대체로 괜찮았다고 합니다. 특히 '이름 좀 있는' 뮤지컬들은 연말 송년모임 관객들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고 하는데요, 제 주변에도 동창회나 회사 회식 대신 뮤지컬을 봤다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공연 성수기인 연말을 지나, 연초 1월은 공연이 좀 뜸한 시기인데, 올해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공연 담당 기자인데도, 못 본 공연들이 훨씬 더 많아서 마음만 괜히 급해집니다. 여러분은 요즘 어떤 공연을 재미있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뮤지컬계의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렸던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 그리고 작사가 팀 라이스 콤비의 젊은 시절의 걸작이죠. 1970년 먼저 앨범으로 발매됐다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뮤지컬로 제작됐던 작품인데요, 가롯 유다의 눈으로 바라본 예수 최후의 7일간을 록 오페라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저를 '공연예술의 세계'로 인도한 중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1984년으로 기억하는데, 학창 시절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렸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공연을 보고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먹었습니다'. 예수 역을 어떤 배우가 했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았는데, 유다 역의 고 추송웅, 빌라도 역의 유인촌 씨가 워낙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서인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1984년 공연 팜플렛을 찾았습니다. 팜플렛 주인장의 허락을 받는 대로 제 블로그
http://ublog.sbs.co.kr/shkim0423
에도 올려놓을 생각입니다. 여기 보니 예수 역은 곽은태, 마리아 역은 박해미, 양금석 씨 등이 출연했다고 돼 있군요. 저는 마리아 역은 윤복희 씨가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워낙 윤복희 씨가 마리아 역으로 유명하다 보니 착각했었나 봅니다. )
당시 한국판 '슈퍼스타'는 원작의 실험적 색채를 줄이고 상당히 '기독교적'으로 해석된 연출이었다는 얘기를 나중에서야 들었지만, 그래도 저는 이 작품에서 유다가 단순히 '간교한 배신자'로만 그려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고 추송웅 씨의 연기가 그만큼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유다가 가죽 옷을 입고 나와 코러스와 함께 춤추면서 "알 수 없어, 알 수가 없어…..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당신의 희생은 뭘 위해?"를 노래하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후 저는 이 작품을 노먼 주이슨 감독의 영화로 다시 만났습니다. 하지만 정작 뮤지컬 공연으로는 오랫동안 다시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보고 싶은데 여러 사정들 때문에 못 보게 되는 공연들이 있더라고요. 영국의 리메이크 프로덕션을 정식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들여왔던 지난 2004년 한국 공연은 정말 꼭 보려 했습니다만, 그 때도 둘째 출산 시기와 딱 겹쳐서 놓쳤었죠. 당시 공연에 얽힌 에피소드도 하나 있습니다.
제 출산 휴가 기간 동안 제가 하던 일을 저희 팀의 후배 기자가 맡아서 하기로 했었는데요, 휴가 첫날, 그러니까 둘째 태어나기 닷새 전쯤, 집에 있다가 전화 한 통을 받고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후배 기자가 제 대타로 취재하러 간 첫 공연이 바로 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프레스 리허설이었는데, 리허설이 끝나고 취재진 인터뷰하러 무대 쪽으로 올라가다가 오케스트라 피트로 떨어졌다는 겁니다. 오케스트라 피트는 아시다시피, 무대와 객석 사이, 오케스트라가 위치해 연주하는 자리인데, 아래로 깊숙하게 파여 있는 공간입니다.
후배 기자는 머리에 부상을 입고 약간의 피를 흘리며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처음 얘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나 때문에 후배가 다쳤다는 생각에서부터, 부상이 심하면 어떻게 하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나중에 병원에서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에서 전화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요. MRI였는지, CT 촬영이었는지, 하여간 정밀 검사를 다 했는데, 별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제서야 마음을 놓았습니다. 저에게나, 그 후배에게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된 셈입니다.
어쨌든 이 공연이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올랐으니, 자, 이번에는 정말 놓치지 않으리라 벼르고 있다가, 지난 연말 드디어 봤습니다. '20여 년 만의 만남'이었던 셈이지요. 제가 본 날은 예수에 임태경, 유다에 이 혁, 마리아에 이혜경, 빌라도에 이정용 씨 등의 캐스팅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후에 다시 만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여전히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음악, 정말 '예술'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웨버의 패기와 천재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런 초기 작품들이 저는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작의 힘'과는 별개로, 이번 프로덕션의 '만듦새'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우선 공연장인 코엑스 오디토리움. 원래 공연을 위한 장소가 아닙니다. 라이브 연주가 불가능한 상황, 녹음 반주로는 강렬한 록 음악의 비트가 잘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서 라이브 연주로 했으면 느낌이 많이 달랐을 겁니다. 아마 연말이라 공연장 구하기가 어려웠을 테지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유다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팀 라이스는 한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이 뮤지컬의 제목을 가롯 유다로 할 생각이었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유다 역의 이 혁 씨, 록 밴드 '프라나'의 보컬인데, 아무래도 유다 역이 버거워보였습니다. 예수를 배신하는 유다의 복잡한 심리를 드러내기에는 무게감이 부족했습니다. '최후의 만찬' 장면이 왜 그렇게 헐겁던지요. 노래도 힘겨워보이는 대목이 많았습니다. '열연'이긴 했습니다만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추송웅 씨는 이 힘든 노래들을 다 어떻게 소화했나? 키를 좀 낮춰서 불렀던 건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추송웅 씨의 '노래 실력'에 대해서는 별로 의식하지 않고 그의 연기에 몰입했던 것 같습니다.
유다 역의 무게가 떨어지다 보니 자연히 극의 중심은 예수 쪽으로 많이 가 있습니다. 임태경 씨의 예수는 아주 '부드러운' 예수입니다. 저는 임태경 씨를 뮤지컬 전편으로 본 것이 처음입니다. 일단 안정감 있는 노래 실력은 마음에 들지만, 연기에 대해서는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좀 더 강렬하게 드러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이나 '최후의 만찬' 같은 장면들에서 좀 더 서릿발 같고 고뇌에 찬 모습을 보여줬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요.
극 전반으로 보면 원작의 매력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느낌입니다. 원작은 예수를 배신하는 데 이르는 유다의 고뇌,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의심하는 예수의 인간적인 면모와 고통, 이런 요소들이 팽팽하게 긴장을 이루고, 이 때문에 예수의 ‘인류를 위한 희생’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저는 그래서 이 작품이 일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신성모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오히려 아주 종교적인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전체적으로 이런 긴장 관계를 드러내는 데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리메이크 버전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갈 때 취재진들이 몰려 마이크를 들이대고 생중계하는 장면 등을 추가했다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이런 장면들이 마치 '껍데기'만 가져왔을 뿐 '알맹이'는 빠진 것처럼 겉돌았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이번 공연은 '리메이크 버전'을 또 조금씩 변형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원 버전은 '생중계' 장면에서 무대 뒤편 스크린에 화면이 함께 비치는데, 이번에는 스크린을 생략했고, 유다의 자살은 총을 쏘는 것으로 처리되는 등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캐스팅으로는 보지 못했지만 그룹 부활 출신의 김재희 씨나 김종서 씨 등 유명 가수들의 연기나 노래가 기대에는 못 미친다는 얘기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뮤지컬에 가수나 다른 분야 연기자들을 기용하는 것은 요즘 유행인데, 뮤지컬 배우가 부족한 상황을 타개하고 관객의 관심을 끄는 효과는 있겠지만, 역에 잘 어울리지 않아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가끔 봅니다. 캐스팅에도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쉬움도 많았지만, 저의 추억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은 즐거웠습니다. 뮤지컬을 본 김에 영화까지 다시 꺼내서 봤고요. 아마 저는 이후에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공연된다면 꼭 다시 찾아가 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의 그 감동까지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감수성 예민하던 학창시절, 이 공연을 보고 벅찬 가슴으로 공연장을 나서던 바로 그 때 그 느낌 말입니다. 아, 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