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까기 인형의 계절, 크리스마스 시즌입니다. 올해도 '호두까기 인형'이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공연되고 있습니다. 이맘때만 되면 저는 '어느 집 호두를 깔까' 등의 제목으로 각기 다른 '호두까기 인형'의 특징들을 설명하는 글을 썼었는데, 이제 그것도 매년 계속되니 조금 식상한 느낌이 있어 미루고 있었지요. 하지만 아예 언급도 안 하고 넘어가려니 또 섭섭하네요. 그래서 이렇게 짧은 편지를 띄웁니다.
먼저 유니버설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2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29-30일 군포시문화예술회관). 무대가 아기자기하면서도 화려해서 탄성이 절로 나오는, 예쁜 동화 같은 공연입니다. 어린이들이 많이 출연해서 더더욱 친근감이 듭니다. '꿈과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제가 가장 처음 봤던 호두까기 인형 공연이기도 하지요. 러시아 키로프 발레단 버전입니다.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30일까지 예술의 전당). 볼쇼이 발레단의 유리 그리가로비치 안무 버전입니다. 고난도 춤의 비중이 큽니다. 성인 무용수들이 어린이 역까지 모두 소화하지요. 주인공 클라라가 마리로 바뀌었고, 마리와 호두까기 왕자의 결혼식 장면이 나오는 등 내용이 다른 버전과 약간 다릅니다.
(다른 버전에서는 사탕 요정의 춤을 마리가 구경하는 장면으로 처리되는데, 러시아가 공산화된 뒤,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이나 '초월적인 존재'를 부인하는 정치적 노선 때문에 발레에서도 사탕 요정을 등장시키는 대신 마리 자신이 주인공이 되도록 한 것이라고 합니다. 발레도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셈입니다.)
저는 두 공연 다 여러 번 봤는데,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더라고요. 다만 초등학교 취학 전의 아주 어린 아이들이라면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이 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니버설 발레단 것과 비교하면,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은 고난도 춤에 비중이 실려 어른 취향에 조금 더 가깝기 때문이죠. 물론 둘 다 자녀들과 함께 보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올해는 유니버설과 국립의 '양강 구도'에 러시아 벨로루시 국립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까지 가세했더군요(25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예년에도 '호두까기 인형'이 하도 인기를 끌다 보니 러시아의 다른 발레단을 초청해 공연하는 곳이 많았지만, 이름만 그럴듯한 '이류' '삼류'인 경우도 없지 않았죠. 그래서 처음에는 '벨로루시 국립 발레단'에 대해서도 혹시 그런 곳이 아닐까 하는 경계심을 가졌었는데, 무용계 인사들에게 물어보니, 키로프나 볼쇼이보다 지명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전용극장도 갖고 있고 전통이 있는 단체라며,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 뿐 아니라 뮤지컬로도 꽤 인기입니다(1월 21일까지 웅진싱크빅 아트홀). '난타'의 PMC 프로덕션이 3년째 선보이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검증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기저기서 '호두까기 인형'이 올라가고 있으니, 좀 다른 건 없나,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그런 분들을 위해서는 정동극장이 제작한 '성냥팔이 소녀의 꿈'이 제격입니다(31일까지 정동극장). 지난해 초연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을 좀 더 손질했습니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해피 엔딩으로 각색했는데, 발레 뿐 아니라 한국무용과 탭댄스 등 다양한 춤을 볼 수 있습니다. 예원학교 학생들이 출연해 더욱 앙증맞고 예쁜 느낌이 들지요. 하도 '호두까기 인형'이 많으니, 이 와중에 좀 색다른 무용 공연으로 각광받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매년 '호두까기 인형' 기사를 쓰면서 이제 '연말이구나' 실감했었는데,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호두까기'가 정월대보름 부럼 풍습인데, 발레 '호두까기 인형' 때문에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와 연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호두까기 인형'으로 정말 호두를 깔 수 있을까요. 몇 년 전에 '호두까기 인형' 공연장에서 은우가 졸라대서 목각 호두까기 인형을 하나 샀는데, 이걸로는 도저히 호두를 깔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말이지요. 호두를 사서 한 번 직접 해 볼까 싶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보는 것도 물론 좋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가족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겠지요.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기 바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