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면 기고문, "북한 정책은 절대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다"
북핵 보도와 관련해 5개의 신문을 분석하면서 우리 현실에 다소 낯선 독특한 시각이면서도 인상적인 기사가 킬리 대학 연구원(a fellow at 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and Keele University)인 단 플레쉬(Dan Plesch)의 가디언 기고문이다. 북핵 문제를 비롯해 영국언론의 특성과 상황을 이해하는데 아주 유용한 기고문이니 다소 길더라도 세세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정책은 절대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다. (North Korea's nuclear policy is not irrational at all)"라는 제목에서부터 북한 핵실험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다. "만약 무장해제를 다시 추진하지 않으면 지구촌은 또 다른 예방전쟁과 일본의 핵무장이라는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We are heading towards another pre-emptive war and Japanese nuclear weapons unless pressure for disarmament revives)"라는 부제(副題) 역시 북한핵실험의 후폭풍으로 나타날 군비경쟁이란 부작용과 향후 지구촌민이 손잡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진단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핵확산 방지정책의 실패를 경험한 서구사회가 이제 다양한 측면의 군비축소 정책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북한이 미친 짓을 했다는 다른 신문의 논조와 전혀 다른 관점. "북한은 미친 게 아니라 아주 합리적인 것이다. (Far from being crazy, the North Korean policy is quite rational)". 한국이나 미국에서 보면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시각을 글에 담았다. 근거는 무엇일까. "공산주의 체제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미국 정부에 맞서 북한사람들은 붕괴를 막을 억지력이 필요했다. (Faced with a US government that believes the communist regime should be removed from the map, the North Koreans pressed ahead with building a deterrent)"는 것이다. 국가 존망의 위협에 직면한 정부가 살아 남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어찌 비이성적이냐는 논지다. 우리 입장에서 동의할 수 없다 하더라도 문제해결을 위한 다각도의 객관적인 접근을 위해 제 3자적, 중립적 입장은 언제나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다.
"핵강대국들의 이중 잣대가 사태 악화시켜"
국제정치학적 관점의 분석을 더 들여다 보자. "북한 핵무기의 배경은 냉전이 끝난 뒤 핵무기 보유국가들이 보여 온 이중적인 잣대에 기인한다. 그 자신과 친구들에 대해서는 용인하면서 나머지 다른 국가에는 허용하지 않는 정책이다.(The background to North Korea's test is that, since the end of the cold war, the nuclear states have tried to impose a double standard, hang on to nuclear weapons for themselves and their friends while denying them to others)". 그는 술에 젖어 술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알콜 중독자에게서 적절한 비유를 찾는다. "마치 알콜 중독자들이 10대 음주를 비난하는 것처럼, 핵무기 강국들은 자신들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비난을 분산시키면서 우리시대를 핵확산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Like alcoholics condemning teenage drinking, the nuclear powers have made the spread of nuclear weapons the terror of our age, distracting attention from their own behavior)". 쉽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상황에서 누가 합리적이지 않은지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한다는 자성처럼 들린다.
플레쉬는 더 심층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2002년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장관이 "국제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나 여론이 일본도 이제 핵무기로 무장할 때(depending on the world situation, circumstances and public opinion could require Japan to possess nuclear weapons)"라는 발언을 할 당시 일본 내각에서 차관직을 맡았던 아베 신조가 총리가 된 상황에서 일본도 핵개발에 나서겠다고 요구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북한 핵실험에 이어 일본의 핵무장 우려... 이런 상황은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s)들이 1996년 핵무기 확산 금지조약을 맺고도 사태를 그르치면서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감축은 커녕 새로운 핵무기 개발로 나갔다는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1964년 스탠리 큐브 감독이 만든 영화 제목이자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핵 시대 자신이 만든 기계를 통제하지 못해 불행을 자초하는 인간의 부조리를 다룬 영화다. 핵무기를 만들어 놓고 지구촌을 점점 더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핵강대국의 정치인들을 가리킨다.
"미국 부시정부가 사태 악화시켜"
이렇게 개선될 수 있는 상황을 점점 악화시키는 주역으로 플레쉬는 부시 대통령을 꼽는다. "부시 행정부가 사태를 악화시켰다. 지난 1918년 이래 미국 대통령들이 지켜 오던 군비통제협정을 거부한 것이다. 나아가,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막기 위한 선제공격에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력을 사용한다고 결정했다. 이런 정책은 이라크를 침공하는 구실이 됐으며, 북한과 이란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이스라엘과 파키스탄, 인도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만 적용하는 예방전쟁 정책은 고통과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The Bush administration made things worse. First, it rejected the policy of controlling armaments through treaties, which had been followed by previous presidents since 1918. Second, it proposed to use military - even nuclear - force in a pre-emptive attack to prevent proliferation. This policy was used as a pretext for attacking Iraq and may now be used on either Iran or North Korea. More pre-emptive war will produce suffering and chaos, while nothing is done about India, Israel and Pakistan.)" 한쪽으로 기운 옹고집의 미국 정책이 국제사회를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들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담는다.
"결론은 미국이 앞장서는 군축"
그러나 희망도 버리지 않는다. 군축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플레쉬는 레이건 시절 군축 협상가로 일했던 막스 캄펠만(Max Kampelman,)의 말을 인용한다. "미국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해 모든 대량살상무기들을 폐기하는 일에 정책 최우선 목표를 둬야 한다.(Washington's top priority should be the elimination of all weapons of mass destruction on earth, including those possessed by the US.)". 문제는 강대국 정치인들이 아직 이런 생각에 선뜻 동조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각자 이유가 있겠지만, 영국의 경우 플레쉬는 미국로부터 얻을 이점이 장애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이 말은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대목이다.
"영국의 3개 주요정당 모두 미국의 접근법을 추종한다. 만약 영국이 미국의 핵무기 정책과 엇박자를 놓을 경우 미국으로부터 트라이던트 개량 모델을 얻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The three main parties all follow more or less the US approach. They know that no US government will lease the UK a successor to Trident if London steps out of line on nuclear weapons policy)"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전쟁정책과 세계정책을 영국이 충실하게 뒤따르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트라이던트(핵작수함, 혹은 핵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미사일). 즉, 미국으로부터 얻어야 할 여러 이점을 고려한 조치란 것이다. 세상사가 이렇다. 러시아, 프랑스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 모두 미국과 관련한 자국이익의 관점에서 문제를 접근해 사태를 악화시키면서 책임을 힘없는 약소국에 떠넘긴다는 시각이다.
"영국언론, 절대 군축문제 다루지 않는다"
플레쉬가 차갑게 던지는 마지막 단락은 영국사회와 영국 언론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 영국을 이끌어 가는 상류사회 사람들과 그들의 관점에서 만들어지는 영국 보수 언론의 특징이 무엇인지 자조적이지만 적확하게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짚고 있다. "언론은 유엔에서 벌어지는 군축 논쟁에 대해 거의 보도를 하지 않는다. 군축이란 말은 '상류사회'에서 감히 말해서는 안 되는 단어가 됐다. (The media almost never report on UN disarmament debates. Disarmament has become the word that dare not be said in polite society.)" 지금 우리가 탐구하는 주제는 영국 사회에서 언론의 특징과 역할이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지를 들여다 보는 중이다. 영국 지배계층과 그들의 기호에 호소하며 생존을 모색하는 보수언론이 국제 문제에 보이는 시각의 특징은 무엇인지 단적으로 정리해주는 말이다. 미국 위주 힘의 세계관에 충실한 것. 이것은 영국사회 보수언론에만 해당하는 대목이 아니다. 미국은 물론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다.
그가 남긴 마지막 문장은 특히 우리 한민족 구성원에게 전하는 바가 크다. "영국 정치권이 지금의 핵위기를 부드럽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우리는 일본이 핵무장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또 다른 예방전쟁을 지켜봐야만 하는가. (Do we have to wait for another pre-emptive war or until the Japanese go nuclear before the British political class comes to realise that there can be a soft landing from these nuclear crises.)" 일본의 핵무장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우리에게 북의 핵이 더 위험한가, 중국이나 미국, 러시아의 핵이 더 위험한가, 아니면 일본의 핵이 더 위험한가를 따지는 일은 현명하지 않다. 50여 년 전까지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고, 아직도 그 날을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고 있는 일본이 겉으로는 북한 핵을 강력 비난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도 핵무장할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고 판단하는 이 시점에 한민족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더 급해 보인다.
독자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고 볼 때, 힘의 논리에 묻혀 지나갈 수 있는 내용이나 관점을 소개하는 것이 언론의 다양한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할 때, 가디언을 통해 전해진 플레쉬의 글은 언론의 기능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