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독, 2개의 신문을 갖고 정치권과 연계
더 선과 더타임즈를 찬찬히 분석하면 머독이 참 머리가 좋은 사람이란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고국인 호주는 물론 교육받은 영국, 현재 시민권을 갖고 있는 미국과 홍콩 등에 걸쳐 미디어 제국을 건설할 재능이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게 된다. 더욱이 정치계와 어떻게 친소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자신의 신문사나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육성하고 지켜 나갈 수 있는지 답을 아는 사람처럼 읽힌다. 영국에서 2개의 신문, 더선과 더 타임즈.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들을 교묘히 운영한다. [더 선], 대중지라는 미명 아래 다소 투박한 방법으로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전폭적으로 밀어 준다. [더 타임즈], 정론지라는 타이틀로 좀더 세련되게 정치적인 호오(好惡)를 가려 보도에 반영한다.
현실 집권당인 노동당. 신문에 대해서야 자유 언론 사회에서 제재나 기타 다른 차원의 규제조치를 마련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방송은 다르다. 정부가 BBC에 대한 수신료를 얼마로 책정할 것인가, 공영방송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펼 것인가, 위성과 케이블 채널에 대해 어떤 정책을 마련할 것인가에 따라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위성 채널, SKY TV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정책은 집권당이 정한다. 집권당 당수이자 총리의 방송철학은 무엇보다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다. 그렇다면 SKY TV를 소유한 머독 입장에서 자신이 소유한 신문 [더 선]과 [더 타임즈]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답은 자명하다. 기본적으로 보수주의자인 그가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을 살리면서 동시에 가지 소유 기업도 살리는 방법이 무엇인지...
대중지 [더 선]... 특정 정당 노골적인 지지와 비판
노동당의 블레어에 대해서는 선을 통해 일방적인 지지를 보낸다. 보수당이나 다른 곳에서는 "품격을 갖추지 못한 대중지이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넘길 수 있다. 그러나, 하루 3백80만부가 팔리는 영국 내 최대 발행부수의 신문을 아무리 대중지라고 무시해 넘기는 것은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신문을 통해 매일 선지의 논조를 접하는 다수의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지의 논조에 물들지는 않는다 해도 기사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일부라도 상쇄되는 효과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쉽게 한국서 스포츠 신문이나 일요일에 발행되는 신문을 비난하는 사람이라도 거기에 매일 자신에 대해 좋은 기사만 실린다고 할 때 어떤 생각이 들지 따져 보면 영국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더 선]을 유연한 매체로 활용한다. 그러니까, 언제든 보수당이 집권당이 되면 대중지 선이야 좀 천박한 방식으로 태도를 확 바꿔 보수당과 그 총리를 지지할 수 있다. 노동당이 야당시절, 선지는 보수당을 일방적으로 밀고 노동당을 일방적으로 비판했다. 참다 못한 노동당 당수 키녹은 90년대 초반 선지의 노동당 취재를 금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키녹이 물러나고 일찍 세상을 뜬 스미스 당수의 과도기를 거쳐 블레어가 노동당수가 되고, 집권당이 된 뒤 선지는 블레어와 밀착하는 블레어 대변언론으로 자리잡았다. 이것이 [더 선]의 현실이다. 선지를 보는 독자들은 그 속의 섹시한 여인이나 뜨거운 기사들, 엽기적인 사건사고에 관심을 가지면서 덤으로 정치를 들여다 보기 때문에 정치적 시각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상반신을 드러낸 여인 사진이 사라진다면 구독률이 낮아질지 몰라도, 노동당을 지지하다 보수당을 지지한다고 해서 항의할 독자는 많지 않다.
정론지 [더 타임즈]... 보수적 가치관 전파와 정당에 대한 선택적 지지
이렇게 [더 선]을 통해 집권당, 특히 총리와 교분을 갖고 동시에 정론지 [더 타임즈]를 통해 또 다른 이점을 얻는다. 평소 영국 사회에서 보수적인 가치관, 국제 경제 문제에서 신자유주의적 가치관, 국제분쟁이나 정치에서 친미(親美) 반(反)EU적 시각, 미국 주도하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신봉, 그리고, 제 3세계보다 서양 위주 가치관의 논조로 기사를 다룬다. 이렇게 보수주의 가치관을 전파 하면서 영국 국내 정치에서는 보수당과 노동당에 비슷한 거리를 두며 지지와 비판을 사안별로 선택한다. [더 선]에서 보여지는 정파성에 대해 물타기와 함께 또 다른 차원에서 선택적인 줄타기를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블레어에게 더 많은 방점(傍點)을 찍지만... 그리고 카메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지만... 그리고, 언제든지 큰 표시 나지 않게 슬그머니 돌아설 수 있다. 평소 노동당지지와 보수당 지지의 간극을 그리 크지 않게 설정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당이 오랜 기간 야당 생활을 할 때도 타임즈는 노골적인 보수당 지지는 아니었다. 물론, 보수당측에서 표현하듯이 보수당 언론(Tories press)의 범주에 들어 보수당을 밀었지만... 이정도의 태도 변화는 타임즈에 충실한 독자들에게 큰 표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언제나 명분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독 언론과 국내 보수신문의 비교
상황에 따른 태도 변화는 국내 대형 신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업 신문이 갖는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신문이라면 생존을 위한 기본철학이라 할 수 있다. 좋게 표현하면 유연성이다.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자신의 논조나 기본방향을 수정해 나갈 수 있는 유연성. 이런 의미에서 국내 언론과 대비해 보면 머독의 언론과 국내 대형신문과 약간의 차이점이 발견된다. 대형 신문자본이 소유한 국내의 전형적인 보수 신문 3곳 모두 현 집권당과 집권 전부터 비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왔다. 유연성을 찾아 보기 어려웠다. 이런 가운데 한 신문이 현 집권당과 선택적 비판 관계로 접어든다. 일방적인 비난관계를 청산한 것이다. 보수적인 관점으로 기사를 다루되, 정책에 따라 선택적으로 우호적인 면도 보인다. 이런 유연성 있는 자세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성적으로 비판과 지지를 보내는 합리적인 중도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래서 사세를 키울 수 있다.
그러나 다른 2신문은 유연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현상은 2개의 신문 가운데 왜 1곳만 사세가 약화되는가의 문제이다. 다른 요인이 물론 많지만, 한국적 정치문화와 관련해 독특한 이유가 하나 있다. 한 신문은 한국사회의 주류로 오랫동안 군림했고, 그 결과 경제적 강자로 등장한 영남지역과 그 지역 출신들에게 부동의 지지를 받는다. 반면, 사세가 일그러진 다른 신문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게급 사회적 유습이 남아 있지만, 우리보다 민주주의를 먼저 발전시켰고, 자본주의 언론 철학(신문 분야)을 먼저 정립한 영국의 예로 볼 때 앞으로 어떤 신문이 보수적 독자들이 군림하는 신문시장(돈을 주고 사봐야 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도덕론과는 전혀 다른 윤리가 적용되는 신문시장)에서 살아 남을지 답은 자명해진다(물론 개혁이나 진보를 지향하는 언론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이는 뒤에서 다시 살핀다). 지역적 기반을 연고로 하지 않을 경우 머독이 보여 주는 사례. 2개의 성격이 다른 신문을 갖고 교묘한 줄타기를 하거나 선택적 유연성을 갖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