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은 했다.
기존 '조폭영화'와는 뭔가 다를 것이라고.
인물과 대사에서 색다른 냄새가 풍길 것이라고.
그런데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예상의 폭을 훌쩍 뛰어넘어 아주 독특한 조폭영화로 탄생했다.
그 결과 오히려 여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영화가 됐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 것이 과연 조폭영화일까.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부터 감지돼온 장진 감독의 진화는 '거룩한 계보'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그와 함께 한국형 조폭영화 역시 의미 있게 진화했다.
장르의 전형성을 비틀고 창작의 정수인 상상력을 불어넣은 '거룩한 계보'는 판타지, 코미디와 액션 느와르의 절묘한 결합을 이끌며 참 독특한 맛을 뿜어낸다.
얄미울 정도로 거침없이 전진하고 있는 장 감독을 시사회 이틀 후 삼청동에서 만났다.
"차기작의 주연배우와 함께 아침 6시까지 술을 마시다 나왔다"면서도 먼지 하나 없는 깔끔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이 영화를 이상하게 여자들이 더 좋아한다"며 싱긋 웃었다.
밉지 않은 은근한 자랑이다.
"내 작업 노선으로 볼 때 내가 즐겁고 쾌감을 느낄 때는 통속적인 장르 안으로 고스란히, 그리고 뻔뻔하게 걸어들어간 후 그 안에 내가 가진 것을 녹여낼 때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장르의 폭이 조금 넓어질 때죠."
더 보탤 필요가 없는 설명.
설정만 간단히 말하면 '거룩한 계보'는 딱 '친구'의 전라도 버전이다 (실제로 장 감독이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것 역시 4년 전 전라도 사내들의 기질을 눈으로 확인하면서였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이 영화는 '친구'와 사뭇 다른 길을 걷는다.
"고마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와 "니도 나도 인자 정리혀야지…"처럼 바라보는 지점은 같을지 모르겠지만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은 두 영화를 같은 장르로 묶어도 되나 싶을 만큼 다르다.
"이 장르가 참 힘든 장르예요. 조금만 쉽게 가려고 하면 '또 조폭 코미디냐'는 소리를 듣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폭력성, 선정성을 이유로 포화를 맞게 되죠. 그런데 이 장르의 매력이 뭔지 아세요? 내가 절대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를, 범죄자들의 세계를 간접 경험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거예요. 절대 만나보지 못할 사람들의 모습 속에 내 현실을 매치시키며 관람하는 재미, 그것을 맛보게 하거든요. 그래서 제 식대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장 감독이 택한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남자들만의 우정'이라는 말은 굉장히 이기적인 거예요. 여자들에게도 우정과 의리가 있죠. 다만 '얘는 의리파야'라는 칭찬이 여자보다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더 큰 칭찬으로 느껴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러나 여자든 남자든 다같이 공감하는 정서잖아요? 조폭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조폭영화들이 여자들에게 별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표현의 선정성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조폭영화 역시 표현하기 나름이라는 거죠. 이 영화를 만들면서 혹시 영화가 남성 편향적으로 쏠리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일단 '거룩한 계보'는 폭력이 있되 과도하지 않다.
대신 그 자리에는 위트와 유머, 그리고 가공할만한 판타지가 자리하고 있다.
또 "제발 우리 싸우지 말자"고 애원하는 깡패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그 모든 설정이 치기 어린 장난으로 폄훼되지 않는다.
장 감독은 그들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기막히게 좁히며 관객에게 새로운 요리를 권한다.
"사실 좀 더 나가려 했어요. 그런데 강우석 감독님을 비롯, 주변에서 끝까지 말린 것도 있고 '자중해라'라는 말도 많이 들어서 처음의 생각보다는 많이 고쳤어요. 제가 원래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잘 들어요. 작품에 반영도 잘하구요. 그렇지 않고 이 영화를 초고대로 찍었다면 교도소에서 미사일도 발사됐을 겁니다(웃음). 편집 역시 그러한 고려 속에서 진행돼 몇몇 에피소드는 잘려나갔습니다."
두려움 없는 상상력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무기.
그는 여기에 창작자의 호기심을 얹어 각종 장르의 전형을 비틀며 한국 영화계에 '장진 스타일'이라는 것을 전파해나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의 전공을 코미디 혹은 가벼운 소극이라 생각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진화하고 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한다면 안주하는 것이지요. 아직까지 작품마다 배워나가는 입장에서 안주는 재미가 없죠. 또 저도 여러 장르에 도전하면서 어느 정도 그러한 장르에 미세하게나마 공헌하는 바가 있지 않겠어요? 결국 제게 중요한 것은 어떤 장르, 어떤 유형의 영화를 하느냐가 아니라 제가 그동안 안 해보고 궁금해하고,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한다는 것입니다. 저보고 '너 왜 블랙코미디나 하지, 이런 영화를 하느냐'고 해도 그런 말 귀에 안 들어옵니다."
그는 이미 차차기작의 내용까지 구상을 끝냈다고 했다.
그의 샘솟는 에너지가 입 안에서 아삭하게 씹힌다.
입맛을 돋군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