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와 정치색
오랜 투쟁과정을 통해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영국. 도전과 탄압의 악순환 속에서 타협을 통해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영국.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라는 일견 조화로울 것 같은 두 개념이 어색하게 공존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언론의 사명을 강조하는 우리 풍토에서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언론은 중립을 지켜야 하고"... 이런 신조들이 영국에서는 조금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는 문구이기 때문이다. 언론(방송이 아닌 신문)은 특정 정파를 지지하거나 특정 계층에 기초한 논조를 유지하기도 한다. 지난 9월 맨체스터(Manchester) 노동당 전당대회 때 각 신문들이 제각각의 논조를 갖고 블레어를 평가하거나 찬양 비난하는 실태를 통해 이런 현실을 가감 없이 들여다 봤다.
물론 한국사회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신문들이 각자 특정 정파에 대한 애정을 갖고 기사를 작성하거나 사설을 쓰면서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자신만이 공정하고 중립적인 언론이라고 힘 주어 강조한다. 왜 그럴까. 그렇지 않으면 언론 스스로가 부도덕한 일을 저지른 것처럼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고 또 사회단체나 시민들로부터 비난받기 때문이다. 일종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 바로 이점이 영국 언론과 한국언론의 차이다. 우리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언론과 정치의 관계. 10월 보수당 본머스(Bournemouth) 전당대회에서 카메론 당수의 연설을 다루는 신문들의 보도 행태를 통해 다시 한 번 영국에서 언론과 정치의 관계를 진단해 본다.
'더 선'... 블레어 일방 찬양, 카메론 일방 비난
9월 26일 노동당의 블레어 연설에 맞서 10월 4일 보수당 카메론 당수의 전당대회 연설이 있었다. 국정 전반에 걸쳐 분야별로 자신이 바라보는 인식과 노동당의 실책, 보수당의 다짐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자리였다. 영국신문들이 블레어의 연설과 비교해 카메론의 연설을 어떻게 다루는지 자못 흥미진진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영국신문의 정파성을 비교하기 아주 적절한 소재다. 좀더 객관적이 비교를 위해서는 똑같은 사안을 놓고 어떻게 접근하는가를 살펴야 하는 법. 전당대회 당수 연설이야말로 그 좋은 실례가 된다. 두 연설을 비슷한 분량에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우리네 언론정서에 어울린다. 영국은 어떤가. 먼저, 9월 26일 블레어의 연설 때 블레어를 일방적으로 미화하던 루퍼트 머독 소유의 대중지 더 선(The Sun).
선은 블레어 연설 때 1면 전체를 할애하고, 반나의 여인까지 동원하는 등 무려 7개면에 걸쳐 블레어천가(블레御天歌)를 읊었다. 그러나, 10월 4일 카메론의 연설은 1면에 한 줄도 비치지 않았다. 1년을 통째로 할애했던 블레어의 연설과 다르다. 작게 라도 다루고 속지에 상세하게 다룰 법도 한데 선은 그렇게 복잡한 캐릭터를 갖지 않는다. 8면과 9면 오직 2개면을 할애하는데 그쳤다. 흑백으로 카메론이 아내 사만다(Samantha)와 키스하는 사진을 큼직하게 실어 놓고 붙인 제목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카메론의 스캔들(CAM'S SCAM)". 아주 간명하면서도 공들인 듯 제법 자구(字句)를 맞춘 제목(題目)은 우호적인 분위기가 아니라는 선을 넘어 망신을 주는 차원에 가깝다.
카메론 비난에 은근히 친미, 반 유럽 정서 반영
부제(副題)는 카메론을 구체적으로 비난한다. "데이브(카메론)는 약속을 한다... 그런데, 정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Dave keeps his promise... and keeps party in dark on policy)". 알맹이가 없다고 노골적으로 빈정대는 제목이다. 기사내용도 영국이 당면하고 있는 국내외 현황에 대한 카메론의 식견과 전망을 담담하게 전한다기 보다 동성연애 문제 같은 부차적인 문제를 거론하는데 그친다. 나아가, 불법이민 같은 중요한 현안을 놓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런 지적은 언론으로서 일정부분 책임있는 지적일수 있다. 그 다음이 중요하다.
사주 머독이 가진 친미, 반유럽의 정서를 은근히 강조한다. 친미(親美) 반(反)유럽 정서의 대표격은 "EU 제국(EU empire)"라는 표현이다. 선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EU제국의 팽창 정책에 맞설 어떤 정책도 내놓지 않았다(There was nothing to suggest he will take on the ever-expanding EU empire)"고 지적한다. 선이 블레어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이유가 미국의 전쟁, 팽창정책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데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머독은 호주 태생이지만, 현재 미국 시민권을 갖고, 영어권 전역에서 자신의 언론제국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반나(半裸)의 여인도 카메론 비난매일 3면에 싣는 반나(半裸)의 여인. 이 여인을 통해서도 카메론을 비하한다. 블레어 연설 때도 나신의 여인은 등장했다. 그 때는 사랑을 고백하듯 찬사로 일관하던 분위기가 180도로 바뀐다. 19살 다니(Danni)라는 여인은 "카메론이 보수당 당수로서 약속을 했더군요. 그런데, 국민들은 비젼만 제시할게 아니라 정책에서 구제적인 면모를 더 듣고 싶어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다음 선거에서 보수당이 진정으로 노동당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요(I think the public needs to hear him focus more on policies and less on presentation, if the Tories are going to realistically challenge Labour to the next election)". 선이 다니라는 여인을 통해 카메론의 장황한 연설이 정책, 다시 말해 알맹이 빠진 "빛 좋은 개살구"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카메론에 대해 중립적인 관점을 선에서 찾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