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손에서 태어난 독립국가 출신 사무총장
반기문 외교 통상부 장관의 8대 유엔 사무총장 당선이 사실상 굳어져 가는 느낌이다. 한민족의 일원, 대한민국 국민으로 참 반갑고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유엔 결의로 탄생한 국가란 점에서다. 1945년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미국과 소련은 일본의 무장해제를 이유로 천년 넘게 단일 국가를 이뤄 온 한국을 둘로 갈랐다. 이후 미소 공동위원회가 통일국가 수립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을 포기한 채 한국 문제를 유엔에 넘겼고, 유엔은 자신이 감시할 수 있는 지역 안에서 선거를 통한 국가 설립안을 냈다. 1948년 5월 북한의 거부로 남한에서만 투표가 실시됐고, 투표가 실시된 지역에서 유엔이 남한을 합법적인 국가(한반도 내 유일 합법정부는 아님)로 승인하면서 남한, 즉 대한민국이 태어났다. 물론 민족과 국가 분열 사태에 대해 김구 선생을 비롯해 많은 국민들이 반대했지만, 미소의 힘이나 유엔의 힘을 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58년 전 생명을 얻은 신생 독립국가 출신 유엔의 사무총장을 눈앞에 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물론 역대 7명의 유엔 사무총장 가운데, 신생 독립국가 출신은 또 있었다. 미얀마(구 버마) 출신의 우 탄트(3대)와 가나 출신의 현 코피 아난(7대)이 그렇다. 그러나, 미얀마, 가나의 경우 각각 1948년과 1957년 식민제국이던 영국과의 협상 속에 독립을 쟁취한 것이지 유엔결의로 독립한 국가가 아니다. 따라서, 반기문장관의 사무총장 등극과 격이 다르다. 반장관의 사무총장 취임은 유엔의 역할이나 존재의의와 관련해서도 의미가 깊다. 유엔이 성공적으로 만들어 낸 국가가 세계사 속에 우뚝 서는 국가로 성장했으니 다른 많은 신생국가들에 우리 한국이 모범이 될 수 있음이다.
더 타임즈... 뇌물 보도
이런 국가적인 경축 속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영국의 정론지 더 타임즈(THE TIMES)가 지난 29일 낯선 기사를 게재했다. 제목은 "한국인(반기문 장관)을 유엔 최고위직(사무총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수백만 달러와 피아노를 사용(Millions of dollars and a piano may put Korean in UN's top job)". 한국정부가 반기문 장관을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아프리카 각국에 원조라는 당근을 사용하고, 피아노까지 선물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탐사보도(Investigative Report)로 무엇인가 중대한 범죄행위를 파헤치는 논조로 게재했다. 더 타임즈라면 언로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하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문으로 평소 보수적인 시각으로 친미 시각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언론이다.
우리사회도 그렇지만, 영국이나 서유럽 사회는 뇌물 이라면 아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후진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부패를 으뜸으로 여기곤 한다. 이런 유럽사회에서 4차 투표를 앞두고 아주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울 수 있는 기사를 게재한 것이다. 한국을 아직도 금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저급한 문화의 국가로 낙인찍는 기사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영국은 상임이사국으로 거부권을 가진 것은 물론 국제 외교가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갖는 나라다. 영국 국민은 물론 다른 유럽 국가들 여론에도 아주 좋지 않은 기사였다. 다행히 외교통상부가 반박 서한을 보냈고, 이 서한을 더 타임즈가 실어 주었으며, 반장관이 4차 투표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어 모든 게 좋게 해결된 느낌이다.
대사의 신문사 방문... 적절한 행동인가...
아직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 특히, 우리 내부적으로 그렇다. 더 타임즈가 금품 제공 의혹 보도를 낸 뒤 한국의 조윤제 주영 대사가 더 타임즈를 방문한 것이다. 29일 오후 급히 외교통상부의 해명 서한을 갖고 더 타임즈의 편집국장과 국제부 간부진을 만나 기사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서한을 전달했다. 4차 투표를 코앞에 둔 시점이라는 긴박한 상황 아래 속히 해당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또, 대사가 직접 관심을 갖고 해결한다는 적극적인 해명의지도 표명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볼 문제도 있다. 대사는 한국을 대표해 영국에 체류한다. 영국 정부도 아니고, 영국의 언론사를 상대로 한 업무에 대사가 직접 나설 필요가 있는가의 문제다.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더 타임즈의 보도가 잘 못됐다면, 공식 채널을 통해 엄중히 항의하고, 법적 절차를 밟으면 된다. 자국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났다고 해서 대사가 직접 언론사를 찾아다니는 사례가 있는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한국의 특정신문이 영국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다뤘다고 해서 주한 영국 대사가 신문사를 방문해 일일이 해명하는 일이 가능할지 되물어 보면 답은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다.
더 타임즈 방문이 국익을 위한 충정과 진실을 밝히기 위한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특정 조직에 대해 무엇인가 한방 터트리고 그러면 그 조직의 최고 권력자가 방문해 해명하고... 뭐 이런 식의 한국적 풍토에 낯익은 풍경이 영국에서 재현됐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국익을 훼손시킨 보도라면 그렇게 대사가 한 번 방문한 뒤 반박 서한 한통 실어 주는 선에서 멈출게 아니라 기사에 문제가 있었음을 밝히도록 실무적인 선에서 요구하고 법적 절차를 밟는 게 순서에 맞는다. 일국을 대표하는 대사가 민영 신문사 편집국을 방문해 일일이 설명하고 다니는 모습은 그 충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지양해야 할 외교적 태도가 아닌지 다같이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