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부터 11일까지 토론토 영화제 취재차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갈때 13시간, 올때는 직항편이 없어서 뱅쿠버 경유하느라 17시간+공항 대기 3시간의 긴 여행이어서 녹초가 된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서비스가 형편없기로 소문난 에어 캐나다 였지만 식사시간에 비빕밥도 주고 간식으로 컵라면도 제공해 주더군요.)
토론토 영화제는 올해 31회째로 북미지역 최대 규모 영화제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세계 시장에 첫 선을 보이는 월드 프리미어가 많고 또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영화를 사고 파는 마켓이 활성화 되어있는 영화제입니다.
칸이나 베니스같은 3대 영화제처럼 공식 경쟁부문이 없고 따라서 황금사자상이니 황금종려상같은 시상식도 없습니다. 비슷하게 출발한 몬트리올 영화제와 캐나다 내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쳤지만 몬트리올은 내부적인 문제 등으로 쇠락해 버리고 토론토는 자리를 확고하게 잡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가까운 거리여서 많은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손쉽게 방문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어 영화제 흥행에 톡톡히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때도 바벨이라는 영화 홍보차 방문한 브래드 피트가 현지 방송에서 단연 화제였습니다.
올해 270여편의 장편 극영화가 상영되는 토론토 영화제에 한국영화가 5편이 초청됐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 김기덕 감독의 [시간],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 같은 작가주의 영화 3편과 [왕의 남자], [괴물]같은 흥행영화 2편이 나란히 초청됐습니다. 토론토 영화제에 출품되었다는 것 하나로 작품성을 인정받기 때문에 출품경쟁이 치열합니다.
한국영화들이 북미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받고 실제로 수출실적을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시금석 역할을 하기 때문에 꺼지는 한류열풍 때문에 위축된 한국영화 수출이 새로운 시장이지만 가장 진출이 어려운 북미시장을 노크하고 있어 중요한 시점입니다.
저는 주로 한국영화 상영회를 가봤는데 우선 부러운 것이 영화제를 관람하는 연령층이 무척 넓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산 영화제나 부천 영화제를 가보면 주로 20대 젊은층이 주류를 이루고 중장년층은 찾기 어려운데 이곳은 10대 학생부터 환갑을 훌쩍 넘긴 노년층까지 폭넓게 분포되어 있어 부러웠습니다. 한국영화를 찾아온 관객들은 대부분 여러 편의 한국영화를 봐왔고 감독에 대한 정보도 갖고 있는 등 영화에 대한 예습을 하고 온 준비된 관객들이 많았습니다.
300만명 인구의 토론토에 10만명 정도 거주하는 현지 교민들과 유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였습니다. 이들은 특히 한국에서 최고 기록을 세운 [괴물]의 주말 오후 상영회에는 거의 절반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괴물]은 [미드나잇 매드니스] 부문에 초청돼 첫 상영회를 새벽 1시에 했는데 참석했던 봉준호 감독 말로는 공포영화 매니아들이 대부분이어서 괴물이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에서 박수치고 환호하는 등 '난잡한' 분위기 였다고 합니다.
또 한가지 특색은 격식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유럽에서 열리는 3대 영화제는 취재 제한도 엄격하고 심지어는 복장까지 규제하는 등 엄격한 형식을 통해 권위를 유지하는 측면이 많지만 이곳은 북미대륙답게 상당히 ‘캐주얼’합니다. 한 장소에 영화사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상담을 벌이는 공식 마켓이 없어 돈많은 영화사는 호텔방을 빌려서 상담을 하고 그렇지 않는 대다수 영화사 관계자들은 호텔로비나 커피숍, 심지어는 길거리에서 만나 상담을 벌입니다. 홍 감독 해변의 여인을 세일하러 온 영화사 대표는 '프랑스 영화사들이 눈독을 들이며 교섭이 진행됐는데 오후에 호텔 로비에서 미팅하고 있는데 오전에 만났던 프랑스 영화사 관계자가 자신을 매섭게 쏘아보며 지나가서 당혹스러웠다'고 하더군요.
또 한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공동집행위원장을 맏고 있는 노아 코완씨의 한국 영화 사랑입니다. 올해 나이 38세로 어린 나이부터 이 영화제 부문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다가 집행위원장 자리까지 올라갔고 또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상영회 때 할리웃 스타 영접하기도 바쁜 스케줄을 빼서 직접 영화와 감독 소개를 하고 또 SBS와 인터뷰도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소개인사를 하는데 젊은 사람이 무대에 올라와 '핸드폰은 꺼주시고...'라는 멘트를 하길래 '이 사람은 사회자고 집행위원장이 곧 무대에 올라오겠구나'하고 있는데 바로 그 사람이 집행위원장이라서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홍 감독 영화에 대해 걸작이다. 환상적이다는 등 극찬을 했고 또 한국영화가 세계에 유례없는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고 독창적이어서 세계 시장에서 먹힐 만하다고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또 한국영화 시장이 커지면서 상업적인 면만 중요시하고 예술적인 진실 추구를 등한시 하는 경향에 대해 우려하는 뼈아픈 충고도 해주더군요.
이런 인물이 집행위원장할 때 한국영화들이 더욱 집중 공략했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영화 수출에 있어 북미시장은 가장 까다로운 시장입니다. 아이비리그를 나온 지식인조차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만들어져 자막을 읽는 영화는 못 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영화도 북미시장에 수출돼 상영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할리우드는 외국의 좋은 영화는 판권을 사들여서 리메이크를 하거나 외국영화를 만들때 아예 영어로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가운데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입니다.)
영화제 대부분 행사는 시내 중심가에서 벌어지는데 흔한 현수막이나 안내 전단도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촬영기자가 스케치를 할때 상당히 애를 먹은 부분입니다.) 목에 아이디 카드를 걸고 영화제측에서 제공한 하늘색 공식스폰서 가방을 둘러맨 영화제 참석 관계자들 모습에서나 이곳에서 영화제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외관보다는 실속을 중시하지만 또 상영회를 개최하는 시스템은 상당히 정교한 이들의 실용주의가 배어든 그런 영화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