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천재' 라는 딱지가 붙고 난 뒤의 삶에 '나'는 없었습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과 틀에 따라 춤추다 보니 이게 뭐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960년대 6살의 나이로 미적분을 풀어내 '천재 소년', '신동'으로 불리면서 세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항공우주국(NAS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으나 1980년대 돌연 귀국해 지방대에 입학하면서 '실패한 천재'라는 꼬리와 함께 영재교육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꼽혔던 김웅용(42.충북개발공사 보상팀장)씨.
최근 세계 3대 인명 사전에 잇따라 오르면서 또 다시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된 그 가 15일 어렵게 입을 열었다.
사실 그는 세계 인명 사전에 올랐다는 보도자료가 '천재'였던 자신의 과거를 또 다시 들춰내게 될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달 7일 충북개발공사가 배포했던 홍보 자료에는 '김웅용 보상팀장이 세계 3대 인명 사전에 올랐다'는 짤막한 내용만 담고 있었다.
그의 전력(?)을 알게 된 언론에서 캐물을 때도 그는 "현재의 저에 대해서만 있는 그대로 평가해달라"며 과거를 묻고 싶어했다.
김씨는 세인들에 의해 '신동'에서 '실패한 천재'까지 극과 극의 평가를 받으며 살았던 지난 날이 견디기 힘겨웠다고 회고했다.
"초등학교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미국으로 건너갔던 터라 국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초·중·고 검정고시를 치러야 했습니다.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인데도 ' 천재라더니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른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더군요. 하소연할 길도, 해명할 기회도 없었죠. 대학 입시를 위한 체력 검사를 치르는 절박한 수험생 처지였는데도 카메라를 들이 대고...언론에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받는다는 느낌 밖 에 없었습니다."
스포트라이트가 화려했던 만큼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귀국한 그에 대한 세인들의 평가는 어린 나이에 감내하기 어려울 만큼 혹독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렇게 뉴스의 초점에서 멀어지면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을 특별나게 봐주지 않는 지방대에서 비슷한 또래들과 어울려 놀고 공부하며 사람사는 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전공으로 삼은 토목공학으로 박사 과정까지 밟고 난 뒤 카이스트에서 대우교수로 대학원생들을 가르치고 국토환경연구소의 연구위원으로 일하면서 1988년 이후 지금까지 10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회지에 발표하는 등 자신의 일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
2005년 국제수리학회(IAHR) 등에 낸 "GIS/RS를 이용한 새로운 유달률(流達率)의 공간적 패턴의 새로운 산정 기법' 논문의 경우 인공위성 등을 이용해 오염물질이 하류에 떠내려 오는 비율을 산정해 내는 새로운 방식에 관한 연구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발표하는 잇단 논문들이 국제 학회의 관심을 끌면서 Who's Who in the wor ld를 비롯한 세계 3대 인명사전들은 일제히 올해판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최근 생각지도 못했던 마음 고생을 또 다시 겪었다.
3대 인명 사전에 오른 것이 사실인 지, 그런 인물이 왜 교수가 되지 못하고 하위직 준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지를 묻는 식으로 그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글들이 인터넷상을 떠돌았다.
자신의 이름이 올라 있는 인명 사전과 등재될 것을 알리는 통보서 등을 펼쳐 보인 그는 "국내에서도 세계 인명 사전에 오른 경우가 적지 않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세상이 여전히 자신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섭섭함이 묻어있었다.
"대학교수요? 생각했었죠. 2군데 지원해본 뒤 부질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재의 교수 선발 관행에서 지방대 출신이 설 땅은 없었습니다. 모교는 이미 교수 정 원이 차 있고... 꼭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요."
그는 7월 입사해 8명의 팀원들과 함께 웃고 고민하며 고락을 같이 하는 현재의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곳이라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책상머리에서 이론으로만 접했던 것들을 현장에 적용해보며 오류를 바로 잡는 것도 재미있고 또 학문적 토대나 영역을 넓혀 나가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하면 그만 아닙니까. "
인터넷상에 떠도는 것 처럼 그렇게 낮은 직급도 아니라는 그는 "왜 자신들의 잣대로 직업의 귀천을 평가하는 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3년전 시작해 지금도 야학 교사로 일한다는 그는 "연세드신 분들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행복이란 남이 정해놓은 틀에 맞춰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에 흠뻑 빠져들 때 느끼는 것"이라고 말한 그는 "하고 싶은 일에 묻혀 사는 지금의 제 모습 그대로만 보고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며 "이제 '천재'라는 꼬리표는 제발 떼어 달라 "고 거듭 부탁했다.
(청주=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