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7년 노동당 집권의 주역 블레어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Labour) 대승의 주역은 이제 불혹(不惑)을 넘긴 지 얼마 안되는 1953년 생, 44살의 전후 세대 토니 블레어(Tony Blair)였다. 물러난 보수당의 메이저 총리보다 10살 아래였다. 토니블레어의 노동당이 대승할 수 있었던 비결은 보수당의 인기가 떨어진 것 외에 노동당의 인기가 올라간 것에 기인하는데 거기에 토니 블레어가 있었다. 그는 1994년 당수직을 물려 받은 뒤 영국의 새로운 지도자 상으로 강력한 이미지를 심는데 성공했다. 대처가 보여 줬던 친미위주 강경 일변도 외교 정책과 지나치게 완고한 보고 정책, 여기에 메이저가 보여 줬던 유약함과 지도력 부재...
전임 보수당의 총리 2명이 갖고 있던 단점을 한꺼번에 메워 줄 영국국민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블레어는 우성 젊은 노동당(New Labour)정책으로 호감을 얻었다. 여기에, 역시 같은 40대로 젊은 클린턴 대통령, 그로 대변되는 미국의 새로운 민주당(Bill Clinton and the New Democrats)과 유사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철학적으로 다른 면모를 보였다. 그 유명한 말, 친미 일변도 외교정책이 아니라 제 3의 길(the third way), 나아가 지나치게 우경화된 경제정책의 단점을 보완할 현대적 사회민주주의(modern social democracy)로 영국사회는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 블레어, 젊은 엘리트
전임 보수당의 메이저 총리보다 10살이 어리다. 소송 전문 변호사 아들인 블레어는 에딘버러(Edinburgh)에서 태어났다.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영국의 주류인 잉글랜드에 합병된 나라, 스코틀랜드 출신. 그러나 유년기는 스코틀랜드와 가까운 잉글랜드 북부의 더램(Durham)에서 보냈다. 14살에 에딘버러로 돌아와 고등학교에서 컬리지(College,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다니는 우리식으로 치면 2년 과정의 교양과정)과정까지 마치고, 옥스포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변변히 대학을 다니지 못한 메이저와 달리 최고 엘리트인 셈이다.
블레어는 노동당이 대처의 보수당에 패해 야당의 길을 가던 닐 키녹 체제하의 1983년 30살의 나이로 하원에 진출했다. 당내에서 엘리트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총선을 앞두고 1988년 발표된 노동당의 예비 내각(Shadow Cabinet)에 이미 예비 에너지 장관(Shadow Secretary of State for Energy)을 맡을 정도였다. 1992년 노동당이 승리가 점쳐지는 가운데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예비내각에서는 39살의 나이로 핵심인 예비 내무부 장관(Shadow Home Secretary)을 맡았다. 승승장구였다. 여기에 블레어는 관운까지 좋았다. 2차례나 시운(時運)이 그를 도왔다.
3) 두 차례의 결정적인 관운
먼저, 1992년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보수언론의 도움으로 보수당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것은 노동당에게는 불행이었지만, 블레어에게는 행운이었다. 노동당이 패한 뒤 당수 닐 키녹이 책임을 지고 사임한 것이다. 당내 기라성 같은 대선배 한 명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고 아직 39살이 그에게 기회가 온 것은 아니다. 닐 키녹이 물러 난 뒤, 당수직은 존 스미스(John Smith)에게 돌아갔다. 스미스 당수는 블레어를 중용했다. 블레어에게 두 번째 행운은 스미스 당수에서 비롯됐다. 통상 당수를 맡으면 10년 정도 하지만, 2년 만인 1994년 존 스미스가 죽고 말았다.
이어 41살의 나이로 블레어는 지구촌의 방범대원 영국의 노동당 당수가 됐다. 젊은 정당 노동당. 블레어는 당의 체질개선에 나섰다. 블레어는 당의 지상과제가 재집권이라고 보고 재집권을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당헌 4조 개정은 가장 험난한 과정이었다. 그는 격력한 논쟁을 거쳐 마침내 자신의 의도대로 당을 바꾸고, 1997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블레어 아래서 새로운 노동당(New Labour)의 탄생이었다. 노동당은 18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고, 43살인 블레어는 1812년 리버풀(Liverpool)경에 이어 가장 젊은 총리가 됐다.
4) 10년차 시련
'제 3의 길', '현대 사회민주주의'... 미국 주도하의 국제정세에서 미국과 협조하면서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인지, 대처가 잔뜩 오른쪽으로 틀어 놓은 영국호(號)의 기수를 대서양 한가운데서 다시 합리적인 수준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지... 기대와 주목을 한 몸에 받던 블레어 총리가 집권 10년째를 맞았다. 10년 성적표를 어떻게 매길 수 있을까. 우선 그가 지난 시절 세워 놓은 여러 치적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서만 바라보자면 국내외적으로 우리속담 '빛 좋은 개살구'라는 표현에 그의 위상이 한마디로 응축된 느낌이다.
'제3의 길'은 어디 가고 '친미의 길'만 반짝인다. 13일에도 버밍함(Birmingham) 출신의 노동당 원로 여성의원 클레어 쇼트(Clare Short)가 블레어 총리에 반대하는 취지로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3년째 노동당 의원을 역임하고 있는 그녀는 블레어의 친미 전쟁정책에 "심각한 부끄러움(proundly ashamed)"을 느낀다면서 의원직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국에서 정치판 오염을 질타하며 불출마했다가 적절한 시점에 뒤집어 더 큰 자리 차지하는 한국정치 풍토와 달라 은퇴는 진정성을 담은 선언이다. 13일 외무부의 현직 중동담당 차관(minister for Middle East)인 킴 호웰(Kim Howell)이 레바논전에서 블레어 총리가 실수했음을 인정했다(Independent 14일자 보도).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블레어에게 항의하러 가자는 시위를 벌일 정도로 '제 3의 길'은 완전히 망가졌다.
여기에 '현대 사회민주주의' 역시 집권이후 블레어가 보수언론 특히 머독 소유 언론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면서부터 서서히 변하기 시작해 지금은 국영기업의 민영화 추진등 주요 정책에서 우경화로 영국내 최대 조직이자 노동당의 우군인 노동조합 위원회(TUC, Trades Union Committee)로부터 완전 따돌림을 받고 있다. 희망의 '제 3의 길'에서 '쇠락의 길'로 접어든 노동당 토니 블레어 정권 10년사(史)를 다음편에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