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정부 등장…악의 축 등장
지난 글에서 세이모어 허시 기자의 글을 원문 그대로 옮기며 레바논 전쟁이 미국의 이란 공격을 위한 시험전쟁(demo)의 성격을 띤다고 살펴봤다. 그렇다면 미국이 과연 이란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가. 무척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필자는 지난 20회 글에서 [꼭두각시 전쟁 1막 휴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막이라는 말은 2막을 전제로 한다. 어찌 보면 레바논 전쟁은 1막 이라는 표현보다 서막(序幕)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본격적인 전쟁은 다른 곳에서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란이다.
2001년 1월 미국에 부시라는 사람이 아버지에 이어(클린턴이 사이에 8년 동안 재직했지만, 절차적일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민주정치를 실현하고 있는 국가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대통령에 당선된 뒤, 맨 처음 착수한 일이 지구촌을 선과 악의 2분법으로 나눈 것이다. 부시의 의도에 딱 들어맞게 그 해 9월 11일 악동들이 비행기를 몰고 무역센터로 날아 들었다. 음모론이 강력하게 제기됐지만, 일단 이 부분은 논외로 접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중동의 반미 국가 한 곳을 저승으로 보낸 뒤, 중동 황폐화 도미노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 이어 부시는 이듬해 1월 29일 그러니까 취임 1주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TV, 신문기자들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지구상에 악의 축이 있는데...
냉전 용어, 악의 축, 이란, 이라크, 북한
악의 축(惡-軸, Axis of Evil). 학식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는 평가를 미국인들에게 받고 있는 그답지 않게 이 말은 연구의 결과물이다. 축(軸, Axis)이란 말과 악(惡, Evil)이란 말이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두 단어를 합해 말을 만들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침략국인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동유럽 각국의 나라를 가리켜 '추축국(樞軸國, Axis-Powers)라고 불렀다. 연합국인 미국에 대항한 나라들이다. 주로 독일, 이탈리아, 일본 3개국을 가리킨다. 그러나, 미국은 추축국을 물리치고 세계를 평정한 뒤 연합국이던 소련과 냉전에 돌입했다. 내정이 절정에 이르던 1980년대 공화당 출신의 극우인사 레이건(1950년대 매카시즘이 미국을 반 지성과 반 이성의 야만 상태로 몰고 갔을 때 레이건은 매카시즘의 협력자로 활약)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뒤 냉전의 한 축이던 소련을 가리켜 악의 제국(惡의 帝國, Empire of Evil)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니까, 부시는 새로운 말을 창조해낸 게 아니라 조상들이 쓰던 말 악과 축을 하나씩 따서 악의 축(Axis of Evil)이란 말을 만들고 3나라를 지목한 것이다. 이라크, 이란, 북한이었다.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해 국제 테러를 지원한다는 게 이유다. 1년 뒤 2003년 이라크는 미국 손에 넘어갔다. 남은 것은 이란과 북한이다. 핵과 미사일을 놓고 미국은 이란과 북한을 자극하며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둘 가운데, 북한 보다 이란이 더 수월한 상대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하나씩 들여다 보자.
이란 공격이 수월한 이유
먼저, 뒤를 봐주는 후원국의 유무. 북한은 중국의 강력한 엄호를 받고 있다. 반면 이란은 강대국 누구의 엄호도 받지 못하는 상태다. 둘째, 전쟁을 반대하는 이웃 여부. 북한은 전쟁을 결사 반대하는 한국과 우리 만큼은 아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크게 반대할 수도 있는 일본, 반대하는 러시아를 이웃에 두고 있다. 이란은 아무도 없다. 이라크와는 오랜 전쟁으로 척을 진 상태다. 아프가니스탄은 미국 손으로 넘어갔고, 터키도 친미이며 소련에서 독립한 북쪽의 중앙아시아 각국도 미국의 영향권으로 편입되고 있다. 이란은 시아파 국가여서 수니파인 다른 이슬람국가와 특별히 가깝지도 않다. 페르시아 민족으로 민족적 구성과 언어도 다르다. 더구나 친미 왕정을 뒤집은 나라여서 왕정을 고수하고 있는 다른 중동 산유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다. 셋째, 특별한 원한관계의 나라 유무. 북한은 미국과 친한 나라 중에 특별히 미워해야 할 나라가 없다. 일본이 있기는 하지만, 제한적으로 교류도 하며 일본의 경제계는 북한 진출에 눈독을 들인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까지 바라기에는 거쳐야 할 복잡한 계산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의 유일무이한 혈맹 이스라엘의 원수다. 이스라엘을 봐서라도 이란은 공격 대상이다. 이래저래 이란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이다.
부시가 재선됐으므로 8년 임기 가운데 2년 반이 남았다. 전반기에 아프가니스탄과 특히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라크를 쓰러뜨렸다. 이제 후반기 들어 미국의 중동정책으로서는 세 번째 전쟁인 레바논 전쟁을 막 끝냈다. 미국은 반미적인 레바논을 초토화 시키고 국토의 남부를 유엔(미국)관리 하에 두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의 능력도 테스트 해보고, 또 초토화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힘을 약화시켰다. 무엇보다 지난 세이모어 허시 기자의 글에서 지난번 살펴봤듯이 이란의 공격 방법에 대한 연구도 이번 전쟁을 통해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머지 않은 장래에 재앙이 다가올 가능성이 없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나.
조짐은 좋지 않아
분위기는 일단 좋지 않다. 부시는 종전과 함께 이란을 걸고 넘어지고 있다. 14일 국방부와 국무부를 잇따라 돌며 국가 안보팀과 협의를 가진 뒤 국무부에서 신보수주의자의 대부격인 딕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둘러 세워놓고 어이 이란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란의 핵무기까지 거론하면서 위험한 상황임을 덧붙였다. 영국의 데일리 텔리그라프는 이런 분위기를 알아챈 듯 하다. 15일자 1면 머리기사의 제목이 "이스라엘 이란에서 온 무기에 혼쭐(Israel humbled by arms from Iran)"이었다. 서서히 이란이 수면 위로 오르고 있다. 언제일까. 다음 글에 살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