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10만명 휴전 요구 시위
무조건 휴전(Unconditional Ceasefire)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토요일(8월 5일)에는 10만 명이나 되는 영국 시민들이 영국 정치 1번지로 수상관저와 주요 정부청사가 몰려 있는 다우닝가(街) 주변에서 휴전과 평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라크 전쟁 이후 처음 있는 대규모 시위였다. 즉각 휴전을 요구하며 4만 명이 서명한 편지도 블레어 수상에게 전달됐다. 국회의원 110명은 블레어 수상의 미국 뒤따르기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며 블레어 수상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반전 분위기가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다.
블레어도 더 이상 미국을 지원만 하고 있기 어려워 보인다. 최근 그의 발언을 보면 변화가 감지된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을 통해 줄기차게 사용해 온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용어가 블레어 어록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것이다. 이 용어는 미국정책의 추종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제스처다. 블레어가 실제로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일단 블레어가 정치적 시험대에 오른 것만은 틀림없다.
이스라엘 휴전안 거부
이런 움직임과 이스라엘의 행동은 언제나 그렇듯 동떨어진다. 이스라엘은 미·프랑스 합의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계속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지난 글에서도 거론했지만, 예측 가능했던 일이다. 국제관계는 냉혹한 현실이다. 감정이 아니다. 철저한 계산에 의한 행동이다. 여기에는 공식 비슷한 길이 있고, 이는 일정기간 지속되는 행동을 모아서 분석하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사회과학의 한 방법론이다. 단순한 통계적 접근으로 얻어지는 경우도 있고... 오랜 기간 축적된 자료에 다양한 변수까지 넣어(일종의 사례연구, case study method)살피면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이던 특수성 속에서도 유기적(有機的)으로 맞물려 있는 인과관계(因果關係)가 의외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국제정치학을 학문의 범주에서 연구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레바논 전쟁을 들여다 보는 작업은 이같은 틀 안에서 논의될 수 있다. 깊이 있는 학술적 차원이 아니라 국제화 시대를 살아가는 민주국가의 민주시민으로 기본적인 소양쌓기의 개괄적 이해 차원이라면 특별히 거창할 것 없다. 먼저 1)미국을 누가 이끌고 있는지, 2)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지도자 뒤에서 실질적으로 미국의 외교 정책을 주무르는(유형적 실체를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실체는 없지만 무형적이든) 주요 독립변수가 존재하는지, 3)있다면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이익은 무엇인지, 4)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 5)어떤 절차를 거치는지를 다양한 케이스에서 모아 본다.
주변에서 쉽게 할 수 있다. 방송과 신문의 보도를 잘 활용하면 된다. 단, 여기서는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언론이 전하는 보도내용에서 팩트(사실, 事實, Fact)와 언론사(기자)의 의견(Opinion)을 구분해 내는 일이다. 그래서, 의견을 빼고 팩트만 일정기간 모아 흐름을 들여다 보면 나름대로 움직이는 판이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現狀) 뒤에 숨은 동인(動因, 즉 주요 독립변수),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결과까지 점쳐진다.
국제정세: 사실(Fact)을 축적해 진실(Reality)을 찾아내
이 단계로 가려면 또 하나의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시청자나 독자가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선입견과 감정을 버려야 한다. 선입견에 눈이 가려 있으면 객관적인 팩트를 추려 모으기 어렵다. 쉽게 생각해 "이렇게 됐으면 좋겠는데..."하는 자신의 바람(희망사항)을 팩트의 취사선택에 절대 넣어서는 안된다. 대개 이 단계에서 실패하기 때문에 진실을 들여다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점점 더 진실에 문닫고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히게 된다. 대신에 여기서 잘하면 나름대로 판을 읽는 눈이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무엇이 진실(眞實, Reality)인지 가릴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신문 방송 보도의 논조에 영향받지 않고, 팩트만 가려내 진실에 접근하는 지혜와 안목이 생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쏟아 내는 엄청난 정보의 상당부분은 진실과 무관하다. 그저 벌어졌던 일, 즉 사실(사실, 事實, Fact)일 뿐이다. 그것이 참, 즉 진실(眞實, Reality)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쉽게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란과 시라아의 조종을 받아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헤즈볼라를 테러집단이라고 비난하고 이스라엘은 자신의 국민을 지킬 자위권 차원에서 보복공격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다고 치자. 부시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실제 벌어진 사실이지만, 그가 말한 내용이 참으로 맞는 지의 진실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사실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일, 국내문제는 물론 세계정세에 밝아지는 지름길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유엔 휴전안 결의와 관계 없이 지속되는 레바논 전쟁. 충분히 예견됐던 이런 결과는 아직 충족되지 않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목표가 남아있다는 얘기다. 사나흘이 걸릴지 일주일이 더 걸릴지... 원래 이번 글부터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들여다 보려 했다. 하지만, 독자들과 국제정세 인식의 한 방법론을 함께 익히느라 늦춰졌다. 다음 글부터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