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독립기념일 분위기는 공식 행사 몇 번으로 그치는 우리의 광복절과는 사뭇 다르다.
워싱턴 시내에서는 중심가를 종일 통제한 채 갖가지 행진이 벌어지고 해가 지면 축하 불꽃 놀이가 수도의 하늘을 온통 꽃무늬로 장식하는 축제의 날이다. 더구나 올 7월 4일에는 오랜만에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발사돼 의미를 더했다.
바로 이 디스커버리 호의 발사 6분 전 태평양 건너 북한에서 첫 미사일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 동안의 경고로 미뤄 미 행정부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 분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독립기념일 축제 뿐 아니라 자기의 60세 생일 파티까지 망친 북한을 혹독하게 비난할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반응은 이런 타성 젖은 예측을 뒤엎는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의 첫 언급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미국과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5개국은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북한의 지도자에게 인민들의 상황을 개선할 좋은 방안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기 함께 노력할 것이다." 외교로 해결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북한 성토의 깃발을 직접 든 쪽은 일본이었다. 강도 높은 제재 결의안을 유엔 안보리에 낸 데 이어 급기야는 정치인의 입에서 선제 공격론까지 거론됐다. 안보리 결의안은 군사적 강제 조치의 가능성을 내포한 유엔 헌장 7장을 빼는 우여곡절 끝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미국은 손쉽게 국제 사회가 한 목소리로 북한을 규탄하게 만드는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그 동안 북한을 감싸고 돌던 중국마저 꼼짝없이 찬성표를 던져야 했다.
미국은 미사일 사태 덕분에 작지 않은 소득도 거뒀다.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둘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이 발사됐고 그 미사일이 42초 만에 고장나 버렸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대포동 2호가 궤도에 올라 상당 거리를 날았다면 미국은 MD(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가동여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야 했을 것이다. 시스템 배치 이후 첫 번째 실전 가동이다. 열 차례 실험에서 불과 절반의 성공 밖에 거두지 못한 체계였다.
장거리 미사일의 발사 실패가 미국에게 북한 미사일의 파괴력에 대한 걱정을 덜어줬다면 발사 사실 자체는 미국이 장기적인 동북아시아 전략을 새로 짜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MD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급격히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다. 중국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 둥펑(東風·DF)-31A를 내년부터 실전 배치할 계획이라는 국방전문지 디펜스 뉴스의 최근 보도가 한 사례다. 언젠가는 중국과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대응책이 마련돼야 하는데 북한이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이다. 대포동 2호의 발사는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MD의 필요성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을 급격히 확산시키는데 한 몫했다. 수백 조원에 달하는 개발 비용 조달하기가 훨씬 쉬워진 셈이다.
미 행정부가 미사일 사태 초기에 온건하게 대응하는 것을 보면서 강경 대외기조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설왕설래가 워싱턴 정가에 잠시 돌았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부시의 카우보이 대외 정책이 종막을 고했다는 특집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섣부른 추측이다. 안보리 결의안 통과 이후 미국의 목소리는 통과 이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다. 결의안을 채택한 만큼 그 취지에 걸맞게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유엔 결의안이 모든 당사국들에게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철저히 견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할 것으로 믿는다”는 말로 대북 압박을 간접 촉구했다. 7월 17일 워싱턴에서 힐 차관보를 만난 천영우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은 “미국은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지 않고 6자 회담복귀를 계속 거부하면 추가적 압박 조치가 불가피 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비슷한 시점에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에 대한 국제 경제 차원의 대응을 책임진 미 재무부 스튜어트 레비 차관이 한국을 다녀갔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말을 던지고 갔다는 후문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 내 대북한 강경 세력들은 대북 압박 또는 고립 정책의 구체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7월 19일 미 의회에서 열린 미국 망명 탈북자들의 기자회견은 탈북자들을 미국에 망명시켜 대북 압박에 활용하겠다는 의회와 행정부의 계산이 처음 실현된 것이다. 회견을 주선한 공화당 샘 브라운 백 상원의원은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물자나 기술을 북한과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북한 비확산 법안을 곧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이튿날에는 허드슨 연구소 마이클 호로위츠를 비롯한 워싱턴의 핵심 대북 강경주의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에 대해 이른바 헬싱키 협약을 적용한 정책을 추진할 것을 행정부에 촉구했다.
헬싱키 협약이란 과거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에 대해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 내부 붕괴를 유도하게 한 공산권 압박 정책이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북한 문제에 대해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특히 최근 분위기로 미뤄 강경 세력의 주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연말 상·하원 선거에서 공화당의 우위를 계속 유지하려면 결집된 보수표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아무리 강경한 입장으로 나와도 일본은 군말 없이 따를 게 분명하다. 미일 동맹은 어느 때보다 탄탄하고 일본은 미국보다 더 북한의 도발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미사일 사태 이후 북한 설득에 실패해 울며 겨자 먹기로 안보리 결의안에 찬성한 중국은 적극적인 참여는 몰라도 과거처럼 마냥 북한을 감싸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하지만 한국의 처지는 다르다. 북한의 도발이 심각한 문제지만 북한의 붕괴는 그보다 더욱 심각한 것이다. 어떻게든 북한이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북한을 설득하지도 못 할 거면서 왜 그리 감싸기만 하냐'고 핀잔을 던지고 있다. 수송 수단이 없는 핵은 미국에게 임박한 위협이 아니었다. 별 진전 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6자 회담을 미국이 지금껏 인내해온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작용했다. 하지만 핵을 나를 수 있는 미사일의 가능성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미사일 사태 이전과 이후, 미국의 대북한 압박은 많은 차이를 보일 것이다. 차이가 크면 클 수록 우리에게는 고스란히 무거운 짐이다.
(이 글은 시사월간지 정경NEWS 8월호에 기고한 내용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