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 [스캔들]의 이재용 감독이 신작 [다세포소녀]를 선보입니다. [다세포소녀]는 인터넷에서 유행하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매니아층까지 만들었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유명하던지 요즘 어쩌다 TV 가요프로를 보면 다 그 노래가 그 노래 같고, 그 가수가 그 가수 같고, 어쩌다 오락프로를 보면 선남선녀 출연자들이 가수인지, 연기자인지 도통 짐작 못하고 있어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는(에휴~) 제 귀에까지 그 제목이 알려졌습니다. 영화로 선보인다기에 또 원작이 소설이 아닌 만화라기에 만만하게 보여 인터넷에서 뒤져 보기 시작했는데 그 발칙함과 기발함에 순식간에 모든 에피소드를 읽었습니다. 인터넷 필명 ‘B급달궁’이라는 저자는 만화가 채정택씨로 주로 학습지 만화를 많이 그려온 사람입니다. 이점, 흥미롭습니다.
시사회를 앞두고 기자와 만난 이재용 감독은 “에피소드 위주로 되어 있는 원작을 최대한 살렸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위해 뮤지컬 형식을 군데군데 도입했다.”고 밝히며 이전 작품들과는 색깔이 완연히 다른 이런 영화를 어떻게 만들게 됐냐는 질문에 “원래 정사나 스캔들이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장르는 아니었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이런 상상력이 넘치는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원작에 많이 의존했기 때문에 유머코드나 반전이 상당수 있으니 원작을 못 보신 분들이 영화를 보러간다면 원작을 미리 읽는다면 그 재미들이 상당히 반감될 수 있습니다.)
각 종교별로 학생들이 나뉘어 수업을 받는 무쓸모 고등학교의 ‘무종교반’ 영어 선생님이 성병에 걸려 결근하셨다는 말에 학생들이 하나 둘 병원에 가보겠다며 조퇴를 하는 이상한 학교입니다. 주인공인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김옥빈)는 병에 걸린 어머니와 어린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바로 그날 첫 원조교제를 결심하고 조퇴를 요청하자 선생님은 쾌히 승낙합니다. 죄책감과 불안감으로 사로잡힌 채 맞이한 첫 원조교제 현장에서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된 소녀는 크로스 드레서(이성복장 선호자??)인 쌍칼언니(이원종)와 의외의 우정을 쌓아나가기도 합니다. 소녀는 스위스에서 전학온 럭셔리 남학생 안소니(박진우)를 짝사랑 하지만 심한 빈부차이 때문에 속앓이만 합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상한 외모 때문에 왕따를 당하는 외눈박이의 남동생이자 트랜스젠더인 두눈박이에 한눈에 반한 뒤 사랑의 열병을 앓습니다.
원조교제, 새디즘과 크로스 드레서, 트랜스 젠더 등 이 사회에 분명 주류는 아니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다소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어 퇴폐의 극치를 달리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었지만 이전 작품들에서 의상과 세트 등 소위 ‘때깔’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던 감독은 영화적 상상력과 다양한 형식적 실험으로 너무 나가지 않는 선에서 독특한 영화로 만들어냈습니다. 만화에서 모티브가 된 자극적인 요소들은 인터넷을 타고 ‘원조교제’니 ‘흔들녀’니 하는 단어를 검색 순위에 올리며 홍보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여기서 상상력을 발전시켜 야한 기대를 잔뜩 머금고 극장을 찾는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얼짱 선발대회에서 입상에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김옥빈은 독특한 마스크와 끼를발휘하며 성장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TV 드라마를 하고 있는데 영화와 TV의 차이가 뭐냐는 기자 질문에 “드라마는 시간에 쫓기기 때문에 빠른 순발력을 요구한다. 상황이 주어지면 빠른 시간안에 그에 걸맞는 감정, 표정을 잡아야 한다. 영화는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폭넓게, 깊이 있게 감독님과 선배님들과 의논하며 준비할 수 있고 또 어떤 것이 제일 어울리는지 시도해 볼 수 있어서 좋다. 드라마에서 순발력과 속도를, 영화에서 폭과 깊이를 배울 수 있어서 앞으로도 번갈아 활동했으면 좋겠다.”며 당찬 의지와 열정을 보여줬습니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하이틴 스타 임예진씨가 20여년만에 영화에 돌아와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의 어머니역으로 등장합니다. 김수미 씨도 극 후반에 깜짝 놀랄만한 역할로 출연하고 광신도 집단의 축제 현장에는 이 영화의 안무를 맡은 무용가 안은미씨가 맛이 살짝 간 무당으로 깜짝 출연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일관된 스토리로 차분히 진행되기보다는 에피소드 위주이고 이 에피소드를 하나로 엮어가기 위해 중간 중간 춤과 노래가 나오는 뮤지컬 형식이 등장합니다. 의외성과 엽기성 에피소드들이 후반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옮겨갈수록 의외성과 엽기성은 다소 힘이 떨어지며 오버하는 지경까지 넘어가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영화 초반에 ‘이 감독 감독 작품’이라는 크레딧으로 파격적인 헛웃음을 불러일으키더니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는 난데 없이 노래방 기계같은 가사 자막이 뜨기도 합니다. 시사회가 끝난 뒤 몇몇 참석자들과 반응을 나눴는데 ‘형편없다’는 반응에서부터 ‘독특하고 뛰어나다’는 극찬까지 호불호가 분명히 갈렸습니다. 감각적이고 또 기성세대와는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과 젊은 층이 이 영화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합니다.
모두들 입시와 대학진학에 허덕이는 현실에서 분명히 무쓸모 고등학교는 존재할 수 없는 곳이지만 외모 때문에 받는 차별, 가난 때문에 받는 상처(안소니가 산비탈 소녀집에 찾아오는 씬은 가난에 대한 페이소스의 압권입니다.)는 비일비재하고 또 트랜스젠더와 원조교제도 우리 사회에서 깜깜한 구석에 있다가 좀 어두운 구석으로 나온 상태로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황당하고 엽기적인 학원가 영화에 머물지 않고 우리에게 한번 생각해볼만한 소재를 던져줍니다. 추구하는 가치 앞에 모두를 일렬로 세우며 채찍질 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며 청춘은 자유분방하고 겉잡을 수 없는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