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 다음날 전역명령 취소한 뒤 군법회의 회부, 장애인 강제징집.."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1980년대 초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했던 일부 사례들이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전역 다음날 전역명령이 취소되고 군법회의에 회부된 이상석씨와 장애인이어서 현역입영 대상이 아닌데도 강제로 군에 끌려간 남모, 이모 씨의 사례는 정권의 권력 남용 폐해를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이상석 씨가 불운을 겪게된 것은 보충대 입영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대공설문 조사가 발단이 됐다.
1984년 8월 이 씨의 친구인 A 씨는 설문조사에서 "이 씨가 알고 지내는 김진호가 수상하다"고 적었다.
당시 보안사 심사과는 그해 10월 15~17일 이 씨와 당시 교사로 있던 김 씨를 연행했다.
그해 10월22일 전역하게되는 이 씨는 보안사 심사과 OO분실에 불법 감금돼 조사를 받으면서 전역일을 넘기게 된다.
실형이 선고되기 전에는 전역일에 맞춰 복무를 자동으로 끝내야 하지만 보안사는 이 씨를 붙잡아 뒀다.
보안사는 전역일 하루 뒤인 10월23일 해군본부에 압력을 가해 전역명령을 취소토록 했고, 11월3일 이 씨를 구속했다.
엄밀히 따져 민간인 신분이었던 이 씨는 민간법원이 아닌 군법회의에 회부돼 재판을 받았고 1년간 형을 살았다.
그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부대 동료들에게 "북한의 수해물자 제공에 대해 북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못 사는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을 했다고 거짓 자백해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게된 것.
이 씨는 1985년 11월21일 이등병으로 강등돼 전역하는 비운을 겪게된다.
전역일에 맞춰 군복을 벗어야 하는데도 국가가 강제로 붙잡아 뒀다가 전역일 다음날에 전역명령을 취소한 것은 위법행위라고 과거사위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알고 지내던 교사 김진호 씨도 보안사에 구속영장 없이 불법연행돼 22일간 강압수사를 받았다.
그러나 보안사는 김 씨에게서 특별한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는데도 석방 다음날 강제로 사직서를 제출토록 압력을 넣었고 결국 해직됐다.
이와 함께 성균관대에 다니던 남모 씨는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않는데도 강제징집돼 3개월 만에 의병전역했다.
서울대생이었던 이모 씨도 소아마비 장애에도 불구하고 강제징집됐다.
성균관대생 박모 씨는 보충역 편입 대상인데도 강제징집돼 보충대 신체검사에서 불합격을 판정을 받았으나 경찰서에 며칠간 대기시킨 후 형식적인 신검을 거쳐 현역으로 보냈다.
강제징집됐다가 사망한 이윤성 씨는 2대 독자이고, 정성희 씨는 만 19세가 되지않았는데도 강제징집됐다.
이들 모두 현역 입영대상이 아니었지만 무차별 징집에 희생된 것.
또 입사원서를 접수하려고 서울 종로3가를 걸어가던 서울대생 정모 씨, 시위도중 부상한 동료를 교내 보건소로 옮기던 연세대생 최모 씨는 각각 시위가담자로 오인돼 강제징집됐다.
자진 휴학 중이던 동국대생 오모 씨는 '문제학생' 명단을 병무청에 제출한 학교측의 실수로 강제징집된 것으로 밝혀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1년 4월2일 '소요관련 학생들을 전방부대에 입영조치하라'는 구두 지시를 주영복 국방장관에게 하달했다.
과거사위는 "5공 정권의 강제징집은 '학원안정이 곧 정권안정'이라는 통치권자의 의지가 반영됐으며 군사정권의 특성상 국방의무를 악용해 일사불란한 형태로 학생운동세력을 격리, 탄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