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6.영국
1)영국
2,3,4,5,6,7,8,9,10,11,12,13) 런던(London)
14)배스(Bath)--오늘 이야기
런던을 떠나 잉글랜드 서쪽에 자리잡은 웨일즈 지방은 B.C 5c 이주한 켈트족의 본거지다. 로마가 물러 난 뒤 강력한 게르만족의 침략에 갈 곳 잃은 켈트족은 게르만족을 피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카디프를 수도로 해 지금도 켈트족 후예들이 모여 산다. 런던에서 웨일즈로 가는 도중에 로마 시대의 기념비적인 유적이 자리한다. 배스(Bath). 로마인들이 건설한 훌륭한 목욕탕 유적이 발굴, 복원돼 로마의 목욕문화를 전하는 곳이다. 영어 단어 목욕(Bath)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배스에는 로마 이전 켈트족들의 동전부터 나온다. 켈트족도 더운물이 쏟아지는 온천지 배스를 신성시해 성소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지리학자들은 2c 이곳을 아쿠아 칼리다(Aquqa Calidae, 더운물)라고 불렀다. 로마시대 온천도시로 이름 높았던 이곳은 신성한 희생의식을 치르는 성소 겸 치료소로 발전했다. 그러나, 3c 말 게르만족의 침입이 격화되면서 큰 변란을 겪다, 로마가 영국을 떠나기 전인 367년 이미 결정적으로 쇠퇴했다.
로마온천은 어떻게 됐을까? 배스에서 솟아나는 온천물을 빼주던 하수도 시스템이 파괴되면서 온천으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물이 빠지질 않자 솟아오른 온천수가 주변을 침식하고 흙이 덮혀 진흙뻘이 되고 말았다. 찬란했던 신전과 목욕탕 유적은 뻘 속에 묻혔다. 근처 수도원 소유의 땅으로 변해 잊혀졌던 배스는 973년 켄터베리와 요크 대주교의 승인아래 에드가왕이 즉위하면서 다시 번창한다. 특히, 1066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넘어와 영국을 점령한 노르만 왕조때 배스는 '왕의 목욕탕' 이란 이름으로 불릴 정도였다.
로마 유적으로 진가가 인정된 것은 한참을 흘러 18c. 시가지 아래로 고대 로마시대 유적이 묻혀있을 것이란 추측을 가능하게 해주는 증거물이 속속 나타났다. 1727년 아테나 여신의 청동두상(頭像)이 발견된데 이어 1755년과 1790년 잇따라 로마시대 건물 잔해가 땅 위로 드러났다. 마침내, 1878년 건축가이자 탐사가인 찰스 데이비스 소령이 발굴에 들어가 로마당시 유적과 유물을 찾아내고, 1880-1881년에는 로마시대 대목욕탕을 발굴하는데 성공했다. 배스가 로마시대 대형 온천 성소였음이 증명됐다.
지금은 로마 당시대로 복원해 로마 목욕탕의 시설과 구조를 들여다 볼수 있는 진귀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다른 복원 현장과 달리 지금도 1초에 13리터, 하루 백 10만 6천 4백리터의 원수가 쏟아져 살아있는 체험의 교육장으로 역할이 크다. 온천수의 온도는 섭씨 46도. 칼슘과 유황을 포함해 43가지 미네랄이 들어있다. 가서 맛을 보니 유황성분이 많아 그런지 무척 쓰고 떫다. 일본 벳부의 유황온천에서 마시던 온천 원수맛과 비슷했다. 이곳은 박물관도 겸해 각종 조각과 미용관련 생활소품, 신전 희생의식때 치르던 제단, 그리고 모자이크도 몇 점 발굴해 놓았다. 이가운데 바다괴물 하나를 소개한다. 이로써 영국의 모자이크 편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