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바비칸 센터 감동의 물결
영국 시간으로 2006년 28일 밤 10시. 푸른 눈에 휘황한 금발의 영국 미녀들이 기립박수. 머나먼 이국 땅의 이름 높은 연극센터에서 우리문화에 흠뻑 빠져든 외국인을 바라보는 기자의 마음도 그들 만큼이나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체구지만, 뿜어져 나온다는 표현이 적절할 만큼 역동적인 몸 동작. 결코 잘생겼다고 할 수 없지만, 인간사 희노애락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농익은 표정 연기. 쉴새없이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해학적이고도 박진감 넘치는 구성. 때로는 아름다운 선율로, 때로는 흥겨운 가락으로 한국의 전통과 정서를 담아낸 음악. 수수하면서도 화려한 우리 옷의 색(色)조화. 시작부터 웃음과 박수를 자아낸 감동의 공연은 마침내 1시간 40분 뒤 수천명 벽안 관객들의 기립박수와 환호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SBS가 주최한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나 올 초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빅토르 위고 원작 오페라 '노트르담의 곱추'에서 처럼 외국작품 공연에 기립박수하는 한국사람에 익숙해 있던 기자에게 우리작품에 대한 외국인의 기립박수는 정말 제목처럼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한-영 상호 방문의 해 맞은 초청작
2006 한-영 상호 방문의 해를 맞아 영국 런던의 세계적인 복합 문화 센터 바비칸(Barbican)이 한국 연극에도 문을 활짝 연 첫 케이스의 작품.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 세익스피어 원작)'. 이미지극 '대지의 딸들',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탄탄한 연출력을 인정받아온 극단 '여행자'의 대표 양정웅이 연출한 작품이다. 2002년 7월 '밀양 여름공연예술 축제'때 처음 선보이며 호평을 받고, 지난해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연극 축전에서도 비평가들의 높은 평점을 받아 일찍부터 외국공연 성공이 기대되던 작품이기는 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작품들만 초대받는 바비칸에서 초연부터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리라고는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후한 점수를 줘도 탓할 일이 못된다.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에딘버러 연극 축전에서 '한여름밤의 꿈'을 보고 즉석에서 초청공연을 결정했다는 바비칸 극장장(Head of theatre) 루이즈 제프리즈(Louise Jeffreys) 여사의 넉넉한 몸집만큼이나 넉넉한 평에서 답을 찾아보자. "세익스피어 원작의 원문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한국의 정서대로 해석한 부분이 훌륭했다." 초연 5일간 예매율이 85%를 넘긴 비결이 여기 있었다. 그러나, 사실 이 말은 언뜻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다. 영국인들이 낯선 한국의 정서나 문화에 호기심을 갖는 다면 몰라도 환호한다는게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영국인에게 익숙한 소재에 한국 정서와 문화 담아내
여기서 세익스피어의 의미를 읽어야 한다. 세익스피어가, 또 그의 작품이 영국인들에게 갖는 위력은 뭐라고 표현할까? 송강 정철에서 다산 정약용까지. 심청전, 춘향전을 모두 합친다 해도 모자라지 않는다. 그만큼 영국인 모두가 세익스피어를 나아가 그의 작품을 꿰고 있다. 그런 만큼, '한여름 밤의 꿈' 원작에 등장하는 요정 오베론과 타이테니아, 아니면 라이센더나 허미아 같은 등장인물을 우리네 도깨비의 돗과 가비, 항, 벽과 같은 인물로 바꾸고, 우리 정서를 담는 쪽으로 대사를 뜯어고쳤어도 영국 관객들은 큰 틀에서 양정웅이 각색한 한국판 '한여름밤의 꿈'을 따라오는데 힘들지 않았던 것이다.
영국인들 사용하는 현지 언어구사도 한몫
물론 군데 군데 영어 대사, 특히 우리 문장을 영어로 번역한 대사가 아니라 현지 영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대사를 넣은 것도 관심을 유발하는 좋은 장치가 됐다. 한국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작업(?)을 걸때 쓰는 표현. "한잔 하실래요?"를 영국인들이 사용하는 말로 "Would you like to have a drink with me?"로 해서 폭소를 자아낸다든지... 흰옷 입은 조선 남자가 좋아하는 여성에게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물을 때 저고리 입은 여인네가 우리에게는 있지도 않은 음식인 "쟈켓 포테이토업을 하면서 '라볶이'먹고 싶다는 것과 것인데...
주영한국대사 등 한인들 따뜻한 환대
공연뒤 리셉션에서는 주영 한국 대사를 비롯해 런던의 주요 한인들이 참석해 멀리 고국에서 온 자랑스런 예술인들을 따뜻하게 맞아줬다. 그만큼 우리의 문화적 역량을 뒷받침할 사회적 역량도 성장했음을 보여준 예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올해 런던에 한국문화원이 문을 열 예정이어서 의미는 더욱 크다. 에딘버러 연극 축전을 통해 역시 호평을 받은 뒤 바비칸은 아니지만 이미 런던을 비롯한 유럽에서 성황리에 공연중인 '점프(Jump)'를 비롯해 우리 정서, 가락, 웃음을 담은 우수한 작품들이 앞으로도 계??져주길 기대해 본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바비칸 센터에서 펼쳐진 '한여름 밤의 꿈'이 진짜 한여름 밤의 꿈처럼 일회성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서양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한국의 정서와 문화적 특성을 마음껏 담아내라"는 바비칸 문화센터의 총 예술 감독(Artistic Director) 그레이엄 쉐필드(Graham Sheffield)의 역설적인 충고는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서양인들에게 익숙한 작품을 선택하면 이들이 큰 줄거리를 따라올 수 있고, 세부사항으로 들어가 대사든, 무대든, 의상이든, 춤이든, 음악이든 기타 다른 요소에서 우리 것을 접목해도 무리가 없다. 서양인들 입장에서는 자기네들이 우상처럼 떠받드는 작품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해석과 포장의 이국적인 감흥에 젖어들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