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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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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들갑도 그런 호들갑이 없었다.
홍콩 시위의 살벌한 이미지가 기억에 각인됐던 탓이리라.

서울, 워싱턴 할 것 없이 FTA 협상이 시작되기 몇주전 부터 시위대의 워싱턴 진출 소식에 부들부들 떨면서대책을 마련한다고 부산했다.

특파원들도 정작 협상은 뒷전이고 시위대가 몇명이나 올까, 어떻게 시위를 벌일까, 워싱턴 경찰은 어떻게 대응할까를 취재하느라 바빠야 했다.

그런 호들갑을 비웃기라도 하듯이엿새 동안의 워싱턴 반 FTA 시위는 아무 사고없이 마무리됐다.


일부에서는 "워싱턴이라고 주눅든 것 아냐"라는비아냥도 나왔지만 가치 없는 농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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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찰은 시위대가 함부로 행동하면 반 테러법에 따라 응징한다는 일부 국내 언론의 과장 보도와는 대조적으로 워싱턴 경찰은 오히려 시위대 보호에 더 열중이었다.

일주일 가까이 시위대를 밀착 취재 하면서 오랜만에 사건 기자 시절의 추억이 새삼 되살아 났다. 화염병과 투석은 물론 최루탄과 곤봉도 없었지만 사람 만나는 재미는 과거 '시위의 추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위는 의견의 집단적인 표출이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개인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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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ther of Protest

갓 돌 지난 아이를 안고 하루도 빠짐없이 시위에 참가한
한 어머니가 있었다. 아이 이름은 '솔'이라고 했다. 운동가의 아이다운 이름이다.

부부가 모두 이민 2세로 우리말도 잘 못하는데 반 FTA 시위대의 취지에 공감해 동참했다고 했다.

남편은 진보적인 연구기관의 책임자, 아내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면서 아시아의 시민운동도 연구한다고 한다.

"솔이가 힘들어 하지 않을까요?"라고 묻자 "사람 많은 곳에 익숙해서 괜찮아요"라고 답했다. 그래도 뜨거운 햇살에 지칠 법도 한데 하루 종일 방실방실 웃으면서 잘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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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icket Girls


권투경기의 피켓 걸들 처럼이 젊은 기수들은 쉬임 없이 대오를 이끌었다.

삼보일배가 진행되는 동안 남들이 무릎꿇고 절하는 횟수만큼 이들은 깃대로 대신 절하며 행진의 선두를 지켰다. 천번 가까운 삼보일배였으니 그 무거운 깃대를 역시 천번 가까이 들었다 놨다 반복한 것이다. 그 날 따라 바람도 유난히 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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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iest

종교는 시위에 정통성을 제공한다. 집단의 배타적 이익을 추구하는 시위라 할지라도 신의 축복이 덧씌워지면 그만큼
보편타당하고 도덕적인 행위로 승격되는 것이다.

문규현 신부는 당초 이번 시위의 참가자가 아니었다.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하며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더니 뉴욕에 볼일 있어 왔다가 시위대가 워싱턴에 간다고 해서 그럼 같이 가서 시위하자고 따라왔다고 한다.

얼떨결에 따라왔지만 시위에는 누구보다 앞장서는 모습이었다.  가톨릭 신부가 불교식 삼보일배를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시위대 앞에서 실연하며 강연을 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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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Allies

워싱턴까지 와서 한미 FTA에 반대하는 시위에 한국 사람들만 우글우글하면 명분이 모자랄 수 밖에 없다.

미국의 반 세계화 단체 회원이라는 이 젊은이들은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심을 비웃듯
긴 삼보일배를 거뜬히 견뎌 냈다. 책상다리도 못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우리 시위대들 보다 훨씬 더 큰 성취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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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fessional

시위대의 상황실장 주제준씨는 의회에서 백악관까지 거리를 놓고 나와 논쟁을 벌였다.분명히 2킬로미터도 안될 것 같은데 그보다 훨씬 멀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시위하면서 늘 걸음으로 거리를 재봐서 잘 안다고 했림짐작이 이길 수는 없다.  삼보일배는 몇번이나 한 것 같냐고 또 질문을 던지니 "천배는 됩니다" 하더니 금방 "천오백배로 하죠"라며
기사 한줄이라도 더 늘여 보려고 애쓴다.

The Band

우리 시위에 사물놀이패?다. 오래전 어느 음악 전문가가 우리의 사물놀이를 두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사물놀이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극적인 타 기분에 절로 어깨가 들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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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diot

40대 중반이 됐을까.  그 남자는 뉴욕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첫날 시위를 마치면서 벌써 목이 다 쉬었다.  왜 미국에 이민와서까지 이런 시위에 참가했냐고 물으니 "미련해서 그렇지요"라고 말했다.  idiot이라는 것이다.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부터 '운동권'에서 활동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미국에 이민와서도 민주화와 통일운동 관련 단체에서 활동한다고 했다.

바쁜 직장 생활 틈틈이 시민운동까지 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불끈 쥔 주먹을 놓지 못하는 것은 '미련'해서가 아니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활보하던 서울의 동료들에 대한 '미련'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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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Agent

끝으로 시위기간 내내 무스를 더덕더덕 칠해 넘긴 머리에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던 이 남자. 첫 날 시위대 주변을 서성거리자 젊은 여자가 다가오더니 대단히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어디서 나오셨죠?"라고 묻는다.말투에 기관원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묻어난다.

대사관의 진짜 '기관원'조차도 이 남자의 얼굴을 보고는 "당신이 나보다 더 기관원 같네"라고 싱거운 농담을 던졌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기관원이 이런 차림으로 시위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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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로 마구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 대표와 마주 앉아 하나라도 더 뺏어 오려고 신경전을 벌였던 우리 협상 대표단에게도워싱턴 시위는 '부' 보다는 '정'의 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라고 믿는다.

협상 첫날 시위대 일부가 대표단의 차를 잠시 가로막고 선 것을 보고 미국측이 경호를 붙여줄거냐고 묻자 김종훈 대표는  "괜찮습니다.  그들도 우리 국민인데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들도'라는 표현이 아주 적절해 보이지는 않지만 말 속에 담긴 뜻은 미국측에 괜찮은 인상을 남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아무리 신자유주의 판이라지만, 그래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가야 한다지만남들 따라가기에 발걸음이 바쁘다고 늙은 아버지 어머니를 길바닥에 팽개치고 달음질 칠 수는 없을 것이다.  협상은 협상대로 하더라도 이렇게 내달리다가는 우리 부모 다 쓰러진다고 협상장 밖에서 나마 '악'을 쓰다보면 상대방도 우리 처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달 서울 2차 협상 때는 10만>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 본부는 일찌감치 밝혔다.  10만이 아니라 100만이라도 좋으니 부디 손.발은 조심하되 목소리는 더욱 높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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