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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실용주의가 기회의 문 여는 열쇠"

고건 전 총리, 전남대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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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한국을 위한 창조적 실용주의 리더십에 관하여

고 건 前 국무총리

여러분!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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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광주의 오월을 맞이하여, 전남대학교 캠퍼스에서 미래의 주역인 여러분들과 자리를 함께 하고보니 여러 가지 감회가 깊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강정채 총장님과 교수님 그리고 용봉포럼 관계자와 학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광주.전남을 생각할 때마다 제일 먼저 젊은 학생 여러분들이 제 가슴속에 떠오릅니다. 광주의 위대한 젊은이들은 우리 현대사의 어려운 고비마다 불굴의 정의와 값진 희생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역사적(歷史的) 좌표(座標)를 제시해왔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光州學生獨立運動)은 일제식민통치(日帝植民統治)에 항거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선 항일민족운동이었습니다.

특히 5.18 광주민주화운동(光州民主化運動)은 이땅의 모든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을 뿐아니라 압제(壓制)에 저항하는 전세계인들의 가슴속에 민주항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우리 광주의 독립정신과 민주정신의 역사성을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있습니다.

1980년 5.17은 신군부가 국무회의장을 탱크로 포위하고 5.17 비상계엄령 전국확대조치를 의결한 날입니다. 저는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으로서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조치와 국보위에 반대하는 뜻으로 사표를 제출하고 민간인이 되었습니다. 그 이튿날인 1980년 5월 18일 전남대학교학생들은 비상계엄 전국확대 반대시위를 했었고 그것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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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에 반대하여 사표를 냈던 유일한 정부인사였고, 전남대는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에 반대하여 다음날 아침부터 시위로 항거했던 최초의 대학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제가 광주.전남을 생각할 때마다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영산강입니다. 영산강은 전남평야의 젖줄이면서도 매년 한해와 수해를 숙명처럼 겪어왔습니다. 이같은 자연재해를 막기위해 장성댐을 비롯한 4개 댐과 목포 하구 뚝을 건설하는 영산강 개발 사업에 저는 당시 도지사로서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저는 오늘도 장성댐을 보면서 커다란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전남도지사로서 저의 젊음과 땀과 정성을 광주.전남을 위해 모두 쏟으려고 힘썼고 도민(道民)의 한사람으로 도민과 함께 생활하면서 도민여러분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광주.전남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저를 성장시켜준 어머니 품같기에 오늘 남달리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처해있는 역사적 상황에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에 대하여 제 공직생활의 체험을 바탕으로 얘기 하고자 합니다.

저는 민(民)과 관(官)을 일곱 차례 왕복하면서, 지방정부의 시장(市長), 도지사(道知事)로서, 정부부처의 장(長)으로서, 최고통치자의 보좌(補佐) 또는 대행(代行)으로서, 리더십은 저의 생활의 일부였고 또 주된 관찰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리더십이 얼마나 막중한 소임인가?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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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년전, 한국헌정사상(韓國憲政史上)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彈劾訴追)되었을 때 국가리더십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였습니다. 헌정사상 처음이고 또 돌발적으로 벌어진 사태라 탄핵의 국내외적 충격파(衝擊波)는 아주 심각했습니다. 국내외 증권시장이 요동쳤고 안보불안감이 퍼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태를 대비한 법적 예시나 매뉴얼이나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졸지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내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 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점에 무엇이 중요하고 급한가? 생각했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국가안보(國家安保)였습니다. 국방부를 통해 전군지휘경계령(全軍指揮警戒令)을 내리고 N.S.C. 비상근무령(非常勤務令)을 비롯한 국가안보(國家安保), 외교관계(外交關係), 경제안정(經濟安定), 해외신인도(海外信認度), 치안질서(治安秩序) 순으로 위기상황을 진정시켰습니다.

국가적 위기(危機)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국민여러분들이 저를 신뢰하고 적극 협조해 주셨습니다. 국가관리(國家管理)에 있어 국민의 신뢰와 협조가 절대 중요하다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국민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탄핵사태(彈劾事態)는 해소되었지만 리더십의 위기는 아직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이 널리 퍼져있고, 나라의 현재에 대한 실망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시대적 상황

한나라의 역사에는 어느 한 때의 선택으로, 미래 운명이 좌우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근대화 경쟁과 제국주의 경쟁에 나섰던 19세기가 그런 시기였다면, 탈냉전(脫冷戰), 세계화(世界化)의 체제 속에서 무한경쟁(無限競爭)에 나서야하는 지금 시점이 다시 한 번 그런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GE의 CEO였던 잭 웰치가 “한국경제의 미래전망”에 관한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를, “한국은 중국경제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다섯 차례 중국 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중국에 갈 때마다 그 급속한 발전에 머리가 아팠고, 다녀와서는 우리의 정체(停滯)된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부강(富强)해지는 중국과 다시 부상(浮上)하는 일본 사이에 우리는 호두알처럼 끼어있는 모양새입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19세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2015년경부터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까지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로 “지금부터 10년의 역사적 과제는 어떻게 2015년까지 선진국에 진입하느냐”입니다. 하루빨리 성장동력(成長動力)을 재구축해 10년 안에 소득 35천$을 뛰어넘어야하고 사회안전망을 정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선진강국(先進强國), 세계 10대강국(世界 10大强國)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에는 희망(希望)보다는 실망(失望)이, 화합(和合)보다는 분열(分裂)이 퍼져있습니다. 서민들은 하루하루 살기가 어렵고, 경제의 성장동력(成長動力)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청년실업은 심각한 수준이고 양극화(兩極化) 현상은 벌어지고 있습니다. 노사.노동.빈부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사회를 지탱하는 신뢰 기반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이념(理念)의 양극화(兩極化)가 사회분열을 가져오는 현상입니다. 보수(保守)와 진보(進步)의 대립이 정치적 경쟁과 정책 논쟁의 수준이었으면 좋겠는데, 이걸 넘어서 사회의 균열(龜裂)과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사실(歷史事實)에 대한 해석이 극단(極端)으로 갈리고 국가 정체성까지 논란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념의 대립이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념(理念) 대립에 사로잡힌 정치리더십은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다중적 위험에 대처하고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지 못합니다.

저는 지난해 10월, 홍콩정부 초청으로 경제시찰 기회를 가졌습니다. 홍콩이 세계의 물류허브와 금융허브로 발전함에 따라 그 배후지(背後地)인 주강(珠江) 삼각주(三角洲) 지역에 천백만의 새 일자리가 생겼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경제 홍콩과 사회주의 경제 중국의 윈?윈 협력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실용(實用)을 이념(理念)보다 앞세운 실용주의(實用主義) 개혁 개방의 진수라 할 것입니다. 이념의 갈등자체가 이미 구 소련체제의 붕괴와 함께 그 효용성이 사라진 「냉전시대의 유물」인 것입니다. 바로 이즈음, 제가 홍콩에서 본 한국발 언론은 강정구 교수 사건과 이념 문제로 온통 꽉 차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현상입니까?

한국은 가격경쟁력의 중국과 기술경쟁력의 일본 사이에서 협공을 당하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에 대응하려면 정치 리더십이 한국경제의 새로운 장기 발전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고 통합의 리더십으로 국민의 에너지를 여기에 결집(結集)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리더십은 이 역할을 방기(放棄)한지 오래입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정치 리더십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이념(理念)의 미혹에서 벗어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따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념은 세상을 보는 안경입니다. 하나의 안경만이 진리를 보여준다는 교조주의에서 벗어나야합니다.

저는 이념(理念)의 안경이 아니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관점에서 미래 비전을 정립하고 시대적 과제를 실행하는 리더십을 「창조적(創造的) 실용주의(實用主義) 리더십」이라 부르고자 합니다. 관념(觀念)보다 역사적 현실을 중시한다는 의미에서 「실용주의(實用主義)」이고 현실안주가 아니라 꿈을 가지고 미래를 열어간다는 의미에서 「창조적(創造的)」 실용주의(實用主義)라고 한 것입니다.

창조적 실용주의는 저의 공직생활 경험을 통해 터득하고, 실천해 온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국정을 수행하면서 실사구시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현실적 결과를 중시했던 것이 창조적 실용주의의 요체이며, 공직에서 물러나 있을 때 자기 성찰을 하면서 정리한 것입니다. 제 경험담을 토대로 그 내용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는 지난 12월 부산국제신문사 요청으로 강연을 하게되었는데, 이때 학생들로부터 「국무총리가 된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가 대답하기를, 특별한 비결은 없으나 3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통해서 일관되게 지켜온 세가지 원칙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세가지를 리더십과 관련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제가 공직(公職)을 처음 시작할때, 집의 선친(先親)께서 세가지 가훈(家訓)을 주셨는데, 첫째는 줄서지 마라, 둘째는 남의 돈 받지마라, 셋째는 술 잘 먹는다고 소문내지마라, 이 세가지 였습니다.

첫째는 공직자가 여기저기 줄서서 인사운동하지 말고 진로를 자기 능력으로 개척해 나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인으로서 제가 맡은 일에 온 정성을 다하는 「지성감민(至誠感民)」을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란 말이 있는데 하늘까지 감동은 못시켜도 시민이나 국민이 감동할 때까지 정성을 다하는 「지성감민(至誠感民)」이 첫 번째 좌우명입니다.

둘째는 공인으로서 청렴(淸廉)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제 개인뿐 아니라 내가 속한 조직, 기관, 즉 예를 들면 서울시청의「복마전(伏魔殿)」이라는 부패의 대명사를 추방하는데도 전력투구했습니다.

셋째는 술 잘먹는다고 소문내지 마라는 가훈인데, 이것은 제가 지키지 못했습니다. 저는 시장?도지사때 저 일선직원들과 저녁에 소주미팅을 자주 가졌는데, 여기서 사무실에서 듣지 못하는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주한잔씩 따라주다보면 저 역시 적지않게 마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술 잘 먹는다고 소문이 나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세번째 가훈은 바꾸게 되었습니다.「일일신(日日新)」, 매일매일 내 스스로 새로워진다는 「일일신(日日新)」으로 바꿔서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성감민(至誠感民)과 청렴(淸廉) 그리고 일일신(日日新) 세가지가 저의 공직관이고 공직자로서 「리더십」의 특징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세가지 원칙(原則)을 지키면서 제가 직접 겪었던 리더십의 경험측 몇가지를 사례로 정리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지성(至誠)으로 감민(感民)하려면,

첫째, 국민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동행(同行)」의 리더십(Lets go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저는 리더십은 국민과 더불어 동고동락하면서 정성으로 국민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치권을 바라보면 실망스럽습니다. 얼마 전에는 골프 파문에 성추행 파문으로 국민을 부끄럽게 만들더니, 요즈음은 공천비리 문제로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정치가 국민을 부끄럽게 만들고 걱정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국민과 함께 동고동락해야 합니다.

? 제가 젊어서 전남도지사 발령을 받았는데, 그때만해도 지방고위직들은 자녀들 교육을 위해 서울과 지방 두집살림을 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도지사가 두집살림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서울에서 괜찮은 중학에 다니던 두 아들 모두 데리고 광주로 전학을 시켰습니다.

서울사대부중 2학년에 다니는 큰 아이를 화순 가는 변두리 광주 숭의중학교에 배정받아 전학을 시키는데 한달 반이 걸렸습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느냐하면 서울사대부중에서 그때까지 전출해간 학생이 없었기 때문에 전출원서 용지가 없어서 용지를 전화로 보내달라고 하면 될텐데 이것도 관료주의라서 교육청에 공문으로 요청한 것입니다. 공문이 왔다갔다하다보니 한달 반이 걸린 것입니다.

저는 도민들과 함께 도민 속에서 생활하다보니 전남도민이 잘먹는 음식 두가지를 열심히 먹게 되었습니다. 홍어, 꼬막을 열심히 먹다보니 모두 칼슘이 많은 음식이어서 칼슘과잉으로 신장결석이 생겼습니다. 정말 다정(多情)도 병이 된 것입니다.

그 때 의술(醫術)로는 신장결석(腎臟結石)을 수술하고 회복하려면 한달이 걸립니다. 도지사가 바쁜데 입원할 수가 없어 격통이 나지만 진정제를 가지고 다니면서 격무를 하고 있는데 때마침 섬에 염해가 들었습니다.

염해란 섬에 한해가 들면 수분이 부족해 벼가 염분을 흡수해서 하얗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현장에 가야될텐데 배타고 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안되고 많은 섬을 다녀야 하니까 농약뿌리는 털털거리는 헬리콥터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것만 타고 내리면 신장에 있는 결석이 움직이기 때문에 마찰로 인해서 여러 가지 고통이 옵니다. 그걸 참으며 다녔는데 20일째 되니까 돌(결석)이 저절로 내려와 자연배출되었습니다. 헬리콥터가 흔들려 물리치료가 된것입니다. 다정(多情) 때문에 병이 생겼는데 다정(多情) 때문에 고친 것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은 지성감민을 위한 기초적인 자세인데 이것이 바로 동고동락하는 동행의 리더십입니다. 저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이름이 렛츠고인데 「렛츠고 리더십」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 지금 우리에게는 분열(分裂)이 아니라「통합(統合)」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은 남.북 분단체제하에서 국내정치도 여.야, 지역, 계층 간에 분열(分裂), 불신(不信), 대결(對決) 구조를 심화시켜 왔습니다. 어느 정치학자가 지적했듯이 “나눔의 정치” 보다는 “나누기 정치”를 해왔고 상생(相生)의 정치보다 상극(相剋)의 정치를 해왔습니다. 타협(妥協)과 협상(協商)보다는 배제(排除), 반목(反目)과 대결(對決)의 정치가 지배(支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지역.집단.노사가 편가르기를 지양(止揚)하고 화해.공존.나눔으로 이끌 수 있는 통합(統合)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일을 찾아 이 일에 국민의 열정과 역량을 모으는 국민통합(國民統合)의 리더십이 필요한 것입니다.

국민들을 통합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정치지도자는 국민을 부자 대 빈자, 재벌 대 노동, 자주 대 외세 등 대립적인 집단으로 양분하여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를 지양(止揚)해야 합니다.

사회구성원들과 소통하고 연대할 때 일이 성사됩니다. 코드가 다르다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견해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일방적 통치(統治)가 아니라 협치(協治)(Governance)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제로섬(zero sum)의 관점에서는 편가르기를 하게 되지만 플러스섬(plus sum)의 관점에서는 공통분모를 찾고 WinWin의 상생(相生) 협력(協力)의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상생(相生)의 정치를 하기위해서는 의사소통(意思疏通)이 필수적입니다. 일방적 주장이 아니라 상호소통(相互疏通)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일류 정보통신국가이지만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수준은 세계 최하위에 속합니다.

사학법(私學法) 개정 문제가 제기된 지 두해가 되지만, 그 동안 여?야 간, 정부 교육당국과 사학재단(私學財團) 사이에 진지한 의사소통의 노력은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의사소통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입니다.

상생(相生)의 정치를 위해서는 갈등을 조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갈등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인데, 요즈음 우리 정치는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인기 목적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경우에는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국가에 막대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사회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직된 이념에서 벗어나서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으로 통합의 리더십으로 국가를 효율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사회적 갈등이 제일 많은 곳이 대도시 사회입니다. 서울시장 시절 대도시가 갖고 있는 집단민원이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민과의 토요데이트를 제도화하고 매주 토요일은 집단민원인 대표들을 만나서 민원 내용을 경청하고 심의하고 민원해소 대책을 시장책임으로 결단해 주었습니다. 매주 토요일은 집단 민원인들과의 의사소통의 날이었습니다.

진지한 의사소통을 통해서 역지사지 관점에서 실용적인 해법을 찾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일로써 승부하는 「성과주의(成果主義)」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국민은 이념(理念)보다 실생활의 실용적(實用的) 측면에 더 관심을 둡니다.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낸 것은 등소평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었고, 싱가포르를 일류국가로 이끈 것도 능력주의(Meritocracy), 실용주의(Pragmatism), 정직성(Honesty)으로 요약되는 리콴유 총리의 MPH 리더십이었습니다.

성과주의(成果主義) 정부는 총론(總論)보다 각론(各論)을, 말보다 실행(實行)을 중히 여깁니다. 아무리 로드맵(road map)이 그럴싸해도 액션플랜(action plan)이 뒤따르지 않으면 무위(無爲)에 그치고 맙니다. 작은 정부, 큰 정부가 문제가 아니라 똑똑한 정부, 일 잘하는 정부가 필요합니다. 똑똑한 정부는 전문성있는 정부, 성과를 올리는 정부입니다. 그런 정부는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구별합니다. 현재의 일을 미래에 부담시키지 않습니다.

저는 70년대 새마을사업 실무책임자였는데, 그때 저에게 대통령 특명이 내렸습니다. 저는 전국의 국토를 녹화하는 10개년 계획을 세우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 동안의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서 대책을 세운 것이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입니다. 이 계획을 전국의 새마을 녹화사업으로 추진한지 6년반만에 푸른 산림이 완성되었습니다. FAO로부터 2차대전후 인공조림으로 성공한 유일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실사구시, 성과주의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1989년 서울시장때 서울지하철은 지옥철이라고까지 불려졌습니다. 여중생이 질식하는 광경까지 목도하면서 전동차를 늘리고 지하철을 더 만들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2기 지하철 5?6?7?8호선의 노선을 정하고, 예산을 확보하고, 설계하고, 160km를 한꺼번에 착공했습니다. 민선시장으로 다시 돌아와 모두 완성함으로써 서울이 세계 5대 지하철 도시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재미동포들이 서울에 오면 지하철은 미국보다 서울이 낫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것도 성과주의, 실용주의의 좋은 사례입니다.

넷째, 미래 대응적인 「혁신(革新」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산업화시대에 우리의 발전모델은 “따라잡기(catch up)” 모델, 일본 따라잡기 모델이었습니다. “따라잡기” 모델은 1997년 외환금융위기를 당하여 그 한계를 맞이했습니다. 이제 지식정보화시대(知識情報化時代)에 맞는 새로운 발전모델이 필요합니다. 세계경제의 흐름을 파악하고 미래 대응적인 새 발전모델을 창출해야 합니다.

경제학자 슘페터는 신기술을, 신발명을 실용화하는 혁신, 이것이 기업가 정신이요, 자본주의의 생명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개혁(改革)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실용(實用)을 위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실용화(實用化)하는 혁신(革新)이 중요한 것입니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지속적인 개혁을, 이념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 입각한 지속적인 개혁과 혁신을 통해 미래를 열어야 합니다.

저도 신기술을 실용화한 대표적인 예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시청은 오래전부터, 부정부패의 복마전(伏魔殿)이라는 오명(汚名)으로 불려왔는데, 저는 시청에서 복마전을 몰아내기 위해 인터넷 신기술을 실용화해서 행정시스템 혁신을 단행했습니다. 서울시의 모든 인허가 이권처리를 Internet에 투명하게 공개처리 하도록 했습니다. 이같은 민원처리 On-line 공개시스템으로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추방해 버렸습니다. 이 투명 행정시스템은 UN이 채택해서 세계회원국에 보급중입니다.

다섯째, 세계로 열린 「개방(開放)」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안전과 번영은 세계와의 협력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민족공동체를 귀하게 여기지만 민족주의의 쇼비니즘은 거부합니다.

자주(自主)냐? 종속(從屬)이냐? 의 이분법(二分法)을 넘어「실속있는 자주」,「열린 자주」를 지향해야 합니다. 통일을 착실히 준비하되 통일지상주의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아시아시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되, 반도국가 한국의 미래는 대륙(大陸)이냐? 대양(大洋)이냐? 어느 한쪽이 아니라 대륙과 대양, 이 둘을 잇는데 미래가 있음을 믿습니다.

수출주도형 개방경제를 갖고 있는 한국으로서 세계 여러나라와의 FTA 체결은 생존전략과 같은 것입니다. 나는 국무총리로 일할 때, 119조의 농어촌 대책을 마련하고 한?칠레 FTA를 마무리 했습니다. 지금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한?미 FTA도 피해산업에 대한 충분한 보완대책을 세우고 타결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청렴(淸廉)」과 「신뢰(信賴)」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신뢰는 모든 리더십의 생명입니다. 신뢰가 없으면 리더십이 작동할 수 없습니다. 공자(孔子)가 국가존립의 3요소가 무엇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을 받고 그 답은 병사(兵士)와 식량(食糧)과 신뢰(信賴)이며, 세 가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신뢰의 위기(危機)에 처해 있습니다. 무엇보다 청렴하고 정직(正直)해야 신뢰가 삽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신뢰성의 위기에 대한 큰 책임은 정치지도자들에게 있습니다.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너무 손쉽게 말을 바꾸고, 정실주의(情實主義)에 억지변명을 붙이고, 때로는 불의(不義)와 편법(便法)도 자행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정치권의 공천비리 같은 정치 부패가 신뢰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야당국회의원의 아들로 공직(公職)을 출발했기 때문에 청렴은 생존의 법칙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청렴(淸廉)이 체질화(體質化)되었고 나중에는 저의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서도 끝까지 이를 지켜나간 것입니다.

1990년 임명직 서울시장 때, 청와대로부터 수서지구(水西地區) 토지특혜를 한보건설에 주도록 엄청난 압력을 받았지만 끝까지 거부하고 시장직을 물러났습니다. 청와대 압력에 항거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스스로 청렴을 지켜왔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국가정책 또한 신뢰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결정과정에서 신중한 검토와 합리적인 절차가 수반되어야하고, 한번 결정되면 일관성과 투명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의 언행(言行)이 일치(一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인(公人)으로 있을 때 언행일치(言行一致), 약속(約束)은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한때 7년 동안 실직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 중 3년은 명지대학교 총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총장을 수락할 때에 이런 일만은 이루어 놓겠다고 교수들과 학생회에 약속한 것이 있었습니다.

1년이 됐을 때 정치적으로 아주 좋은 제의를 받았습니다. 김대중 총재로부터 서울시 초대 민선시장후보로 영입하겠다는 제의를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또 1년 후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Tea 타임을 가졌는데, 전국구 상위 순위로 들어와서 함께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제의였습니다.

그러나 학교와의 약속, 학생회와의 약속, 교수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좋은 제의였지만 모두 사양했습니다. 공인으로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두 번의 좋은 정치적 제의를 포기한 셈입니다. 그런 좋은 호기를 포기할 만큼 약속이행은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상으로 창조적(創造的) 실용주의(實用主義) 리더십의 지향점을 제시하였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 한국은 현시대의 다중적 위험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안전국가”, 경제적으로 윤택하면서 공생의 가치가 존중되는 “녹색사회”, 남북의 평화적 공존 속에서 세계와 경쟁하며 협동하는 “선진강국”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세계사(世界史)의 바다위에서 방향과 동력(動力)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선진의 문턱에서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의 정치 리더십은 철지난 이념에 미혹되고 정파적 이익에 눈이 멀어, 국가 비전을 세우고 새 항로를 찾아 국민의 힘을 한데 모으지 못하고 편 가르기와 시행착오로 아까운 역사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듯, 위기는 기회를 잉태합니다. 현재의 위기를 선진강국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창조적(創造的) 실용주의(實用主義)가 그 기회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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