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6.영국
1)영국--오늘 이야기
2,3,4,5,6,7,8,9)런던(London)
10)배스(Bath)
1. 영국에 대해
1. 영국
영국을 다시 찾은 것은 지난 2월 중순.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쓰는 희망의 4강을 그리며 축구 대담기획을 마련했고, 세계 최고 리그인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영표 선수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시가지 한복판에 현대식 고층 건물 없이 고풍스런 18,9c 건물로 가득한 빠리와 달리 고풍스런 건물과 현대식 고층 건물이 섞여 있어 뒤숭숭한 인상의 런던. 언제나 그렇듯 영국을 찾으면 참 만감이 교차한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신사의 나라, 민주주의의 원조... 그러면서도 왕정제를 고수하는 나라, 상원의원의 세습제를 21c 들어서 폐지했을 만큼 신분제가 살아있는 나라, 유럽연합에 속하면서도 유럽통화인 유로화를 채택하지 않는 나라, 유럽과 거리를 두며 미국의 전쟁정책을 추종하는 나라, 평등을 사회 모토로 삼는 유럽의 대륙국가들과 달리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미국식 신 자유주의의 나라, 학비와 의료비가 없는 유럽 대륙과 달리 여대생이 학비 벌려고 신문에 매춘광고를 내는 나라...
이영표 선수가 소속된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튼햄 핫스퍼구단 스타디움 앞에 있는 구단 전용 매장. 매장안에는 이영표선수를 모델로 한 각종 기념품이 판매된다.
영국은 그리 큰 나라가 아니다. 대영제국이니 해서 늘 제국의 이미지만 떠올려 그렇지 실제 24만㎢ 이니 한반도(22만㎢)보다 조금 크다. 인구도 6천만 정도로 남북한을 합친 7천만보다 적다. 영국 본섬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로 나뉜다. 이를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대영(大英)이란 말이 나온것 같은데 큐슈, 혼슈, 시코쿠, 홋카이도의 섬 몇개 합쳐 놓고 대일본(大日本) 운운하는 나라와 스케일이 닮은꼴이다. 20c 벽두를 영일 동맹으로 열며 제국주의 동맹을 맺었던 두나라여서 그런가? 옆나라 아일랜드의 북쪽 귀퉁이를 차지해 [북아일랜드]라면서 갈등관계를 일으키는 영국이나 독도를 넘보는 일본이나 섬나라끼리 비슷하다. 북아일랜드와 그레이트 브리튼을 합쳐서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라고 부른다. 흔히 영국이라 부르는 나라의 정식 이름이다. 아일랜드와는 1801년 한나라로 합쳤다가 1923년 다시 다른 나라로 갈라선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영국은 로마시대 이전에 중부유럽을 거쳐 영국땅으로 들어간 켈트족들의 세상이었다. 로마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카이사르 때. B.C 58년 골(갈리아) 총독으로 부임한 카이사르는 골 정벌에 이어 바다 건너 영국땅 브리타니아까지 원정했다. 그러나, 그뿐. 이후 백여 년을 뜸했던 로마는 43년 4대 클라우디우스 황제때 본격적으로 영국 침략과 정복을 시도했다. 영국 남동부 지방을 성공적으로 장악한 뒤 브리타니아 속주를 건설했다. 그러나, 토착 켈트족이 버티고 선 북부지방은 정복하지 못했고, 이들과 끝없는 싸움을 벌여야 했다. 2c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켈트족의 침략을 견제하기 위해 오늘날 스코틀랜드와 경계지점에 거대한 성벽을 쌓았다. 이 하드리아누스 장벽(Hadrian's wall)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영국에서 로마통치가 종말을 고한 것은 켈트족이 아닌 게르만족 때문. 훈족에 밀려 중부유럽에서 서유럽으로 쫓겨온 게르만족의 일파 앵글로족과 색슨족이 3c 말 바다 건너 브리타니아로 쳐들어왔다. 이들과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던 로마는 마침내 410년 브리타니아에서 마지막 군단을 철수시켜 대륙으로 복귀하고 브리타니아를 포기했다. 로마지배가 막을 내렸다. 켈트족 역시 게르만족에 밀려 아일랜드나 스크틀랜드, 또 프랑스 브르따뉴 지방으로 이주했다. 이후 영국은 앵글로 족과 색슨족의 나라가 됐다. 앵글로 색슨의 나라.
보수를 끝낸 브리티시 뮤지엄 전경. 브리티시 뮤지엄은 입장료가 없다. 빠리 루브르와 함께 세계의 유물창고로 불린다. 이곳에도 지중해 각지에서 걷어온 모자이크가 자리한다.
우리가 흔히 대영 박물관(大英 博物館)이라 부르는 런던의 브리티쉬 뮤지엄(British Museum)은 빠리 루브르(Louvre)와 함께 세계 문화재의 보고(寶庫)로 꼽힌다. 18c 부터 시작돼 20c 초까지 이어진 발굴의 시대, 고고학의 시대에 세계 각국을 누비며 유적을 발굴한 뒤 유물을 가져온 결과다. 제국주의 시대 주요 유적지가 몰린 북아프리카, 중동, 지중해 각 섬이 대부분 식민지였던 점은 유물을 싹슬이하는 결정적인 수단이 됐다.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시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물이 수천년이라는 세월의 무게와 정교하면서도 뛰어난 제작기술이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브리티쉬 뮤지엄에도 지중해 주변 각지에서 가져온 모자이크를 다수 소장하고 있다. 영국 본토에서 발굴한 것을 비롯해 튀니지, 이탈리아등에서 가져온 작품인데, 아쉬움이 크다. 전시공간이 좁은 탓에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지 못한 채, 유물 전시실에서 다른 유물 전시실로 움직이는 이동 통로 계단 벽에 걸어놓은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트로이의 아에네아스가 트로이 전쟁 패전 뒤 아들 아스카니오스와 함께 이탈리아 반도 라티움에 도착하는 장면을 그린 로마 시대 조각. 돼지가 이들을 반긴다. 브리티시 뮤지엄에 소장돼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물론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브리티시 뮤지엄은 루브르등 다른 유럽 박물관들 처럼 새로 지은 게 아니라 백여년도 넘는 건물이다. 그러다 보니 좁을 수 밖에. 여기다 브리티시 뮤지엄만의 특징도 한몫 한다. 유럽 박물관의 일반적인 관행과 달리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기부금과 정부 보조금으로만 운영하는 박물관의 전통을 이어 간다. 박물관의 자부심은 좋지만, 운영자금에 늘 쪼들릴 수 밖에... 넉넉한 공간을 더 마련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 몇년 사이 내부 공간 재배치와 건물 외벽 공사를 벌였는데, 식당이나 기념품 코너 같은 돈벌이 장소만 크게 확장하고 부족한 전시공간 문제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느낌이다. 돈 좀 받고 유물 좀 잘 관리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전통을 이어가는 게 좋을까... 다음호부터 모자이크를 자세히 들여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