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5.프랑스
1)프랑스(France)
2,3,4,5,6,7,8,9)빠리(Paris) 루브르(Louvre)
10,11,12,13,14,15) 셍제르망 앙 레(Saint Germain en Laye)
16)리용(Lyon)
17,18,19,20,21,22, 23, 24)비엔느(Vienne)
25)오랑쥬(Orange)
26)베종라 로멘느(Vaison La Romaine)
27,28)님므(Nimes)
29. 프랑스에 대해--오늘 이야기
29. 최초 고용 계약법과 프랑스
프랑스의 로마 모자이크를 끝냈다. 다른 도시에도 모자이크가 일부 있지만, 다 돌아보지는 못해 이 정도에서 아쉬움을 남기며 마감한다. 프랑스는 어떤 나라일까? 프랑스에서 2천년 전 로마 문화를 토대로 빚어 놓은 삶의 궤적을 좇는 일은 흥미로운 탐험이다. 그러나, 더 소중한 무엇인가가 기다린다. 과거는 과거. 그 과거가 현재 어떻게 투영되는지의 문제가 고갱이같은 본질이 아닐까? 오늘날 프랑스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 구체적으로 양심에 기초한 개인의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이웃과 간격이 크지 않은 평등사회를 구현하고, 나아가 이성에 뿌리를 둔 진실이나 진리가 무지와 맹목적 추종에 더럽혀지지 않도록 항상 경계하는 삶. 이런 원리가 사회의 주춧돌로 어떻게 탄탄히 받쳐지는가를 탐구하는 일이야 말로 현지체험으로 배우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접근의 결정체일 것이다.
1944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이 독일을 물리치기 위해 상륙한 프랑스 서부 노르망디 해안. 바다한가운데 보이는 물체가 상륙 작전 당시 사용하던 선박 잔해다.
최초 고용 계약법(CPE). 전 세계 시민들의 눈이 프랑스로 쏠리도록 만들어 준 마력의 최초 고용 계약법(le Contrat Premire Embauche). CPE는 한마디로 기업주가 26세 미만 노동자를 입사 2년 안에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한다. 보수파인 드 빌팽 총리가 노동의 유연성을 통한 만성적인 청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정치적인 운명을 걸고 내놓은 법안이다. 그러나, 야당인 사회당과 공산당, 학생, 노동자들의 격렬한 반대로 결국 국회까지 통과해 놓고도, 같은 보수파이자 정치적 스승인 시라크 대통령에 의해 백지화 됐다. 태어났지만, 삶을 얻지 못한 가련한 운명이라고 할까? 실패한 CPE 법안에서 프랑스를 이해하는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고루 행복을 누리는 세상을 그리는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시민들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신뢰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쉴 수 있도록 해준 최초 고용계약법 사태를 통해 프랑스가 어떤 사회인지 들여다 보자.
1789년 프랑스 국민들은 더 이상 왕의 일방적인 통치에 굴복하지 않고 시민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겠다고 선언한다. 그 상징으로 하늘처럼 떠받들던 루이 16세와 왕비를 형장으로 보냈고, 둘은 단두대의 칼날에 선혈을 뿜어내며 한 방울 아침 이슬처럼 절대왕정제와 함께 사라졌다. 물론 이후 100년간 반혁명과 재혁명의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지만, 오히려 이런 과정을 통해 프랑스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인간의 무한한 자유(Liberte)와 동시에 자신의 자유가 소중한 만큼 이웃도 인간답게 살 권리를 지닌 존재로 인정하는 평등(Egalite), 나아가 그 어느 몽매한 감정에도 기울지 않고 냉철한 이성으로 살지만 동시에 따뜻한 형제적 박애정신(Fraternite)을 생명처럼 간직하게 됐다. 이른바 프랑스 혁명의 3대 정신이다.
프랑스는 대학 이름이 없다. 빠리에 12개 대학이 있고, 이름이 1대학, 2대학... 이런 식이다. 평등화 정책의 일환이다. 사진은 그중 2대학 건물. 여기에 2대학 언론대학원(IFP)가 있다. 프랑스는 많은 지상파 매체가 국영내지 공영이다.
프랑스는 이런 정신으로 왕정(王政)이 아닌 공화정(共和政)을 선택하고 공화정의 정신을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로 여겨 왔다. 뼈저린 투쟁의 산물, 즉 역사적으로 꼭 거쳐야 할 통과의례(通過儀禮)를 겪고 얻은 공화국(민주주의)이 아닐 경우 그 토대가 매우 취약해 공염불이 되고 마는 경우를 보곤 한다. 그 어느 나라인들 치열한 논란이나 다툼 없이 공화국을 일궜으랴마는... 깊게 데인 역사적 상처가 큰 프랑스인들은 지금도 대내외적인 난제에 부딪칠 때 마다 공화국 정신을 들먹인다. 프랑스 국민의 공화국 정신은 구체적인 현실 삶에 어떻게 녹아 들어 있을까?
프랑스는 남한 보다 5.5배나 크지만, 미국의 18분의 1에 불과한 아주 작은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 역시 우리보다 2배 많지만, 일본이나 미국에는 뒤진다. 과거 식민지에서 들어오던 경제적 잉여의 영광을 모두 뒤로 하고, 이제는 석유 한방을 나지 않는 자원빈국. 세계 최대의 지하자원 매장국 미국과 비교해 너무 초라하다. 그러니, 어떻게 먹을 거리를 마련하고 이를 나눌 것인가의 사회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은 거의 모든 기업을 민간이 소유한다. 개인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이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무한적인 이윤추구의 다툼 속에 경제성장을 도모한다. 프랑스는 다르다. 세계 최고 기업의 하나로 꼽히는 삼성의 삼성 자동차를 인수한 르노 자동차를 비롯해 프랑스의 날개 에어 프랑스등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대기업들이 국가 소유다. 지하철이나 철도, 우리에게 무기를 판매하는 군수산업체 역시 미국과 달리 국영기업이다. 방송도 마찬가지. 미국은 주요 방송을 민간인들이 돈벌기 위한 수단으로 운영하지만, 프랑스는 언론이라는 공적 사명을 중요시하며 대부분 국,공영에 일부 민영제도를 도입한다. 이렇게 사회의 재화를 증대시키는 역할을 미국은 민간이 맡지만, 프랑스는 민간에 맡기되 중요한 영역은 국가가 직접 챙기거나 공영적 관리에 맡긴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술, 꼬냑. 프랑스 중서부 꼬냑 지방의 까뮈(Camus)생산공장.
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공영적 기업에서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할 수 없다. 경영의 효율성을 꾀해 이윤을 극대화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노동자를 해고해도 좋은 게 미국식이지만, 프랑스는 다르다. 기업의 목표가 돈버는 것도 있지만, 고용을 통해 사회적 안정을 추구하는 것도 큰 과제다. 그러니, 증대된 재화를 분배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복지에서 질적인 차이로 귀결된다. 대학등록금 비싸기로 이름 높은 미국이나 영국, 일본과 달리 프랑스는 시험만 붙으면 누구나 거의 무료로 박사과정 까지 다닌다. 의료비 없어도 일단 서민들 치료 걱정은 없다. 외국인도 일단은 다 치료해 준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여자 사귄 문제로 탄핵소동까지 치렀지만,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대통령 재직 시절 혼외 자식과 정겹게 식사하고 다녔다. 프랑스인들은 누구나 두려워 하고 선망하는 세계 최강 미국을 황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로 규정하면서 자신들이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더 중히 여긴다고 자부한다. 8시 저녁 뉴스 시청률이 영화와 함께 15-17% 대로 모든 TV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고, 단 40만부로 세계 최고의 권위지로 인정받는 르몽드(Le Monde, 세계)를 소유한 나라.
여기까지만 얘기해도 프랑스가 일본이나 미국, 그리고 한국과는 국가 운영방식이나 삶의 방식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어느 사회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의 조건을 더 충족시켜 주는지를 따지는 일은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어느 쪽이나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은 예외 없이 서민들을 걱정하고 서민들 위해 정치 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그러나, 실제를 들여다 보면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 입장만 대변해 주는 경우가 더 많다. 이들이 현실을 호도하는 방법, 명분은 한결같다. "벌어야, 즉 파이를 키워야 나눠 줄 것 아니냐?" 프랑스, 독일, 스웨덴 보다 돈 많고 파이가 큰 미국이나 일본이 더 잘 나누는 사회가 아님은 널리 알려진 대로다. 이런 차이가 왜 나오는지 두 가지 사상적 흐름에서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New-liberalism)와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
신자유주의(New-liberalism)란? 18c 로크나 아담 스미스에서 시작되는 자유주의(Liberalism)는 기본적으로 개인 자유의 확대, 민간 자유의 확대를 신조로 삼는다. 국가나 사회의 간섭을 최소화 하는 게 자유주의다. 정부는 작아야 하고, 모든 것을 자본주의 시장 운영원리에 맡겨야 한다. 그러나 20c초 대공황을 겪으면서 정부는 수정 자본주의(修正資本主義)를 채택하면서 국가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가트(GATT)로 대표되는 세계 경제 체제가 미국 주도로 짜여졌다. [금 1온스=35달러=각국의 화폐와 달러화 교환비율 즉 환율 고정]으로 각국이 폐쇄적인 환율 정책과 무역을 보장하되 관세로 일정부분 통제를 가하는 제한적인 무역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세느강 하류, 지베르니. 인상파의 대가 모네가 작업하던 화실이 오른쪽 건물이다.
그러다, 1차 오일 쇼크로 경제가 힘들어지고 1973년 미국이 이 정책을 포기하면서 다시 자유주의적 기조가 고개를 들었다. 신 자유주의다. 인위적인 정부의 개입은 시장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결국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것으로 인식하게 됐다. 마침 영국의 보수적인 대처 정부나 미국 보수적인 레이건 정부가 등장해 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생산성 향상(노동자 해고, 기업 인수 합병), 저금리 정책등으로 자본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경제체질을 바꿔 준다. 이렇게 되자 무엇보다 헤지펀드들이 변동환율제의 틈을 타고 국경 없이 다니며 각국국민들이 애써 벌어들인 돈을 마구 쓸어 담았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놓고 35억 달러 벌듯이... 뿐만 아니라 자본가 위주 정책을 펴다보니 돈, 지식, 정보가 뒤지는 시민들 지위는 자본주의 초기처럼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힘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는? 보수주의(Conservatism)는 기본적으로 한 사회가 간직해온 법이나 관습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이념을 말한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어떤 모습"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게 아니고 사회에 따라 상대적으로 내용을 달리한다. 유럽에서 보수주의는 전통적인 왕정, 귀족정 주의자로 개인주의나 자유주의 같은 새로운 가치기준에 반대된다. 그러나, 미국의 보수주의는 딴판이다. 왕정이나 귀족정이 없던 미국은 개인의 무한한 자유가 원래 지고지선의 가치였다. 이후 자본주의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을 강화하자 여기에 반발해 국가의 힘을 줄이고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는 측이 보수주의다.
20c 후반 들어 나타난 신보수주의는 이처럼 경제적인 측면에서 작은 정부의 신자유주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정치나 군사 영역에서는 극단적인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로 무장한 제국주의고, 사회적으로는 국가관을 강조하는 국수주의와 종교적 색채를 강한 종교국가의 면모를 띤다. 이라크를 공격하는 미국과 독도를 넘보는 일본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특히 미국의 신 보수주의는 기독교적 가치관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거부하며 개인의 정신 영역을 넘어 공적인 영역에까지 기독교 윤리를 강조하는 것을 특징으로 삼는다. 혼전 순결 강조, 낙태 반대와 신의 우주 창조론 교육등이 대표적이다. 경제에서 자유방임과 달리 개인생활에서는 국가 개입을 강조하는 것이 신보수주의다.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공동체 국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신자유주의나 신보수주의를 배격한다. 신보수주의의 전체주의적 입장과 달리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는데 주력한다. 반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기업인 위주의 사회 운영 원리를 적용하는데 조심스럽다. 대신에 사회구성원 전체의 복지와 평등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아래서는 어느 연령대든 비정규직을 마음대로 두고 구조 조정에 따라 언제든 직원을 해고하지만, 유럽 공동체 일부국가는 아예 비정규직이라는 개념도 없다. 기업 활성화를 위해 기업가들이 2년 안에 마음대로 26세 이하의 직원을 해고 할 수 있도록 한 법안. 비록 우파적 성향이 강한 대통령과 총리가 밀어붙였지만, 평균적인 프랑스적 가치관에서는 아직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세느강과 우리에게도 이름이 익숙한 뽕네프 다리.
이처럼 프랑스의 최초 고용 계약법 사태는 단지 프랑스 국내 고용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모델과 사회운영 원리, 즉, 생산성 향상을 위해 민간인, 자본가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고 그 속에서 무한 경쟁을 조장하며 승자 독식 체제를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나 공적 영역이 사회운영의 중추가 돼서 평등을 구현하는 사회를 유지할 것인가?의 양자 사이에서 사회운영 토대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치열한 이념적 대결을 펼친 것이고, 결국 평등의 종주국 프랑스답게 그러나 아주 힘겹게 평등 유지가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가 언제까지 이런 정책을 유지할 수 있을까? 국회를 통과시키고도 국민들의 선택을 받아들여 CPE를 철회하는 프랑스의 태도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지 반추해 보면 타산지석으로 유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