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갸넨드라 국왕이 16일째 계속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에 굴복해 주권을 국민들에게 되돌려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갸넨드라 국왕은 21일 국영 TV와 라디오를 통한 대국민 연설에서 네팔 왕국의 행정 권력은 오늘부터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7개 정당 연합체에 조속한 시일 내 새 총리를 추천해 주도록 요청한다고 말했습니다.
국왕은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자 수도 카트만두 일대에 통행금지를 연장하고 발포령까지 내렸지만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휴대전화 메시지 '피플파워'에 영향
특히 절대권력에 맞선 네팔 '피플 파워'의 뒤에는 휴대전화라는 뉴미디어가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시위대 사이에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시위 참가와 투쟁을 독려하는 글이 그동안 돌았습니다.
‘거리에 나가지 못하면 집의 꼭대기에 올라가 슬로건을 외쳐라’라고 하거나 ‘역사는 피에 의해 쓰여진다. 지금은 민주주의를 위한 순간이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휴대전화를 통해서 퍼져나갔습니다.
다른 12명에게 메시지를 전파하라는 주문도 달려 있었습니다.
현지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네팔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5%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뉴미디어를 이용한 이들의 결집력이 시민 혁명을 이끌었습니다.
네팔 정부는 이런 뉴미디어의 힘을 알았는지 시위 확산을 위해서 휴대전화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란 혁명은 '카세트 테이프' 혁명
이와 같은 예는 이란 혁명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이란 혁명은 1979년 2월 팔레비 왕조의 국왕독재를 무너뜨리고 호메이니의 지도하에 이슬람 정치체제를 수립한 혁명입니다.
호메이니는 1960년대초 이란 내 시아파 종교공동체의 최고지도자가 되었고 팔레비를 반대하는 데모를 조직하여 1963년 체포되었습니다. 이듬해 터키로 강제 추방되었습니다.
1978년에는 프랑스 파리 교외의 노플르샤토에 정착하여 이란혁명을 지도하였습니다. 1979년 이란혁명이 승리하자 귀국하여 이슬람공화국을 수립하고 종신 종교·정치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에 있던 호메이니는 그 당시 새로운 미디어인 카세트 테이프에 자신의 성명을 녹음해 이란으로 계속해 보냈습니다.
카세트 테이프는 급속하게 복제돼 퍼져나갔고 마침내 이란 혁명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 때문에 이란 혁명은 카세트 테이프 혁명이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새로운 미디어는 역사적으로 보면 사회 변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실제로 종교개혁이 인쇄술의 발달로 가능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신문의 등장으로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또는 반대로 정권을 교체하는데 이용왔던게 사실입니다.
이렇게 보면 뉴미디어의 등장과 정치변화는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