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5.프랑스
1)프랑스(France)
2,3,4,5,6,7,8,9)빠리(Paris) 루브르(Louvre)
10,11,12,13,14,15) 셍제르망 앙 레(Saint Germain en Laye)
16)리용(Lyon)
17,18,19,20,21,22, 23, 24)비엔느(Vienne)
25)오랑쥬(Orange)--오늘 이야기
26)베종라 로멘느(Vaison La Romaine)
27,28)님므(Nimes)
25. 오랑쥬(Orange)
◆ 원형극장과 개선문
비엔느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지중해를 향해 내달리면 중세 기독교 성지(聖地), 즉 교황청이 자리했던 아비뇽(Avignon, 14c 로마에 있던 교황청이 프랑스의 영향력 증대로 프로방스 백작이 지배하던 아비뇽으로 옮겨진 아비뇽의 유수)에 못 미쳐, 고대 유적의 도시 오랑쥬(Orange)에 이른다. 고층건물이라고는 볼 수 없는 작은 도시지만 초고속 급행 열차 TGV가 설 만큼 교통의 요지다. 빠리에서 프로방스, 랑그독 루시용 지방으로 연결되는 갈림길이 오랑쥬다. 서쪽으로는 님므, 몽펠리에, 나르본느를 거쳐 스페인으로 연결되고, 남동쪽으로는 아비뇽, 엑상 프로방스, 마르세이유, 니스, 깐느를 거쳐 이탈리아로 연결된다. 우리로 치면 영호남을 가르는 대전으로 보면 될까? 그보다는 훨씬 남쪽이지만...
오랑쥬 극장 옆에 자리한 전통 재래시장. 프랑스인들은 교외의 대형 할인매장이나 시가지내 대형 수퍼마켓도 이용하지만, 재래시장도 애용한다. 오랑쥬. ⓒ김문환
오랑쥬는 론느(Rhone)강변에 자리하지 않는다. 리용이나 비엔느, 그리고 더 남쪽의 아비뇽(오랑주에서 남으로 25km)이 론느강을 끼고 만들어진 것과 다르다. 론느강의 본류로 흘러드는 작은 지류 아이그강(江)을 따라 아담하게 자리잡았다. 인구 약 2만 4000명이니 우리네로 치면 시골의 읍(邑) 정도 규모가 된다. 2번을 방문해 보았는데, 오렌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참 먹고 싶을 만큼 예쁜 도시다. 역 앞에 있어 찾기가 쉬워 묶었던 아담한 2층짜리 호텔도 그렇고, 여기서 작은 운하를 따라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중국집 요리도 잊을 수 없을 만큼 맛있다. 중국 요리는 유적을 찾아 헤메는 탐방객의 객수(客愁)를 덜어주기 충분할 만큼 인상적이다.
원형극장. 무대 배경벽 가운데 홈에 옥타비아누스 동상이 보인다. 계단 관중석과 무대의 사람과 비교하면 극장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하기 쉽다. 오랑쥬. ⓒ김문환
오랑쥬의 역사는 이탈리아 북서부 해안과 프랑스 남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리구리아인과 켈트족이 열었다. B.C 6c에는 지중해안 마르세이유에 닻을 내린 그리스인들의 영향도 받았다. B.C 218년에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출발한 한니발의 군단이 만 5천명의 병사와 1만 마리의 말, 37마리의 코끼리를 이끌고 지났다. 이후 오랑쥬가 로마의 영향권으로 들어간 과정을 들여다 보자. 마르세이유를 중심으로 남프랑스에 영향력을 갖던 그리스인들이 켈트(갈리아)족이나 리구리아인들에 시달리다 못해 로마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B.C 125. 그리스의 요청으로 들어온 로마군은 켈트족과 리구리아인들을 효과적으로 물리쳤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 도적을 몰아내고 얌전히 물러날 구원병은 없다. 로마는 B.C 122년 이후 차츰 남프랑스를 직접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련도 겪었다. B.C 105년 게르만족의 일파인 킴브리족과 튜튼족이 대서양 연안인 아끼뗀느(Aquitaine) 지방으로 가다 이곳을 휩쓸며 초토화시켰다. 무려 로마군 8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로마의 기세가 쉽사리 꺾일 수는 없는 일. 공화정 로마에 독재의 씨를 처음 뿌렸던 마리우스가 B.C 102년 나타나 게르만족을 물리치고 로마의 지배영역을 넓혀갔다. 이렇게 로마의 보호 아래 살던 오랑쥬는 B.C 32년 옥타비아누스 때 2연대 병사들이 정착하면서 번영을 누리기 시작했다. 오랑쥬란 이름은 켈트어 아라우시오(Arausio), 오렌쟈(Orenja)에서 나왔다고 한다.
개선문. 오랑쥬. ⓒ김문환
오랑쥬에는 작은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분야별로 최고라는 명성이 무색하지 않은 2개의 로마 유적이 자리한다. 오랑쥬가 탐방객을 위해 자신있게 준비한 유적은 무엇인가? 대표적인 유적 2개는 원형 극장(Theatre)과 개선문(Triumphal Arch). 원형극장은 2c 초 120년 경 건립됐다. 반원형으로 생긴 관중석의 지름이 103m나 되고, 관중석에는 무려 1만 명 이상이 앉을 수 있었다. 무대 뒤에 배경으로 세우는 배경벽 프로스카에나(Proscaenae, Proscaenium)는 높이가 37m에 이른다. 15층 건물 높이인데... 장식벽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높이 3.5m의 옥타비아누스 황제(오랑쥬를 발전시킨 주역) 석상이 세워져 있다. 프랑스는 물론 로마문명의 본산 이탈리아에도 견줄 곳이 없을 만큼 원형이 훌륭하게 보존된 극장이다. 오리엔트의 터키나 시리아에 가야 필적할 만한 로마 극장이 존재할 뿐이어서 찾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로마의 기술력과 문화시설에 대한 엄청난 투자, 나아가 그들의 문화생활에 대한 애착과 열정을 엿볼 수 있도록 해준다.
원형 극장 말고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유적이 자리한다. 1c 초 20년 경에 만든 개선문. 도시 창설을 기념해 세운 것인데 다양한 전투 장면이 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오랑쥬의 개선문은 로마 포럼에서 보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나 셉티무스 세베루스 개선문 만큼이나 보존 상태가 좋다. 공해 탓인지 외관이 검게 오염된 점은 옥의 티지만...
바닥 모자이크--꽃과 그리스 항아리 암포라, 기하학 무늬를 섞어 만들었다. 오랑쥬. ⓒ김문환
◆ 모자이크
꽃--해바라기와 로터스꽃을 그려놨다. 오랑쥬. ⓒ김문환
원형 극장 앞에는 작은 박물관이 건축돼 있다. 근처에서 출토한 몇 점의 조각과 모자이크를 전시중이다. 극장이 주는 압도적인 분위기와 달리 초라한 인상을 주지만, 극장을 방문한 참이니 한 번 둘러보면 좋다.
새모자이크. 오랑쥬. ⓒ김문환
암포라. 오랑쥬. ⓒ김문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