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키신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 35살이 된 키신,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한 곡 한 곡 황홀한 연주를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할 때, 씩 웃는 표정이 귀여웠습니다.
옆줄에 앉았던 한 언론사 음악 담당 기자가 '허, 참, 저런 아들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아직 신혼인 그 기자가, 키신보다 나이도 어리면서, 이런 말을 하는 걸 듣고 혼자 웃었습니다.
하긴, 저도 마찬가지인 게,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던, 비교적 젊은 나이의 음악가들을 만날 때마다,그 어머니를 부러워했거든요. '내 딸도 혹시나' 이런 기대도 했었던 게 사실입니다. 물론 아무나 그런 음악가가 되는 게 아니니, 일찌감치 기대는 접었지만 말입니다.
이번에도 키신을 보면서 그의 어머니가 궁금했습니다. (키신의 어머니는 아들의 해외 연주 여행에 지금도 항상 동행한다고 합니다.) 여기 보내드리는 글은 이번호 클럽 발코니에 기고한 글입니다. 제목이 '음악가의 어머니가 부럽다'이니, 어떤 얘기인지 짐작이 가시죠? '대한민국 열성 어머니들'의 끄트머리 반열에 있는, 바로 저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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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분야를 취재하다 보니, 음악가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종종 생긴다. 물론 인터뷰를 하는 것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지만, 인터뷰를 하다 보면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도 많다. 훌륭한 예술가라면 어딘가 남다른 구석이 있게 마련이니까, 나 역시 그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고 자극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신동’으로 이름을 날린, 비교적 젊은 나이의 음악가들을 만날 때면 그 부모가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니 지난 2001년 첼리스트 장한나를 인터뷰했을 때부터 시작됐던 것 같다. 하버드 대학 입학 허가를 받아놓고 있었던 장한나는, 인터뷰에서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비교하기 시작하면 본질은 사라진다‘면서, ’자기의 길을, 자기의 속도로 가겠다‘고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장한나의 이야기와 연주를 들으면서 우선은 감탄했다. 그리고 묘한 질투심 같은, 낯선 감정이 따라왔다. 이 감정의 정체는 뭘까 생각하다가 내 딸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하, 나는 지금 기자가 아니라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장한나 같은 딸을 키워낸 어머니를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구나. 당시 딸은 세 살이었다. 혼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같은 해 롱티보 콩쿠르에서 우승한 직후 귀국한 피아니스트 임동혁을 처음 만났다. 호리호리하고 가냘픈 체구의 이 소년은 피아노 건반 앞에서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열정과 감수성을 보여줬다. 형 임동민도 피아니스트라 했다. 어떻게 형제를 다 피아니스트로 키워냈을까. 부모는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국제 피아노 콩쿠르마다 배낭 메고 혼자 다닌다는 당찬 소녀(이제는 성년이 됐지만) 손열음을 봤을 때도 그랬다. 손열음은 유학 경험 없는 ‘국내파’지만, 쟁쟁한 외국 연주자들과 함께 한 무대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감과 여유가 대단했다.
그래서였을까. 지지난해 가을, 딸이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내가 은근한 기대를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부모를 부러워하게 만들었던 음악가들을 무의식중에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혹시 알아? 내 딸도 음악가가 될지. 비록 어린 시절 한 때였지만 피아노를 꽤 잘 친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던 나로서는, 딸에게 어느 정도의 소질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딸은 몇 달 안 돼 재미가 없다며 피아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연습을 하지 않으니 진도가 나갈 리 없다. 오른손 왼손 같이 치니까 헷갈린다, 도레미파솔 범위만 벗어나면 악보를 못 읽겠다, 똑같은 걸 자꾸 쳐야 하니 지겹다, 팔이 아프다, 건반이 너무 많다...... 치기 싫다는 핑계도 가지가지였다.
피아노 때문에 아이와 씨름하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주말과 휴일이면 아이를 피아노 앞에 앉혀놓고 연습을 봐 줬다. 기껏해야 ‘5번 쳐보기’ 정도의 숙제인데도 딸은 몸을 비비 꼬면서 지겨워했다. 음악가로 키우기 위해 아이를 피아노 의자에 묶어놓고 피아노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어머니 얘기를 들은 적도 있는데, 아이들은 의지력이 없으니 이렇게 ‘억지로’ 시켜야 하는 걸까.
속이 상해 어머니에게 푸념했다. 나는 어릴 때 안 그랬는데 얘는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어머니가 웃으셨다. 어린애가 다 그렇지 뭐. 넌 좀 덜했던 것 같긴 한데, 그래도 피아노 치기 싫다고 아픈 척 한 적 있잖아.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올해 초 독주회를 앞둔 손열음을 인터뷰할 때, ‘어릴 때 피아노 치기 싫었던 적이 정말 한 번도 없었느냐’고, ‘싫은데도 억지로 연습한 적은 없었느냐’고 물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나 보다. 손열음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런 적은 없었는데요? 피아노 치는 게 정말 좋았거든요. 피아노를 안 치면 제가 못 살 것 같았거든요.”
어릴 때부터 ‘정말 좋아서’ 피아노를 쳤다는 것이다. 없으면 못 살 것 같았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음악가가 되는 거겠지. 어린 시절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운 사람이 모두 음악가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나는 딸이 피아노를 못 치더라도 속상해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마음을 비우자.
독일 하노버 국립 오페라 극장의 수석 지휘자로 선임된 구자범을 최근 인터뷰했다. 그는 자신에게 음악을 한다는 것은 ‘노는 것’이었다고 했다. ‘열심히 잘 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노력을 안 했다는 게 아니라, 음악 하는 것이 그만큼 즐겁고 좋아서 미친 듯이 해왔다는 말이겠다.
이번엔 그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가 부러워졌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그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 신나게 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그러다가 나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렇게 예술가들을 만나고 공연을 취재하는 일을 대체로 좋아한다는 걸 깨닫고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딸에게도 음악을 억지로 시킬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찾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피아노는 몰라도 딸이 좋아하는 게 있다. 노래하는 것이다. 얼마 전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 성악반에 들어갔다. 새로 배운 곡을 날마다 흥얼거리며 자랑한다. 딸이 자진해서 열심히 쳤던 피아노곡이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바이엘 교재에 어린이용으로 멜로디를 쉽게 편곡한 이 곡이 실려 있었는데, 노래가 좋다며 한창 부르고 다니더니(물론 한국어 가사로), 치고 싶다며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유치원 발표회에서 뚱땅뚱땅 이 곡을 쳤다고 했다.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노래도 피아노를 더 치면 더 잘 할 수 있거든. 너 악보 보고 노래 부를 줄 알아? 노래 잘 하는 사람은 피아노도 잘 쳐.”
피아노를 그만두게 할까 하다가, 딸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미끼로 타협을 시도했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러면 조금 더 치겠다고 했다. 그래도 연습을 안 하는 건 여전하다. 아직도 바이엘을 마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만두게 해야 할까. 하지만 난 아직도 미련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나 보다. 딸이 노래하는 것을 들을 때면 또 혹시나 한다. 저 나이 치고는 꽤 잘 부른다는 생각에 주책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신동 음악가를 만나면 그 부모가 부러워지는 증상‘이 완전히 없어질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부모가 아이를 음악가로 키워낸 것 자체를 부러워하기보다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점을 부러워할 것 같다. 내 아이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든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음악을 가까이 하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살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