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5.프랑스
1)프랑스(France)
2,3,4,5,6,7,8,9)빠리(Paris) 루브르(Louvre)
10,11,12,13,13,14) 셍제르망 앙 레(Saint Germain en Laye)-오늘 이야기
15)리용(Lyon)
16,17,18,19)비엔느(Vienne)
20)오랑쥬(Orange)
21)베종라 로멘느(Vaison La Romaine)
22,23)님므(Nimes)
◆ 1. 셍제르망 앙 레(Saint Germain en Laye) 2--세시풍속, 농가 월령가
셍제르망 앙 레 박물관 모자이크의 특징은 우리 전통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와 닮았다는 점이다. 농가월령가는 조선시대 농촌의 세시 풍속(歲時風俗)과 농사일을 그때 그때 계절의 변화에 따라 표현한 노래다. 월령(月令)이란 말이 매달 할 일을 적어 놓은 행사표의 뜻인 점에서도 그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농사일에 대한 교훈을 들려주면서도 한 폭의 그림처럼 농촌생활을 정겹게 눈 앞에 그려 주는 해학적 3.4조, 4.4조의 가사(歌辭) 작품. 농가월령가는 조선시대 농촌 풍속과 농사일을 엿보는 귀중한 자료다. 제작연대는? 16c 광해군 때 만들어졌다는 설과 19c 헌종, 철종 때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지었다는 설이 있는데, 후자가 더 유력하다.
셍 제르망 앙 레 박물관 모자이크 역시 계절이 바뀌면서 생기는 로마 농촌의 분주한 일거리를 하나 하나 시각적인 예술작품으로 엮어 냈다. 2천년 전 작품이지만, 천 6백여년 뒤의 조선말기 농가월령가와 정서적 지향점은 다르지 않다. 하나는 그림이요, 다른 하나는 노래지만 둘 다 계절의 변화 속에 사람 하는 일과 사는 모습을 목가적으로 그려 낸 탁월한 서정시로 가슴에 와 닿는다. 무엇보다 신화(神話) 일변도의 다른 모자이크와 달리 평범한 인간의 생활모습을 기록한 것이어서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사람 사는 모습을 진솔하게 그렸을 때 느끼는 동질감(同質感)이다. 일하고, 먹고, 즐기는 인간 본성에 관한 얘기들은 그래서 어느 문화권을 가도 '우리 얘기', '내 얘기'로 따듯하게 들린다.
바구니 만들기--갈대를 꺽어 농사용, 혹은 가사용 바구니를 만든다. 농번기를 지나 농한기에 생필품을 만드는 일은 동서고금 농촌의 공통적인 일거리다. 셍제르망 앙 레 ⓒ김문환
한때 우리사회에서 가마니짜기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잘살기 새마을 운동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가 농한기 일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인데... 남정네들이 짚으로 만드는 가마니 짜기는 새끼 꼬기와 함께 군청이 주최하는 대회까지 열릴 정도였다. 가을날 황금 들녘에서 낫으로 베어낸 벼의 낟알을 털어 탈곡하면 볏짚이 남는다. 볏짚은 잘 다듬어 볏단으로 묶어 둔다. 용도가 많은데... 이엉을 엮어 초가집 지붕에 겨울 방한(防寒), 여름 방수(防水)용으로 올린다. 가을 김장을 끝내고 구덩이를 파 독을 묻으면 그 위를 덮을 재료가 필요한데, 역시 짚으로 엮은 이엉으로 덮는다. 선사시대 선조들이 살던 움집같은 모양으로.
볏짚은 곱고 잘게 썰어 소 여물에도 겨와 섞어 주고, 군불을 지피는데도 사용한다. 타고 남은 재는 옹기 가마에서 항아리에 바를 유약을 만드는 재료로 유용하다. 퇴비, 즉 거름을 생산하는데도 없어서는 안된다. 들판이나 마당에 세워 두면 아이들 총싸움하고 술레잡기 하는데 숨는 장소가 되고... 무엇보다 앞서 말한 대로 쌀이나 보리를 담아 보관할 가마니 짜기와 곡식등을 담아 나르는데 사용할 삼태기 짜기, 자루처럼 생긴 망태기 짜기, 새끼 꼬기에 제일 많이 사용되고... 로마시대도 농한기 농민들은 갈대를 꺽어다 바구니를 짰다. 우리들 가마니나 삼태기, 망태기와 비슷하다. 농민들이 농사용이나 가사용으로 사용하는 바구니를 만드는 장면이 모자이크로 표현돼 농한기의 이런 보조 활동이 동서고금의 공통된 주제였을 말해준다.
나무하기--산에서 나무를 벤다. 나무는 석탄이나 석유가 나오기전 아주 오랫동안 동서 공통으로 쓰인 연료였다. 땔감을 구하러 늦가을이나 겨울 산을 헤매던 어릴 적 시골생활과 닮았다. 셍제르망 앙 레 ⓒ김문환
로마시대 농민들은 바구니를 짠 뒤 산에 가서 땔감용 나무를 해왔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가마니를 짠 뒤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온다. 필자도 시골서 고등학교 까지 다니면서 겨울이면 뒷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다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지금 연탄이 서민용 연료라지만, 70년대만 해도 서민용 연료는 돈 안들이고 산에서 구해다 때는 나무였고, 연탄만해도 있는 집 차지였다. 나무를 해온다는 게 수월한 일이 아니다. 마을에서 가까운 산은 주인이 있게 마련이고 함부로 나무를 하면 주인에게 걸리면 호된 일을 당해야 했다. 그래서 주로 밤에 간다. 달빛 받아 가며 수레를 끌고 공동묘지 너머 뒷산에서 누렇게 말라 떨어진 솔잎을 갈퀴로 긁어 커다란 자루에 담아오던 기억이 새롭다. 아들이 한밤중에 솔잎을 긁어 오면 연로가 생겨 기뻐하시던 어머님 얼굴.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