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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아마투스--키프러스

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nsp; 3.키프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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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3.키프러스

1)키프러스

2)니코지아(Nicosia)

3,4,5,6,7,8,9,10,11,12, 13, 14,15,16)파포스(Paphos)

17)쿠리온(Kurion)

18)쿠클리아(Kouklia)

19)아마투스(Amathus)--오늘 이야기

◆ 1. 아마투스(Amat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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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비행기로 키프러스를 찾을 때 맨 처음 도착하는 도시는 섬 동부의 라르나카(Larnaca). 국제 비행장이 여러 도시에 있지만 주로 이곳으로 내린다. 라르나카에서 중부내륙의 수도인 니코지아, 최대의 관광도시인 중부 해안 리마솔, 서부의 그리스 로마 유적지 파포스로 간다. 라르나카에서 해안을 따라 서부로 달리다 보면 리마솔에 도착하기 전 10km 지점의 오른쪽 언덕 아래로 회색 빛 도시유적이 나타난다. 아마투스(Amathus)다. 다른 유적지의 분위기가 주로 밝은 흰색인데 비해 이곳은 좀 어둡다. 짙은 회색의 대리석 기둥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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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본 아마투스 시가지와 바다. 그리스 도시들은 항구를 낀 바닷가에 시가지를 조성하고 옆 산위에 신전을 비롯한 아크로폴리스를 만들었다. 아마투스 ⓒ김문환

아마투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기원을 찾을 만큼 오래된 지역이다. 아마투스와 관계되는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은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일반적으로 테세우스가 크레타에서 미노타우로스를 해치운 뒤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탈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아테네로 돌아가던 테세우스가 낙소스 섬에 잠시 쉬면서 아리아드네를 내려놓은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아마투스 사람들의 전설은 조금 다르다.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탈출한 뒤 그녀와 정을 통해 임신시킨 것은 물론 아테네로 항해도중 낙소스가 아니라 이곳 키프러스 섬 아마투스에 버리고 떠났다는 것이다.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를 돌본 것도 아마투스 주민들이라고 믿는다. 신화라는 게 이 곳 저 곳으로 옮겨지며 이런 저런 내용이 더해지거나 빠지면서 윤색(潤色), 요즘말로 버전이 바뀌게 마련이니 뭐라 말할 사안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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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 전경과 산위 아크로 폴리스. 시가지 뒤편 산 위에 아크로폴리스가 조성돼 있다. 시가지에는 지금도 상하수도 시설이나 저수장 시설이 잘 남아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의 위생문화를 잘 보여 준다. 아마투스 ⓒ김문환

아마투스 주민들이 믿고 있는 전설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고고학적 발굴을 토대로 아마투스의 기원을 살피면 B.C 7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당시 신석기 유물이 발견된다. 이후 B.C 2천 5백년 청동기 유물을 거쳐 B.C 11c 부터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도시를 일궈 거주한 유적이 나온다. 이때는 그리스 본토나 오리엔트의 페니키아에서 건너온 상인들이 문물을 교류하며 상업중심지로 번영시켰다. 이집트와 앗시리아에서도 찾아와 문물을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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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그리스 문명권에 있던 가운데 B.C 540년 페르시아가 아마투스를 지배하게 된다. B.C 330년 알렉산더의 원정 이후 헬레니즘 시기에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영토가 됐고, 로마를 거쳐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이슬람 아랍 세력의 영향권에 들었고, 16c 이슬람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로 넘어갔다. 키프러스에는 이런 복잡한 역사전개 과정에서 형성된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고스란히 남아 탐방객에게 다양한 면모의 역사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 2. 아마투스(Amathus)의 유물과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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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 모자이크. 뒤로 바다가 보인다. 바다를 굽어보는 아름다운 경치다. 모자이크 뒤 왼쪽 편에 항아리가 보인다. 아마투스 ⓒ김문환

아마투스의 고고학적 발굴은 1862년 시작됐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해안가 산 아래의 시가지 유적과 산 위 아크로폴리스다. 그리스 도시들은 일반적으로 산 꼭대기에 신전을 중심으로 아크로폴리스를 형성하고 그 밑으로 시가지를 만들었다. 그리스 문명권의 상징적인 도시 아테네를 방문해도 이런 도시구조를 잘 확인할 수 있다. 아마투스의 산 아래 시가지에는 지금도 상하수도와 저수조 시설이 불과 얼마 전까지 쓰던 시설처럼 남아있다. 비록 부분적으로 파괴돼 있지만, 그리스 로마시대 위생문화의 단면을 생생히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산 위로 난 좁은 오솔길을 따라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면 오푸스 섹타일 모자이크가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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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푸스 섹타일 모자이크. 금빛의 오푸스 섹타일이 아름답게 빛난다. 아마투스 ⓒ김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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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 모자이크. 시가지에 남아있는 자갈 모자이크. 흙 속에 거의 묻혀있다시피 보존상태가 좋지 않다. 아마투스 ⓒ김문환

유물로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투스 최고의 유물로 평가받는 2가지가 관심을 모은다. 대형 항아리와 베스(Bes)조각.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면 화려한 오푸스 섹타일 모자이크 옆으로 큰 항아리가 놓여 있다. 마치 우리네 절간에서 밥짓는데 쓰는 대형 솥단지. 그러니까, 수백명 먹일 수 있는 초대형 무쇠 솥을 연상시킨다. 무엇인가 담아 두는 저장용기였을 텐데... 그런데, 이 항아리는 진품이 아니다. 가짜다. 유적지에 있는 유물이 진품이 아니라 모조품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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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높이 1.85m에 직경 2.2m다. 우리네 절에서 수백명 밥을 해먹였다는 큰 솥같은데. 지중해 주변 문명권에서 찾아낸 그릇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현장에 있는 솥은 가짜다. 진품은 빠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중이다. 아마투스 ⓒ김문환

진품은 박물관으로 실려 갔다. 문제는 박물관이 키프러스가 아니라 프랑스 빠리의 루브르라는 점. 발굴 초기 그러니까, 발굴이 시작된 지 3년 만인 1865년 루브르로 실려갔다.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제2 제정을 열어 황제로 군림하며 독재를 휘두를 때다. 아무튼 고고학적 발굴의 시기이던 19c 키프러스에서 발굴된 항아리는 루브르 박물관으로 갔고, 우리네 소중한 문화재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루브르에 소장중인 진품을 관람객과 비교해 보면 규모가 얼마나 큰 항아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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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항아리. 루브르에 전시중인 이 항아리가 1865년 발굴당시 옮겨진 진품이다. 옆에있는 관람객과 비교해 보면 항아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빠리 ⓒ김문환

아마투스가 자랑하는 또하나의 유물은 베스(Bes) 조각. 베스는 기원을 이집트에 두는 수호신이다. 아마투스에 이집트 문명도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액을 막아 주는 역할의 베스는 이집트에서 시작돼 오리엔트와 키프러스까지 이집트의 문화 전파 경로를 따라 퍼져 나갔다. 베스의 생김새를 보자.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 그러니까 땅딸막하다. 큰 머리에 작은 뿔이 두 개 달리고, 눈은 하루방처럼 툭 튀어나왔다. 수염은 긴 곱슬인데, 메소포타미아나 페르시아 문명권의 인물 묘사에서 보는 그런 수염이다. 눈썹은 짙고, 몸은 털복숭이다. 코는 낮고 넓다. 귀는 당나귀 처럼 크다. 한마디로 기이하게 생겼지만, 도깨비처럼 인간에 짓궂은 장난을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걱정을 덜어 주고 나약한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착하고 선한 신으로 자리매김 됐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티로스의 원형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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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Bes) 조각. 베스는 이집트에 기원을 두는 수호신이다. 흉칙스런 모습이지만 액과 화를 막아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아마투스에서 발굴됐지만, 지금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입구에 전시중이다. 이스탄불 ⓒ김문환

아마투스에서 발굴된 베스 조각상은 아마투스에 없다. 대형 항아리처럼 아예 키프러스 국내에 남아있지 않다. 현장에 모조품도 세워놓지 않은 베스 조각상은 어디에 가 있을까? 항아리처럼 제국주의 식민지배의 희생양이라고 할까? 16c 오스만 투르크가 키프러스를 장악한 이래 키프러스는 1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영국이 식민지로 삼을 때까지 오스만 투르크(터키)의 지배아래 있었다. 아마투스 발굴시 유물이 나오자 오스만 투르크 당국이 수도인 이스탄불로 실어 냈다. 지금 역사의 고도 이스탄불을 찾으면 고고학 박물관 입구에서 이 베스 조각상을 만난다. 아마투스에서 나온 다른 유물도 대부분 뉴욕과 영국의 박물관으로 흩어졌다. 오랫동안 이민족의 지배아래 신음하며 문화재를 빼앗긴 결과다. 우리민족의 문화재 수난사와 맥을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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