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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키프러스

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nsp; 3.키프러스 &nsp; 1)키프러스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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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3.키프러스

1)키프러스--오늘 이야기

2)니코지아(Nicosia)

3,...11)파포스(Paphos)

12)쿠리온(Curion)

13)아마투스(Amathus)

14)쿠클리아(Kouklia)

1)키프러스 (Cyp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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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키프러스 스케치


키프러스? 선뜻 머리 속에 그려져야 하는데... 어디 있는 나라인지, 우리와 어떤 관계인지... 감이 멀다. 유럽인지 아니면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중해 중간의 섬나라]가 정답이지만, 우리와는 지리적으로도 멀고, 교류도 별로 없어 가물가물한 게 당연하다. 세계 돌아가는 정세에 밝은 분들은 터키계와 그리스계 주민이 남북으로 갈려 갈등을 일으키는 나라. 문화사에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그리스보다 더 철저하게 그리스 정교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 스포츠에 아주 관심이 많은 분들은 한국 프로 스포츠팀의 겨울 전지훈련 장소...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키프러스가 동방의 한국민들에게 아득하다고 해서 역사가 짧거나 후진적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고대 아나톨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에서 발전한 문명이 전파돼 일찍부터 문명의 꽃을 활짝 피웠던 곳이다. B.C 6천년부터 시작되는 유적과 유물이 키프러스섬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메운다. 특히 에게해의 미노아, 미케네 문명 이후 고전기 그리스와 헬레니즘 문명을 수놓았던 유적과 유물이 많다. 헬레니즘 말기인 B.C 58년 로마문명권에 편입된 키프러스는 2-3c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이어 비잔틴 제국을 거쳐 648년에서 963년까지 3백15년간을 이슬람 아랍의 지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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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러스의 파포스 유적지. 고대 로마 시대 유적 뒤로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다. ⓒ김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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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c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키프러스를 되찾은 황제는 비잔틴 제국의 니케포루스 포카스. 키프러스에는 지금도 이때 만든 비잔틴 교회들이 문화유산으로 다수 남아 그리스 정교의 전통을 전한다. 그러나, 12c-15c 십자군이 들어오면서 그리스 정교의 비잔틴 제국과 카톨릭의 십자군이 다툼을 벌이는 결전장이 되고 말았다. 마침내 십자군이 종말을 고하면서 1489년 키프러스는 베네치아의 통치로 들어갔다. 그러나, 1571년 다시 이슬람의 지배로 넘어간다. 아나톨리아(오늘날 터키Turkey)에서 팽창해온 오스만 투르크(Turk)의 영향력 아래 놓인 것이다. 이때 키프러스 섬 북부는 터키에서 이주해 온 투르크인의 거주지가 된다.

1821년 그리스 본토에서는 오스만 투르크를 향해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마침내 이슬람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키프러스는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다. 오히려 오스만 투르크를 대신해 식민제국 영국이 1878년 키프러스를 집어삼켰다. 키프러스가 독립국이 된 것은 100여 년이 지난 1960년이다. 그리스어와 함께 지금도 영어도 일부 사용하고 차가 좌측통행을 하는등 영국식 제도가 남아있는 이유다. 키프러스를 탐방하면서 보니까 우리네 금수강산 알짜배기 땅 곳곳을 미군 기지가 차지했듯이 영국군 기지가 곳곳을 틀어쥐고 앉았다.

영국이란 강대국이 물러가자 오스만 투르크의 후예 터키가 1974년 침공해 키프러스 섬 북부를 차지한 뒤 터키의 영향을 받는 북키프러스 공화국을 세웠다. 이후 키프러스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키프러스 공화국(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키프러스)과 터키어도 함께 쓰는 북키프러스 공화국으로 분리됐다. 과거 수도 베를린을 동서독이 나눴듯이 키프러스도 수도 니코지아를 남북의 키프러스가 공유한다. 왕래는 엄격히 통제된다. 분단 경계선의 살벌한 분위기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이방인에게 남다른 감회를 안겨준다. 다행히 선사유적을 비롯해 미노아 문명을 거치면서 그리스 로마시대 형성된 주요 유적지들은 섬의 남부에 주로 분포한다. 따라서, 역사탐방은 아쉽지만 남부의 키프러스만 훑는 것으로도 부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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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디테가 생명력을 얻었다는 장소. 페트라 토우 로미오우. 뒤로 멀리 보이는 바다속 바위 사이에서 아프로디테가 생명력을 얻었다고 믿는다. ⓒ김문환

키프러스의 자연은 한마디로 살기 좋아 보였다. 한겨울의 중심인 1월 말에 키프러스를 찾았는데, 해안지방의 낮 기온은 섭씨 18-21도였다. 호텔의 야외 풀장에서 그럭저럭 수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네 10월말로 보면 된다. 날이 맑으면 따사로운 햇살이 축복처럼 내리쬔다. 물론 내륙 산악지대로 들어가면 눈이 수북하게 쌓인다. 산 위에서 눈보라 추위 속에 덜덜 떨며 그리스 정교 교회를 보다 해안가로 내려와 20도 안팎의 포근한 기온 속에 그리스 로마유적을 찾는 그런 지형과 기후다. 해안에서 고산지대로 올라가는 중간의 평야에는 오렌지 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탐스럽게 익은 오렌지가 들판을 뒤덮는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방품림과 오렌지 나무가 자아내는 녹색의 싱그러움에 주황색 오렌지 열매가 빚어내는 색조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4월 말에도 방문해 봤는데, 비취 빛 바다가 유적과 어울어져 더할 나위 없는 선경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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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러스인들은 아프로디테(비너스)의 고향이 키프러스라고 믿는다. 호메로스는 아프로디테가 제우스와 바다 요정 디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봤다. 그러나, 헤시오도스는 다르다. 우라노스가 그의 아들 크로노스와 싸우다 남근을 잘렸는데, 이 남근이 바다를 떠도는 사이 주변에 하얀 거품(아프로스)이 뭉쳤다. 그 속에서 아름다운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 아프로디테는 서쪽 바람의 신 제피로스에게 떠밀려 키테라(Cythera)섬을 거쳐 키프로스 섬까지 흘러왔다. 계절의 여신 호라이는 알몸의 아프로디테를 발견해 옷을 입힌 뒤 신들의 거처 올림포스로 안내했다.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키프러스인들은 자기나라를 아프로디테의 섬(Island of Aphrodite)이라고 부를 만큼 아프로디테에 대한 경배심이 깊다. 물론 로마 말기 이후 기독교로 개종해 그리스정교의 독실한 신자들이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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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 토우 로미오우. 그리처럼 아름답다. 흰 백사장에 에머럴드 빛 바다. 그 사이로 아담한 바위가 모여 있는 데 이곳에서 아프로디테가 호라이에게 옷을 얻어 입고 천상의 공간 올림포스로올라갔다. ⓒ김문환

호라이에게 발견된 아프로디테가 옷을 입고 신의 생명력을 얻었다는 장소는 어디일까? 키프러스 남부의 바닷가 페트라 토우 로미오우(Petra Tou Romiou)라고 키프러스인들은 믿는다. 국제선 비행기가 주로 착륙하는 동부의 리마솔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서부의 파포스로 가는 도중 나타난다. 에메랄드 빛 바다 한가운데 크고 작은 바위가 점점이 뿌려진 듯 박힌 곳. 아무렇게나 던져진 듯하면서도 질서있게 자리잡은 듯 묘한 배치가 예사롭지 않은 장소. 쪽빛 바다와 흰 바위의 심상치 않게 조우(遭遇)하는 그 바다 속으로 많은 관광객들의 눈길이 모아진다.

백사장 흰 모래는 아프로디테의 피부, 대양의 에메랄드 빛 바닷물은 아프로디테의 눈, 알맞게 솟은 바위는 아프로디테의 코... 시원스레 부는 바닷가 미풍은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아프로디테에게 입혀 준 옷처럼 아프로디테의 흔적을 더듬는 탐방객들의 몸과 부픈 마음을 부드럽게 휘감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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