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법 도청 테이프 보도 과정에서도 불거졌지만, 언론이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우는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기자가 취재중 교통 신호를 위반해도, ‘당신 이거 뉴스 시간에 못 대면 책임질래, 국민의 알권리를 당신이 막을 수 있어?’라며 오히려 경찰을 꾸짖고(?), 특정인이나 기관이 취재 거부를 해도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며 취재를 강행하는등 전세계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가장 많이 외치는 말중에 하나가 아마도 ‘국민의 알권리’일것입니다.
그렇다면 ‘국민의 알권리(People's Right To Know)'는 헌법이나 법으로 보장된 것인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국민의 알권리라는 단어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 누구에 의해서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기자들이 자신들의 취재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낸 개념이라는게 미국의 통설입니다.
‘국민의 알권리’라는 것은 국민들이 현명한 투표자가 되고 교양 있는 삶을 살기위해서 정부의 정책이나 정책 결정 과정, 또는 어떤 사건, 사고, 현상에 대해서 구체적인 정보를 얻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중간자’가 바로 기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자들은 이러한 국민의 신성한 권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웬만한 불법행동을 해도 된다(?)는, 어떻게 보면 목적과 결과가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식의 논리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국민의 알권리’라는 개념이 널리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초로, 당시 기자들은 대부분의 자료를 비밀이라면서 공개하지 않는 관료들 때문에 취재에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기자들과 국회 의원들을 중심으로 ’The Freedom of Information Movement'라는 운동이 번져나갔고, Harold Cross의 ‘The people's Right To Know-legal access to public records and proceedings(1953)'라는 책을 통해 구체화됐습니다.
결국 이 운동은 이른바 'Sunshine Laws'라는 법률을 통해, 정부의 정책이나 모임. 자료 대부분을 국민들에게 공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도 요즘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국민들이 원하기만 하면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부의 모든 회의나 경찰 업무까지 구경하고 지켜볼 수 있습니다. 비공개로 하거나 국민의 요구를 거절할 때는 상당한 이류를 제시해야 합니다. 물론 다들 바쁘게 살아가니까 매일 이런것만을 지켜볼 수는 없는 일이어서, 개인이 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주로 시민단체 구성원들이 이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엄청난 권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미국 법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알 권리의 법 이론적 근거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 헌법 1조입니다.
수정 헌법 1조는 ‘국회는 국민이 자유롭게 말하고 출판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을 수 있는 법률을 만들 수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Congress shall make no law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for press).
이 조항에 근거해서 말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들을 자유와 권리(right to listen)도 있는 것이고, 듣는다는 것은 곧 알 수 있다는 것, 또는 안다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알 권리(right to know)도 있다는 것입니다.
논리적 추론은 그럴듯 해보이지만, 국민의 알권리는 개념적으로,태생적으로 집단적인(institutional) 권리인데, 미국 수정 헌법 1조는 개인적인(individual) 권리, 개인적인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 이 논리의 결정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언론학자들은 국민이라는 개념 자체는 집단적 개념이지만, 결국은 개개인이 알아야 하는 개인적인 권리로 귀착된다고 반박합니다만, 절대 다수의 미국 헌법 학자들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며, 국민의 알권리를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이 종교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같이 수정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절대 불가침의 양도 할 수 없는 권리(inalienable)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대신 대부분의 미국 헌법 학자들은 미국 헌법을 기초한 Alexander Hamilton과 James Madison, John Jay가, 뉴욕주가 미국 헌법을 승인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쓴 ‘The Federalist Papers’라는 책에 나타난 전체적인 이념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Potter Stewart 라는 대법관은 수정 헌법 1조가 개인 뿐 아니라, 언론사라는 집단(institution)을 보호하는 조항으로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미국 법조계는 기자들이 국민들의 알 권리라고 외치며 하는 행동과 주장에 대해서 case by case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즉 ‘국민의 알 권리’라는 것이 상식적으로 볼 때 존재하는것이지, 반드시 보장돼야 하는 미국 헌법상의 개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자들 참 머리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