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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로도스--그리스

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nsp; 1.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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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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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1. 그리스

1)코린토스(Korinthos)

2)스파르타(Sparata)

3,4)코스(Kos) 1,2

5,6)델로스(Delos) 1,2

7)로도스(Rhodes)--오늘 이야기

7)로도스(Rhodes)

◆1. 헬리오스의 섬 로도스

코스(Kos) 처럼 터키땅에 가까운 로도스(Rhodes). 에게해에 떠있는 다른 섬처럼 로도스도 무척 아름답고 기원이 그리스 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우스가 거신족에 이어 거인족을 물리치고 세상을 평정한 뒤 신들에게 논공행상으로 영토를 나눠 줄 무렵이다. 이때 태양신 헬리오스는 올림포스산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던 탓에 영토 수여식에 그만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졸지에 지각생이 돼 땅을 받지 못한 헬리오스. 제우스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고민하던 제우스는 헬리오스에게 에게해 동쪽 깊은 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섬을 끌어올려 줄테니 의향이 어떠냐고 물었다. 비록 멀긴 하지만 큼직한 만큼 헬리오스는 만족을 표시했다.

새땅을 차지한 헬리오스는 본연의 일로 돌아가 매일 하늘의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날아가며 지구를 밝히는 일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그만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딸에 한눈에 빠졌다. 구애 끝에 아내로 삼는데 성공한 헬리오스는 자신이 차지한 섬에 사랑스런 아내의 이름을 붙였다. 로도스(Rhodes). 애처가 헬리오스 덕에 생겨난 이름이 로도스다. 둘은 금슬(琴瑟)이 좋아 아들 일곱에 딸 하나를 뒀다. 이 가운데 케르카포스란 이름을 가진 아들이 3명의 아들을 낳았다. 이름은? 카메이로스, 이알리소스, 린도스. 이들은 로도스섬의 북쪽과 동쪽, 남쪽에 각각 도시를 만들어 섬을 발전시켰다. 이 도시들은 헬레니즘 시대 로도스의 3대 중심도시로 번영을 누렸다. 오늘날까지도 탐방객이 찾는 3대 유적지다. 그중 린도스에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린도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보는 바다풍경은 비경에 절경으로 탄성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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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도스 아크로폴리스--린도스는 로도스의 3대 고대도시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지금도 고대의 유적이 다수 남아 화려했던 옛 명성을 되새겨 준다. ⓒ김문환

신화를 떠나 역사적인 증거로 로도스의 발전과정을 들여다 보자. 로도스는 처음 에게해 지방의 주인공 미노아인이 터를 잡았다. 이어 본토에서 도리아인이 들어왔다. 다른 그리스 도시처럼 한창때 해외 식민지 개척에 열심이어서 B.C 천년에서 B.C 5백년 사이 가까운 아나톨리아와 멀리 시칠리아, 프랑스 남부, 스페인 연안까지 진출해 무역도시를 세웠다. 그러나, 로마시대 특히 제정(帝政)시대 이후 쇠퇴했다. 물론, 로마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의 아내 리비아가 전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티베리우스가 황제에 오르기 전 잠시 정계에서 은퇴해 7년간 살 정도로 세를 크게 잃지는 않았다.

일찌기 기독교가 전파된 로도스는 비잔틴과 이슬람의 지배를 거쳐 비잔틴에서 떨어져 나간 해상강국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도 받았다. 곡절 끝에 1309년 세인트 존 기사단에 넘어가 1522년까지 지배했다. 로도스 원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물리치고 등장한 기사단은 로도스 항구를 대대적으로 손질하고 거대한 해양요새를 구축해 2백년이상 통치할 수 있었다. 이때 만든 성은 지중해 전체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의 중세 해양요새로 손꼽힌다. 이에 필적할 육지의 요새로는 프랑스의 까르까손느를 들 수 있겠다. 로도스의 해양요새는 장엄하고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연중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물론 이 거대한 성벽도 1522년 질풍노도처럼 밀고 들어온 오스만 투르크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세인트 존 기사단은 눈물을 머금고 로도스를 오스만 투르크에 넘긴채 말타(Malta)로 발길을 돌렸다.

◆2. 로도스의 유적과 모자이크

로도스에 있었던 가장 인상적인 건축물은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이름을 날린 헬리오스 거상(巨像). 섬의 수호신이요, 섬에 이름을 붙여 준 헬리오스를 기념한 동상이다. 제작 과정을 들여다 보자. 로도스는 B.C 305년 알렉산더 사후 헬레니즘 제국의 하나로 강력한 위세를 떨치던 시리아왕 데미트리오스의 침략을 받았다. 로도스는 전 주민이 합심해 침략자 데미트리오스에 승리를 거뒀다. 이때 시리아 군대가 많은 군장비를 놓고 허겁지겁 철군했다. 로도스 시민들은 이를 녹였다. 적을 이기게 해준 수호신 헬리오스에 헌상할 동상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아주 적절하고 신심 가득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독특한 설계는 이런 의도를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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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오스 거장이 있던 자리. 안쪽이 배가 정박하는 항구다. 항구로 들어오는 양쪽 입구에 2개의 동상이 보인다. 사슴상이다. 그 자리에 헬리오스 거상이 두 다리를 한쪽 씩 걸치고 서 있었다. 로도스의 수호신으로 항구를 지켰던 것이다. ⓒ김문환

헬리오스가 로도스 항구로 들어오는 바다 길목을 막고 선 자세를 고안해 냈다. 누구든지 로도스를 넘보는 자는 헬리오스가 버티고 서 막아 내겠다는 의도를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다. 로도스로 들어오려는 외국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로도스를 침탈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해야 했는데, 상징적인 조치가 바로 헬리오스의 가랭이 사이로 들어오는 것. 그래서, 헬리오스가 양다리를 벌리고 항구 길목을 버티고 서 있는 자세로 동상을 만들었다. 세상 모두가 '내 발 아래'라는 로도스인들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은 이 동상을 볼 수 없다. 만든 지 백년도 안돼 B.C 226년 지진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니, 요즘 로도스를 여행하며 '혹시나' 하고 헬리오스 사타구니 쪽을 치켜다 볼 생각은 접는 게 좋다. 그 자리엔 아주 한참 후대에 만들어진 사슴 청동상이 왜소(矮小)함을 우아(優雅)함으로 바꾸려 애쓰며 서 있기 때문이다.

로도스섬 두 군데서 모자이크를 접할 수 있다. 고고학 박물관(Archaeological Museum)과 기사단장 박물관(Castello). 고고학 박물관에는 수많은 도자기류와 아름다운 조각이 가득하고, 건물 바닥에 기하학 무늬의 로마시대 모자이크가 전시돼 있다. 기사단장 박물관은? 카스텔로는 중세 로도스 섬을 장악한 세인트 존 기사단장이 머물던 궁전겸 요새다. 이 궁전을 박물관으로 바꿔 각종 유물을 들여놨다. 헬레니즘기의 세련된 기풍을 그대로 간직한 엠블라마 기법의 섬세한 테세라 모자이크가 눈에 들어온다. 해마를 타고 있는 바다요정과 희극배우의 탈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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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모자이크--고고학 박물관 바닥에 설치해둔 바닥모자이크다. 기하학적 무늬속에 각종 동식물을 표현했다. ⓒ김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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