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이 당원게시판에 올린 글.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연정문제를 제기했을 때, 7월 20일 홈페이지를 통해 연정이 필요하다면 개혁을 위한 연정이어야 하며 민주노동당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정보위원회 해외시찰동안(7.22~8.1)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제안했다는 얘기를 듣고 매우 답답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제안을 한나라당이 거부함으로써 6월 말부터 시작된 노 대통령의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연정구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노 대통령은 권력을 받기 싫으면 선거제도 개편이라도 받아달라고 했지만 한나라당은 선거법 개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임으로써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통한 대통령의 지역주의 극복시도는 무색하게 됐다.
지역주의가 한국정치가 넘어야 할 최대의 과제라는데 대해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책과 노선은 없고 지역대결만 판치는 비이성적인 구도를 깨뜨리지 않고 더 이상의 정치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반드시 지역주의를 없애야겠다는 노 대통령의 충정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한나라당과의 연정은 대선·총선민의 위반
그러나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통해 선거제도를 고치겠다는 노 대통령의 제안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선과 총선민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02년 대선과 ’04년 총선에서 국민들은 노무현대통령을 당선시켰고, 열린우리당을 과반수 여당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는 독립운동세력, 통일지향세력, 민주인권세력이 처음으로 정부와 국회를 주도하게 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따라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국민을 믿고 이 시대가 해결해야 할 개혁과제들을 충실히 이행할 의무가 있다.
지금 지역주의와 여소야대로 인해 원활한 국정운영을 할 수 없다는 노 대통령의 인식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에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구상에는 반감마저 느끼게 한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정권을 가지고 있고 과반은 아니지만 국회의석도 충분한데 왜 뿌리와 노선이 다른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강행할 경우 개혁도 불가능해지고 지지자도 잃는 대단히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지금 국민의 뜻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가진 힘으로 먼저 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해보라는 것이다. 그러고도 되지 않을 경우 개혁을 같이 할 수 있는 정당과 연합을 모색한다면 국민들도 환영할 것이다.
연정때문에 개혁이 후퇴해서는 안된다
둘째, 열린우리당의 개혁이 후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를 바꾸고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목적이 무엇인가? 지역감정이 아니라 정책과 노선으로 토론하고 경쟁하는 정상적인 정치질서를 만들자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정책경쟁을 통해 개혁을 원활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게 되면 권력배분 뿐만 아니라 양당의 정책도 조율해야 한다. 이럴 경우 열린우리당의 개혁정책은 후퇴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친일세력, 분단지향세력, 반민주독재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정책 또한 냉전적이고 수구적인 관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당과 열린우리당은 정책조율이 불가능하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책차이가 크지 않다고 하지만 언론관계법이나 과거사법 협상과정에서 증명됐듯이 개혁정책에 대한 의견차는 결코 가볍지 않다. 국가보안법이나 사립학교법은 아직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다른 개혁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책차이는 넘을 수 없는 산이다.
선거제도 개편은 형식적인 지역구도 극복이다
셋째, 지역주의 극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주의 극복이란 특정정당이 전국적으로 자신이 대변하는 계층의 지지를 정확히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지역주의의 이면에는 계층간의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서민들의 어려운 삶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을 일부 정치인들이 지역문제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주의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려면 지지층에 대한 정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특히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하는 열린우리당이 전국정당이 되려면 이들을 위한 개혁정책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소외지역이나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적 고려없이 선거구제만 고쳐 여야 동반당선을 노리는 것은 지역주의를 형식적으로 봉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사회·경제개혁만이 근본적인 지역주의 극복책이다
넷째, 진정한 사회·경제개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 된 명분이 정치개혁과 지역구도 극복이라고 하지만, 나는 국민의 뜻이 단순히 정치개혁이나 지역구도 타파에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나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선택한 국민들의 뜻은 보통사람도 잘 살 수 있도록 사회전반을 개혁하라는 것이었다고 본다. 정치개혁이나 지역구도 해소도 중요하지만 빈부격차, 부동산문제, 중소기업문제, 비정규직문제, 사회보장문제 등 사회·경제개혁을 통해 서민들도 걱정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개혁이 서민을 위한 사회·경제개혁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서민들은 갈증을 느끼고 있다. 때문에 사회·경제개혁을 뒤로 미룬 채 지역구도 해소를 위해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겠다고 하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의 속뜻을 읽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뤄낸 정치개혁의 성과를 바탕으로 경제개혁, 사회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부정과 부패, 반칙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 빈부격차가 적고 서민들도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길이고 한국정치와 사회를 한 단계 올리는 방법이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먼저 개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여소야대나 지역주의 때문에 되지 않는다면 개혁을 함께 할 수 있는 상대, 지역주의 극복에 진정성을 가진 상대와 연합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열린우리당의 연정 상대는 민주노동당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민주노동당은 선거제도 개편에도 적극적이다.
당내 의견수렴절차 정상화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이번 연정제안 절차의 비민주성을 지적하는 것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한나라당과의 연정문제는 당의 중대한 진로와 관계된 문제이므로 당 내부의 의견수렴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당내의 정상적인 의견수렴절차도 없이 노 대통령의 연정제안을 지지하고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이는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은 제왕적 총재의 여당 지배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스스로 당정분리 원칙을 세웠고 아무런 직책도 없는 평당원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노 대통령의 서신정치는 스스로 공언한 당정분리원칙을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노 대통령이 평당원이면서도 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임을 보여주었다.
원칙을 세웠으면 지켜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20만이 넘는 진성당원과 각종 당내 의결기구가 있는 민주정당이다. 따라서 연정과 같은 중대한 당의 진로는 12인 중진모임이 아니라 당의 공식적인 의견수렴기구를 통해 논의하고 입장을 정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당원과 의원들 중에도 반대의견이 적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런 절차적 비민주성 때문도 있다는 점을 당 지도부는 알아야 한다. 비정상적인 지역구도를 극복하려면 당내 의견수렴 절차부터 정상적으로 지켜야 한다. 당 지도부는 지금이라도 당내 의견수렴에 더 많은 신경을 써 주기 바란다.
2005. 8. 3 임 종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