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이라는 것은 안 믿습니다. 성공하는 것은 노력의 결과입니다.우리는 열심히 일을 했고 그전에 머리를 많이 써서 좋은 지혜를 많이 냈지 신화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얘기 아닐까요?]
신화는 소극적인 얘기가 아니냐며 웃음으로 반문하던 이 사람 정세영.
그에게 있어 자동차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현대건설에서 일했던1967년 그는 시멘트공장 기계를 사기 위해 미국에 출장 갔다가 본사로 부터 포드자동차와 접촉하라는 연락을 받고 이를 성사시키면서 자동차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당시 우리 현대가 조그마했지만 세계의 큰 기업들은 어느나라를 막론하고 자동차 산업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가 세계에서 유수한 그룹이 되겠다는 그런 포부를 가지고...]
그 해에 현대자동차 초대 사장에 취임한 정회장은 32년간 자동차 외길인생을 걸으며 수 많은 자동차 역사를 기록합니다.
회사 설립 1년만인 1968년 현대는 1호차인 코티나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일찌감치 조립차의 한계를 인식한 정회장은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고유모델을 만들어야지 우리가 우리마음대로 수출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벽을 뚫지 않으면 우리회사는 생존할 수 없다. 살기 위해서 죽으나 사나 해야되고..]
고유모델 개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내부 반발이었습니다.
[우리회사의 담당 중역들이 우리가 조립하는 도면도 옮길 수 있는 실력도 없는데 어떻게 고유모델을 설계하느냐. 회사의 대부분 중역들이 반대했습니다.]
숱한 반대 속에 지난 1974년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한국산 조랑말 '포니'는 한국차로는 처음으로 국제 자동차 박람회에 참가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게됩니다.
[이태리 토리노에서 55회 국제 박람회가 있었어요. 처음 우리 모델을 만들어서 포니하고 포니2 두개를 출시했습니다.우리 스탠드에 사람이 제일 많이 모여들었어요. 모여든 이유는 어떻게 한국이 감히 차를 만들 수 있느냐.]
그리고 2년 뒤인 76년에는 에콰도르에 국산차 첫수출이라는 기록을 세웁니다.
한국산 고유모델 행진은 1986년 '엑셀'로 이어졌고 미국에 수출한 첫해 20여만대가 팔려 미국 10대 상품에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미국에 규제를 통과했다고 통보가 왔을때 우리 전부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선적을 하고 팔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국제 박람회에 나갔을 때 한국의 할머니가 와서 차를 만지면서 울었어요. 그때의 그 감격이 안 잊혀집니다.]
1991년에는 국내 최초로 독자엔진과 트랜스미션을 개발해 외국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현대차의 기술독립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현대차가 38년이라는 짧은기간에 세계 8대 메이커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나라를 갔느냐고 묻기보다는 어느나라를 안갔느냐고 묻는 것이 옳을 정도로 제가 많은 여행을 했습니다. 다니면서 팔았죠. 오늘날 성공한 것은 노력의 결과입니다.]
평생을 자동차에 묻혀 살아 온 정세영회장.
그가 지난 1999년 자동차와 결별하게 된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정주영 명예회장님이 설립한 현대 자동차를 장자인 정몽구 회장이 이어받는 것이 동양의 모든 관습이나 순리에 맞는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어쩔수 없이 자리를 넘겨주긴 했지만 그는 자동차에 대한 미련을 끝내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직 현대 자동차가 세계에서 5손가락 안에 든다 여기까지 못된 데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조지 부시/전 미국 대통령 : 한국과 미국에 신의 복이 내리기를...]
정세영회장이 운명을 달리 한 지난 21일.
공교롭게도 미국 앨라배마에서는 한국 자동차 역사에 새 장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자동차의 본고장이자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한국산 자동차가 1호가 생산된 것입니다.
준공식을 갖고 본격 가동이 시작된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은 여의도 면적의 두배크기로 연간 3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게 됩니다.
이는 38년 전 자동차 시장에 죽을 각오로 뛰어든 용기와 노력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GM하고 어떻게 우리가 경쟁해서 생존하느냐 이것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안하면 죽어야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