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뉴스>
<앵커>
이렇게 시해범의 후손들이 찾아와 사과까지 하고 있지만 아직 사건 당시 정확한 상황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픈 역사지만 외면하지 않고 낱낱이 밝히는 것 우리의 숙제로 남았습니다.
보도에 김정윤 기자입니다.
<기자>
지금까지 명성황후를 직접 찌른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3명입니다.
먼저, 당시 일본 공사의 비서관이었던 후지카스.
큐슈의 신사에 보관된 후지카스의 칼집에 "내가 전광석화와 같이 여우사냥을 했다"는 글이 있다는 것입니다.
검객으로 추정되는 고바야카와는 회고록에서 자신이 직접 칼을 겨눴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60년대 나온 '일한 병합사'에는 데라자키라는 낭인이 시해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당시 현장에 있었던 러시아인 건축기사 사바친이 쓴 보고서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보고서엔, '풍채가 좋고 양복을 차려입은 한 일본인'이 전체를 지휘했고, 실제 '칼을 뽑아 들고 있는 사람은 너댓명에 불과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우익 지식인층이 기획을 하고, 직접 실행은 하급 무사층의 몫이었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직접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서영희/한국산업기술대 교수 : 개연성 있는 그림은 만들어 낼 수 있다. 히로시마 재판 용의자 48명을 신분 기록을 정확히 대조해 보고...]
결국 숨겨진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모아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