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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라오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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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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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라오콘

◆1. 목마를 들이지 말라

목마와 관련해 이 사람을 빼놓고 지나갈 수 없다. 라오콘. 애초 트로이 사람들은 시논뿐 아니라 목마도 위험하다고 여겼다. 그러다, 늙은 프리아모스 왕이 시논을 친국(親鞫)한 뒤로 시논을 인정하기로 결정하자 마음을 바꿨던 것이다. 시논을 받아들인 뒤로 목마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졌다. 목마를 산으로 끌고가 절벽에서 굴리든지 아니면 가운데를 칼로 토막내 버리자는 섬뜩한 주장들은 꼬리를 감췄다. 왕의 권위는 그렇게 무서웠다. 전제적인 지배 시스템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요즘이라고 크게 변했을까?

상직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 단계가 무시되고 한사람의 전횡으로 움직여지는 조직. 넓게는 이라크전의 부시부터, 안으로는 대북 특검을 강행한 노무현. 나아가 각자 자신이 일하는 회사로 좁혀 들어가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더 큰 문제는 그런 전횡적인 결정과정의 폐해를 지적해도 이런 저런 핑계로 시정되지 않는 조직이 곳곳에 살아 숨쉰다는 것이리라. 왜 근본은 고치지 못하고 변죽만 울려 대면서도 개혁이라는 탈을 쓰는 일이 가능할까? 간단하다. 그렇게 할 때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양자 모두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을 주장하지만, 결과적인 협조가 되고 마는 현실은 여기서 생겨난다. 물론 제몸 바쳐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그것은 사이비"라고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 한숨만 삼키는 부류라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십보 백보(五十步 百步).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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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콘과 카산드라. 트로이 목마가 보이고 그 왼쪽에 라오콘이 창으로 목마를 찌르는 모습을 새겼다. 왼쪽끝은 목마를 들이지 말라고 절규하는 카산드라. 간다라 출토.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카산드라가 혼신의 힘을 다해 목마를 들이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무위로 그쳤다. 목마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카산드라의 외침이 사람들의 외면으로 수그러들었다고 대세가 기운 것은 아니었다. 의인은 또 있었다. 카산드라가 물러난 자리에 라오콘이 달려왔다. 라오콘. 그는 누구인가? 트로이에서 아폴론을 섬기던 신관이다. 다시말해 아폴론 신전 지킴이인데... 트로이 전쟁에서 아폴론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 아버지 제우스의 명을 받들어 위기 때마다 트로이를 구하던 트로이의 은인이다. 아폴론의 예지를 받았던 라오콘은 아프로디테가 사랑했던 인간 안키세스의 동생이라는 설도 있다. 이설을 따르면 안키세스의 아들로 로마의 조상이 된 아에네아스는 라오콘의 조카인 셈이다.

나름대로 트로이의 유력자이면서 신관이던 라오콘. 그는 카산드라 보다 더 적극적으로 목마의 성내 반입을 반대했다. 아폴론의 가호를 입어 예언능력이 있던 라오콘은 아카이아군이 남긴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라오콘 소리 높여 왈(曰). "목마는 아카이아 연합군의 계략입니다. 목마에는 무서운 음모가 담겨 있습니다. 목마의 뱃속에 무엇인가 숨겨져 있을 겁니다. 혹시 창과 칼로 무장한 무시무시한 아카이아의 용장들이요. 그들이 비밀스런 문을 열고 나와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도 있습니다. 음모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라오콘의 경고에 트로이 사람들은 순간 깜작 놀라며 움츠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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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콘. 창을 들고 목마로 돌진해 목마의 배를 찔러보는 라오콘을 잘 묘사했다. 라오콘이 창으로 지르자 "텅" 소리와 함께 속이빈, 그래서 군사들이 숨어있을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트로이 사람들은 라오콘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연은? 간다라 출토.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그러나, 트로이 사람들은 다소 놀랍다는 표정일 뿐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라오콘이 말을 이었다. "아카이아 연합군 병사들이 숨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목마의 뱃속이 비어 있는 것을 증명해 드리겠습니다. 똑똑히 보십시오. 이 음흉한 음모를..." 라오콘은 말을 마치자 마자 근처에 있던 트로이 병사의 긴 창을 빼들었다. 그리고는 목마의 배를 향해 돌진했다. 라오콘이 던진 창이 위로 날아가 목마의 배 밑바닥을 때렸다. 트로이 시민들은 연거푸 두번 놀랐다. 첫째, 전쟁의 여신 아테나에게 바쳐진 선물이라는 목마에 창을 집어던진 무례함. 둘째, 뒤이어 울려 퍼진 소리. "텅". 앗! 속이 비어있지 않은가?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라오콘에게 무례를 범했지만, 텅 비어 있으니 목마 안에 흉계가 들어 있다는 라오콘의 말이 입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라오콘의 주장대로 목마를 산으로 끌고가 절벽아래로 굴리던지 아니며 반토막을 내 그안에 든 음모를 분쇄해야 옳다. 목마 안에 있던 아카이아 연합군의 용장들. 오디세우스, 네오프톨레모스, 디오메데스, 헬레네의 첫 남편인 메넬라오스... 이들은 라오콘의 창에 힘 한번 못써 보고 이승과 작별을 고할 위기에 놓였었다. 그러나, 라오콘의 경고는 메아리 없는 헛소리로 간주 됐다. 사람들은 속이 빈 것을 확인하고도 라오콘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이유는? 아폴론의 노여움이다. 트로이를 응원하던 아폴론은 라오콘에게 예지능력을 줬지만, 그의 능력을 거둬 들였다. 라오콘이 신성한 아폴론 신전에서 그만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 불경을 저질러 벌을 내린 것이다. 사랑을 나눌 때도 장소가 있는 법.

◆2. 라오콘의 죽음

훗날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10년이 다되도록 오디세우스가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 하기위해 스파르타로 헬레네와 메넬라오스를 만나러 갔다. 일리아드에는 이때 헬레네와 메넬라오스가 나눈 대화 가운데 목마 얘기가 나오는 것으로 기술된다. 헬레네 왈(曰). "지혜, 용모 모든 면에서 빼어난 내 남편 메넬라오스여." 참... 남편을 버리고 떠나 파리스와 살다 그가 죽자 파리스의 동생 데이포보스와 결혼했던 헬레네. 다시 고국에 돌아와 원래 남편 메넬라오스에게 이런 교언영색(巧言令色)을 늘어놓다니... 기분이 좋아진 메넬라오스 왈(曰). "허 참. 당신도. 으음... 그렇지. 나도 산전 수전 다 겪으며 이사람 저사람 만나 봤지만, 오디세우스 같은 사람은 못봤소. 그때 말이오. 당신이 데이포보스와 같이. 그자 당신 남편이었던 데이포보스. 신처럼 잘생겼더군..."

헬레네의 얼굴을 흘깃 바라보며 메넬라오스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그때 목마 안에 숨어 있었지. 그런데 당신이 와서 아카이아 연합군 장군들의 부인 목소리로 우리 이름을 불렀지. 여러 장군들이 실제 자기 아내가 부르는 줄 알고 밖으로 나갈 뻔 했다니까. 참. 그때 오디세우스가 우리 입을 틀어 막고 발목을 잡았어. 트로이 사람들의 간계이니 속아 넘어가면 안된다는 뜻이었지. 사려깊은 오디세우스가 저지하지 않고, 우리가 당신의 거짓 목소리에 속아 대답을 했다면 우리 아카이아 용장들은 트로이를 함락시키기는 커녕 트로이 사람들에게 개죽음 당했을 거야..."

이 대목을 보면 트로이 사람들이 목마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카산드라의 외침, 행동으로 보여준 라오콘의 절규. 트로이 사람들은 이를 무시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의심의 고삐를 늦추지는 않았던 것이다. 트로이 사람들이 낸 최후의 아이디어는 아카이아 방언을 갖고 또, 아카이아 용장 부인들의 목소리를 아는 헬레네를 시켜 아카이아 장군들의 부인 목소리를 흉내 내게 한 것. 아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남편을 부르는데 혹시 목마 안에 남편들이 있다면 궁금증을 견디지 못해 밖으로 튀어 나올 것이란 계산이었다. 목마 안에 있던 메넬라오스가 나중에 증언하듯이 아카이아 장군들은 헬레네의 목소리에 속아 실제 밖으로 나오려 했으니... 트로이의 최후 확인 작업이 성공하느냐. 아니면, 오디세우스의 판단력이 승리하느냐. 여기서 신들은 아카이아 연합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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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이돈. 삼지창을 들고 다니는 포세이돈은 전쟁 내내 아카이아 연합군을 응원했고, 끝내 목마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라오콘에게 바다뱀을 보내 죽게 만들었다. 알테스 박물관 ⓒ김문환

상황이 아카이아 연합군에게 불리하게 되자 아카이아 연합군을 지원하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노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라오콘이란자. 이녀석 안되겠네. 가만히 두면 저녀석 선동에 말려 트로이 사람들이 목마를 박살낼 수도 있겠네. 혼 좀 나봐라. 이놈" 크게 노한 포세이돈은 커다란 바다뱀 두마리를 보냈다. 라오콘이 두아들과 함께 뱀에 휘감겨 죽어가는 장면은 어디선가 본 듯 눈에 아련하다. 라오콘과 아들 둘은 뱀을 걷어내려 애쓰지만, 끝내 빠져나오지 못하고 생을 접는다. 라오콘의 두 아들 이름은? 에트론, 멜란투스.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안티파스, 팀브라이오스. 라오콘과 두 아들을 휘감아 죽인 뱀도 이름이 있을까? 인류역사나 신화에 등장하는 뱀은 여럿이지만, 라오콘을 죽인 뱀처럼 이름까지 붙은 경우는 아주 이례적이다. 포르케, 카리보이아.

◆3. 바티칸 라오콘 군상

라오콘이 뱀에 휘감겨 죽게 된 과정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트로이 사람들은 포세이돈이 노한 것도 모르고 바다를 관장하는 신 포세이돈에게 빌어 아카이아 연합군의 배가 바닷속에 수장되도록 해 달라고 기원했다. 포세이돈은 파도를 일으키는 장본인 이므로 포세이돈이 강풍을 동반한 큰 파도를 일으킬 경우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포세이돈이 누구인가? 아카이아 연합군의 든든한 후원자요. 트로이를 멸망시키려 혈안이 된 신이 아닌가? 트로이 사람들의 염원과 달리 포세이돈은 트로이를 벌하기로 했다. 신관 라오콘이 바다에서 포세이돈에게 기원제를 올리며 막 황소를 죽여 희생의식을 치르려 할 때 뱀 두마리를 보내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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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콘 상. 바다뱀에 휘감겨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라오콘과 두 아들. 바티칸 박물관 ⓒ김문환

1506년 로마 콜로세움 근처 에스퀼리노 언덕 네로의 궁전터 근처에서 눈을 의심할 정도로 사실적이면서 빼어난 기법의 거대한 조각품이 발견됐다. 높이 2.4m. 라오콘 군상(群像). 뱀에 휘감겨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라오콘과 아들들. 아니 신의 의지를 거역했다가 신의 노여움으로 벌을 받는 인간들의 고통을 담은 명작. B.C 100년경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작품의 조각가는? 비록 기울어 갔지만, 전성기 헬레니즘 조각의 기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로도스 출신 아게산드로스를 비롯해 3명이다. 인간의 나약함과 고통, 절규, 신의 의지와 전지전능. 나아가 균형잡힌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까지 사실적으로 잡아낸 걸작 중의 걸작. 라오콘 군상은 지금 교황의 서거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로마(Rome)의 바티칸(Vatican) 궁전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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