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말, 그러니까 아직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의 일입니다. 제가 출입하는 서울시 교육청 정문을 지나고 있는데, 학부모 한 분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워낙 날이 추워서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학교 급식봉사 폐지를 주장하는 학부모들의 모임 회원이라고 소개를 하신 이 분은 현재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초등학교 급식봉사제도에 문제가 많다고 목소리를 높이셨습니다.
학교에서 급식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 학부모들이 돌아가면서 급식봉사를 한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학부모의 말인즉슨,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 학부모들은 한 학기가 시작되면 담임교사로부터 한 장의 배식봉사 순번표를 받는다고 합니다. 학생 이름의 가나다 순, 혹은 번호 순대로 주-욱 나열된 표인데, 지정된 그날이 바로 배식봉사를 해야 하는 날이라는 겁니다. 말은 봉사지만 학부모의 동의 없이 사실상 강제로 할당되는 겁니다. 하루에 학부모 2명이 지정되는데, 보통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봉사가 잡히는 셈입니다. 문제는 맞벌이 엄마들이죠. 급식봉사하려고 직장을 빠지자니 직장에서 눈치가 보이고, 봉사에 빠지자니 다른 학부모와 담임교사, 그리고 자식에게 미안하고....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다는 거죠.
그래서 요즘은 이런 신종 직업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일명‘급식 도우미’라고 하는데, 엄마를 대신 해 학교에 가서 급식 봉사를 해주고, 교실 청소까지 마무리 해주는 직업입니다. 급식 도우미를 파견하고 있는 업체 사무실에 가봤더니, 점심시간을 앞두고 여기저기 문의전화가 많이 오고 있었습니다. 업체 관계자 말로는 지난해에 비해서 문의를 하는 학부모가 부쩍 늘었고, 실제로 급식 도우미를 이용하시는 분들도 2배정도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급식 도우미를 요청하시는 학부모와 비슷한 연령대, 좋은 인상, 깔끔한 외모를 가진 분들을 선발해서 보내야 학생들이 진짜 엄마처럼 느끼기 때문에 적절한 도우미를 선발해 보내는 것이 영업 전략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대단하군요.
이렇게 사람까지 사서 학교에 보내야 되는 상황이라면 정말‘자원’봉사 차원의 일을 아니겠다 싶었습니다. 급식봉사를 반대하는 학부모 모임의 한 회원은 학교가 모성을 볼모로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는 좀 자극적인 표현까지 했습니다. 한편에서는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사회적 변화의 트렌드와 급식봉사... 왠지 상충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학부모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서울시 교육청은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습니다. 일단 교육청은 급식봉사 순번표를 작성할 때‘강제 동원 방식’은 피하라고 일선 학교에 지시했습니다. 순수하게 희망자에 한해 학부모 봉사조를 꾸리고, 지역의 시민단체, 종교단체의 봉사를 유도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또 초등학교 5, 6학년 선배들이 봉사조를 구성해 먼저 1,2학년 동생들 급식을 해주고, 자신들은 나중에 밥을 먹는 방안도 일선 학교에서 검토해 볼 것을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형태의 무급 봉사인력이 지속적으로 확보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어서 교육청의 일방적인 지시를 받은 일선 초등학교들의 고민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