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하루에 한편 내지는 두편씩 봐서 10편 정도 보리라고 계획을 세웠지만 목표의 절반 정도만 달성할 것 같습니다. 재일동포 최양일 감독에 기타노 다케시가 출연한 [피와뼈]를 꼭 보고 싶은데 서울에서는 동숭동의 한 극장에서만 상영하고 있어 고민중입니다.
건강검진 때문에 그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 점심 이렇게 세끼를 꼬박 굶고 오후에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세끼를 굶었더니 무엇보다고 후각이 예민해지더군요. 달콤하고 상쾌한 청량음료 냄새가 나서 두리번 거려보니 맞은편 좌석에 앉은 청년이 마시고 있었고 잠시후 초코렛의 달콤씁쓸한 냄새가 진동을 해서 찾아보니 6명 앉는 좌석 맨 끝에 앉아있는 아가씨가 부스럭 거리며 꺼내 먹더군요.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이런 냄새가 제 코에 들어와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겠지만 세끼를 굶은 입장에서는 무척 신선한 자극(?) 이었습니다. [여자, 정혜]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저 그런 일상을 밋밋하게 그린 영화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고통과 상처의 그늘에 함께 공감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단편영화로 가능성을 인정받던 이윤기 감독 작품으로 지난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베를린, 도빌, 선댄스 같은 영화제에서 상도 받고 하면서(영화제 수상작은 흥행과는 상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법칙아닌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인정을 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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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변두리의 조그만 우편취급소에서 일하는 정혜(김지수)는 자그마한 서민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합니다. 비슷한 또래의 동료 여직원들과 제때 점심을 챙겨먹지 못할 정도로 분주하지만 그 일은 매일 매일 반복적이고 지루하기까지 합니다.
정혜는 번잡함이 싫어서 왠만한 물건들은 홈쇼핑으로 주문하고, 잠자기 전에 3중으로 된 출입문 잠금장치를 거듭 확인할 만큼 꼼꼼하다 못해 결벽증에 가까운 성격입니다. 습관적으로 매일 자명종이 울리지만 잠에서 깬채 있다가 한참을 울린뒤에야 자명종을 끄는 습관까지 있습니다.
출근길 동네 화단에 버려진 아기 고양이가 눈에 걸려 집에 데려와 키우기로 작정하지만 소파 밑에 기어들어가 좀처럼 나오지 않고 맛있는 참치를 사료와 섞어줘도 상할때까지 입도 대지 않습니다.
이런 일상 중간 중간 과거 회상 장면을 통해 몇년전 평범한 남자를 만난 결혼했지만 신혼여행지에서 첫날밤을 치르고 과거 첫경험이 어땠느냐고 장난스럽고 짖궂게 묻는 신랑의 질문에 '그냥 아팠어요.'라고 대답한 뒤 밤을 꼬박 샌채 다음날 새벽 서울로 혼자 올라와 파혼에 이르렀고 그 뒤 사랑하는 엄마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냈고...하는 정혜의 과거가 하나 둘씩 표면으로 올라옵니다.
파혼했던 남자가 찾아와 자신이 결혼한다고 말하고 구두가 낡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자 과감하게 택시를 집어타고 구두가게를 찾지만 언니, 언니 하며 좀 과하게 신체접촉을 하는 남자 종업원의 느끼한 태도에 견디다 못해 사장에게 머뭇거리며 '손님을 손님답게 대해 주세요...여자 구두 가게에 남자 종업원은 좀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용기도 보여줍니다.
친한친구도 없고 직장 동료들과도 그저 그런 거리를 두고 지내는 정혜지만 술에 취한 슬픈 남자를따뜻하게 거두어 주기도 하고, 수시로 우체국에 찾아와 어디론가 원고를 등기로 부치는 무명작가에게는 과감하게 저녁 초대를 제의하기도 합니다.
영화 중간 중간 정혜의 과거 단편들이 하나씩 삽입되면서 지루한 일상이, 그 습관이 사실은 깊은 상처에서 연유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됩니다.
지독스러운 디테일의 진실성이 영화의 미덕은 등장인물과 배경 모두 섬?할 정도로 집요한 꼼곰함으로 무장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일하는 우체국이나 그녀의 집, 동네 호프집 우체국 직원의 허름한 유니폼 뿐 아니라 어쩌다 찾아든 여관방까지 모두가 인공으로 꾸미지 않은 실제 생활의 무대에 카메라를 들이댄 듯한 생생함을 보여줍니다.
100% 핸드헬드(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찍기)로 촬영한 화면도 이런 생생함을 더욱 돗보이게 하는데 적절한 기법으로 사용됩니다. 직장 동료들과 호프집에서 축구중계를 보며 나누는대화 장면과 낯선 남자에게 한 데이트 제의를 바람맞고 준비해논 음식을 혼자 천천히 먹는 장면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자연스럽더군요.
인물을 묘사해나가는 방식에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의 생활과 동작들이 과거 회상장면과 하나씩 겹치면서 그 배경을 이해하게 되고 그 속에서 처음에는 미세한 떨림이 점점 증폭되는 파장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속눈썹이 자주 빠지는데 동료가 이것을 발견하고 떼어주자 '그냥 버리면 어떻게 소원을 빌고 버려야지'하는 대사에서 상처입은 여자 정혜는 마음속으로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남자를 찾아가지만 복수를 결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준비해간 칼에 자신의 손을 베고 화장실에서 흐느껴 울때쯤이면 공감의 폭은 더욱 큰 파도로 마음을 덮칩니다. 깊은 상처받은 사람이 그 복수를 하려다가 오히려 자신이 더 상처받고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둘러싼 보호막 앞에서 절망하는 상황이 현실에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TV 드라마에서 낯익었던 김지수의 연기는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이런 정혜를 표현합니다. 무표정한 얼굴에 손등의 핏줄과 힘줄이 드러날 만큼 연약한 몸매, 그속에 감추어진 좀처럼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오버와 위축의 경계선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영화를 이끌어갑니다.
개개인에게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서 달콤한 추억도 있지만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사회가 복잡해져갈수록 이런 스펙트럼의 폭은 더욱 넓어지는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하기 보다는 그냥 덮어둔채 표면적이고 기능적인 관계에만 머물게 되고 그 속에서 사적인 개인은 소통의 부재 내지는 고독에 시달리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해결방식이나 대안이 불투명할때는 다시 자신 속으로 다시 가라앉게 됩니다.
소설가 전경린씨가 한 영화 잡지에 기고한 글로 마무리를 대신하려 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은 습관의 정적 속으로 흘러가는 저마다의 회색빛 일상의 의미를 반추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의 일상은 실은, 핵과 같은 상처를 감싸고 입을 꼭 다문 조개같은 것이 아닐까?"